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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거북 Sep 12. 2020

하와이 Day 15, AM:훌리훌리 치킨

똥꼬 2호, 버킷을 이루다

2018.08.12.(일)


일리카이 호텔 체크아웃(Ilikai Hotel) -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 푸나후 게스트 하우스 체크인 – 훌리훌리 치킨(Ray’s Kiawe Broiled Chicken) – 돌 플랜테이션(Dole Plantation) - 쓰리 테이블즈 비치(Three Tables Beach) -쿠아아이나 버거(Kua Aina)     


일리카이 마지막 날이다. 나는 짐을 싸고 숙소를 정리했고, 세 남자는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호텔 수영장을 아침 일찍 즐겼다. 젖은 수영복을 수건 사이에 넣고 쭉쭉 눌러 물기를 빼는 일에 이제 선수가 됐다. 

일리카이 마지막 날 아침 수영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힐로 교회가 정다운 시골교회 느낌이었다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도시 대형교회였다. 힐로 교회에서는 모두가 우리 가족이 뉴 페이스인걸 알고 반가워해줬는데 이 교회는 자기 주도적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었다. 인사하며 맞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이 용감하게도 따로 어린이 예배를 드리겠다고 해서 나는 주일학교 건물을 찾아 헤매느라, 남편은 또 주차할 곳을 찾아 삼만리 하느라 예배시간에 한참 늦었다. 

젊은 사람들 중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아무리 억지로 끌려 나온 예배라도 설교시간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게 문화 차이인가. 하고 불편해하고 있었는데 예배가 끝나자 이어폰을 다 바구니에 담는 게 아닌가. 우리말 설교를 영어로 동시통역해주는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이었던 것이다. 내 마음대로 판단했던 것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같은 설교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는 이어폰이었던 것이다. 귀를 닫는 이어폰이 아니라 귀를 여는 이어폰이었다. 부모와 자녀의 제1 언어가 다르다는 것 자체가 슬픈 현실이긴 하지만 이런 노력이 시스템화 되어있다는 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똥꼬1호, 2호를 만나서 물어보니 영어설교라서 못 알아들었지만 그림 보고 대충 내용을 알 수 있었고 재미있었단다. 예배 후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줄을 서서 맛있는 한식 교회 밥을 먹었다. 꿀맛이다.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숙소, 푸나후 게스트 하우스로 갔다. 수영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 하와이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다시 묶고 싶은 숙소가 되었다. 오랜만에 실내화 없이 맨발로 마음껏 다닐 수 있는 마룻바닥이 반가웠다. 아이들이 어려서 1층을 부탁드렸었는데 그래서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볼 수 있는 거실이 우리 차지가 되었다. 아이들은 티비를 보고 나는 모든 게 다 갖추어진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했다. 호텔이나 리조트의 팬시함은 없었지만 그 자리를 편안함이 채웠다. 푸나후는 외관이 일반적인 하와이 가정 주택처럼 보여서 밖에서는 전혀 게스트하우스 티가 나지 않았다. 차를 대고 내 가슴높이의 여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효순이(개)가 우리를 반겼다. 


꼭 한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가 있는 집처럼 장소와 물건마다 이름과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죄송해요.’로 시작하는 카톡으로 여러 번 일정을 번복하며 진상 고객이었던 나를 너그럽게 받아주셨던 주인아저씨는 직접 만나보니 츤데레 그 자체였다. 부엌 사용법, 욕실 사용법, 세탁기 사용법, 냉장고 사용법, 스노클링이나 오리발처럼 공용 물놀이 용품 사용법 등을 직접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철저하게 사생활을 존중해주셨다. 그 후로 아저씨를 만나기는 어려웠는데 아저씨의 흔적은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예를 들어 우리 방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은 우리 가족만의 화장실이긴 했지만 세면대 쪽에 공용 세탁기가 있었다. 우리는 옷을 많이 가지고 오지 않았고 땀과 바닷물에 쩐 옷을 방치할 수 없어서 매일 세탁을 해야 했다. 문제는 세탁기가 공용이어서 얼른 쓰고 빼줘야 한다는데 있었다. 매일 일과가 끝나고 빨래를 해서 널고 자려고 했지만 밥 차려 먹고 애들 챙기고 하다 보면 빨래는 제일 마지막 순위로 밀려났다. 다른 집 빨래가 먼저 세탁기를 차지하고 있을 때도 많았다. 그러다 보면 밤 10시가 돼서 다른 사람들 자는데 방해될까 봐 빨래는 아침으로 또 미뤄졌다. 아침에는 빨래는 어떻게든 돌렸는데 빨래가 끝날 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어서 종이에 크게 '죄송합니다. 빨래가 끝나면 옆에 있는 바구니에 담아주세요.' 하고 써서 세탁기에 붙여놓고 나갔다. 그런데 하루 종일 신나게 놀고 바구니에 꾸깃꾸깃 담겨 있을 빨래를 상상하고 돌아왔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방 앞 건조대에 그 많은 빨래가 가지런히 이쁘게 걸려 있는 게 아닌가. 거의 다 말라있기까지 했다. 우렁각시가 왔다간 것처럼,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폭탄 맞았던 우리 집에 친정엄마가 마법을 부리고 간 그때처럼, 마음이 환해졌다. 우렁각시가 누구인지는 뻔했다. 며칠이 지나고서야 아저씨를 만나서 “그때 빨래 널어주신 거 맞지요? 너무 감사했어요.” 했더니 “그게 제가 하는 일인데요 뭘.” 하신다. 민박이 아니라 엄마 같은 주인아줌마가 있는 하숙집 같다. 하숙집에 머무는 동안 할 일은 열심히 공부하기가 아니라 신나게 놀기! 


주방과 식탁을 나눠 쓰는 것도 재미있었다. 밤늦게 들어와서 비빔면을 너무 맛있게 먹던 신혼부부도 생각난다. 비빔면이 얼마나 맛있어 보이던지. 난 한국에서도 비빔면을 잘 안 먹던 사람인데, 이 이후로 자주 사 먹는다. 그리고 먹을 때마다 어김없이 하와이에서 만난 이 부부가 생각난다. 여자들은 부엌에 나란히 서면 친해진다. 요리하는 사람, 설거지하는 사람이 아무 말도 안 하고 같이 서 있는 경우는 없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거기 좋아요? 아, 결혼하셨구나. 이런 소소한 대화가 재밌다. 2층에도 분명 두 가정이 더 묶고 있었는데 희한한 건 1층에만 있는 공용 식탁 사용이 겹쳐서 불편한 일은 전혀 없었다는 거다. 신혼부부는 딱 2인만 앉을 수 있는 작은 바에서 먹기도 했고 주먹밥을 만들어 도시락으로 싸서 나가는 가족도 있었다. 집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한 지붕 다른 가족들은 오히려 밖에서 자주 만났다. 주먹밥 가족은 다이아몬드 헤드에서 만났고, 폴리네시안 센터에서 같은 팀이 돼서 하루 종일 같이 다닌 가족은 나중에서야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묶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들 하숙집에선 잠만 자고 신나게 놀러 다녀서 집보다 밖에서 만나게 되나 보다.  


마당의 한국식 빨랫줄도 마음에 쏙 들었다. 급한 옷은 실내 건조대 말고 마당에 걸어두었다. 햇빛 냄새나는 옷을 오랜만에 입었다. 이것도 츤데레 아저씨가 바짝 다 마르면 우리 방 앞쪽으로 옮겨놓아 주실 때가 많았다.      


오늘은 똥꼬2호가 노래를 부르던 훌리훌리 치킨을 먹으러 가는 날. 2호는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하와이 편을 보고 한국에서부터 하와이에 가면 훌리훌리치킨을 먹고야 말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 2호 머리의 80프로는 먹는 걸로 채워져 있다. 

똥꼬 1호는 아빠를 쏙 빼닮아서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사고 싶은 물건까지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기호가 확실하고 자기주장을 잘한다. 반면에 나와 닮은 똥꼬2호는 선택을 어려워한다. 그나마 시간이 걸려 선택한 것이 우리 집 다른 두 남자와 달라 회유당하거나 미뤄질 때가 많다. 항상 캐스팅 보트가 되는 엄마는 2호의 선택이 미덥지 않을 때도, 2호에게 선택을 지지받는 경험을 주고 싶어 2호 편을 들곤 한다.

그런데 이번엔 여행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하와이 가면 꼭 하고 싶은 게 뭐야?’라고 물을 때부터 2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훌리훌리치킨 먹기! 를 외쳤다. 아빠는 훌리훌리치킨은 일요일에만 문을 여는데 여행 일정상 들리기가 힘들 것 같다고 예방주사를 놓았다. 


그러던 아빠가 오늘, 오아후에서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일요일에 최우선 일정으로 ‘훌리훌리 치킨’을 넣었다. 훌리훌리치킨은 Ray’s Kiawe Broiled Chicken이라는 간이 천막과 트럭에서 팔았다. 줄이 길어서 훈제 연기를 듬뿍 마시며 한참을 기다렸다.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던 치킨 한 마리와 코울슬로, 콜라를 받아 들고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돌 플랜테이션으로 이동했다.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차 타고 이동하는 동안 치킨 냄새 테러를 당한 우리는 돌 플랜테이션 입구에 있는 벤치에서 며칠 굶은 사람처럼 치킨을 뜯었다. 벤치가 좁아 앉을자리는 없고 바람이 많이 불어 콜라는 넘어지고 코울슬로 마요네즈 소스가 옷과 얼굴에 튀어 먹기가 상당히 불편했지만, 이날 먹은 훌리훌리 치킨은 내 인생 치킨이 되었다. 코울슬로와 어쩜 이리 잘 어울리는지. 코울슬로는 고등학교 때 야자를 땡땡이치고 시내에 있는 KFC에 가서 치킨을 먹던 그 시절 이후로 내 인생에서 사라진 어휘였는데 하와이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똥꼬 2호와 훌리훌리 치킨: 우리집에서 먹는 사진은 귀하다. 먹느라 사진 찍을 정신이 없다.

똥꼬 2호가 선택한 훌리훌리치킨을 온 가족이 감탄하며 먹었다. 2호는 그 후로도 몇 번을 “훌리훌리치킨 너무 맛있었지. 내가 가자고 했잖아.”라며 뿌듯해했다.  2호의 선택이 옳았다. 2호의 선택을 밀어주길 잘했다. 


이날 오후의 이야기는 하와이 Day 15, PM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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