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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거북 Sep 13. 2020

하와이 Day 15, PM:쓰리 테이블즈 비치

바다에서 별보기

2018.08.12.(일)


일리카이 호텔 체크아웃(Ilikai Hotel) -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 푸나후 게스트 하우스 체크인 – 훌리훌리 치킨(Ray’s Kiawe Broiled Chicken) – 돌 플랜테이션(Dole Plantation) - 쓰리 테이블즈 비치(Three Tables Beach) -쿠아 아이나 버거(Kua Aina)     


-이날 오전의 이야기는 하와이 Day 15, AM에 있습니다.


돌 플랜테이션은 일정에 없었는데 훌리훌리치킨과 가깝고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갔다. 입장료가 비싸서 잠시 망설였지만 미로 찾기가 있어서 바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먼저 2년 전 제주도 김녕 미로공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엄마 그때 나 너무 무서웠어. 

지금은 잊지 못할 하나의 추억이 되었지만 그때 니네보다 엄마가 더 무서웠다는 거 아니? 

김녕 미로공원에서 한여름에 야간 개장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전에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와 재밌게 가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엔 밤이고, 우리 셋이니 특별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두 번째 김녕 미로공원을 갔다. 차 한 대 보이지 않는 캄캄한 도로를 달려 도착한 밤의 미로공원에는 고양이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신비롭고 특별했다. 낮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문제는 미로도 낮과 완전히 달라 보였다는 것이다. 고양이들과 웃으며 시작한 미로 찾기가 몇 번을 헤매서 같은 곳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서로를 놓쳐서 큰 소리로 “1호야 어딨어?” “2호야 엄마한테 꼭 붙어있어.”를 외치면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지도를 펼쳐 들었지만 길치인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 지도가 하얗게 보였다. 애들은 무섭다고 우리 어떻게 하냐고 사람들도 이제 별로 없다고 울기 직전이었다. 내 머릿속엔 헬기가 출동해서 사다리를 내려주는 장면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이젠 따라다닐 다른 일행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면서 지도에 다시 집중했고 그때서야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는 무사히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와서 망고 셰이크를 먹으면서 아이들은 금세 안정되는 듯했다. 다리는 계속 후들거렸지만 나는 엄마의 힘으로 이 미로를 빠져나온 것이 뿌듯했다. 남편 의존형 인간이었던 내가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이었다. ‘미로’하면 나는 이 날이 떠오른다.

2016년 8월, 제주 김녕 미로공원 탈출 후

돌 플랜테이션에서 아빠와 2호, 나와 1호가 편을 먹고 누가 먼저 미션 도장을 다 찍는지 시합을 해보고 싶었다. 길 찾기 감각을 시소에 태워서 편을 나누면 이렇게 된다. 하지만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을 마감 전에 먹으려면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우리 집 걸어 다니는 내비게이션 아빠곰을 쫓아 모두가 급하게 주르르 따라갔다. 이번 미로놀이에 위기는 없었지만 그만큼 재미가 덜했다. 

돌 플랜테이션 미로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을 플라스틱 파인애플 저금통 버전으로 주문했다. 플라스틱인 데다가 부피가 커서 캐리어에 저걸 어떻게 넣어가나 걱정했는데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통은 하와이 추억 저금통이 됐다. 하와이의 조개껍질, 카페 음료에 꽂혀있던 파르페 우산, 이쁜 병뚜껑을 저금했다.     

돌 플랜테이션 아이스크림

오늘은 훌리훌리치킨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수영복을 챙겨 나오지 않았다. 대신 쓰리 테이블즈 비치에서 눈으로 비치를 즐기기로 했다. 쓰리 테이블즈는 3개의 산호가 물 밖으로 드러나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저 테이블 위에 차 한 잔 올려놓고 싶다. 선셋이 너무 아름다웠다. 작고 아름다운, 인적이 드문 비치였다. 한 커플이 음악을 크게 틀어놓았는데, 노래가 좋아서 슬쩍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돗자리도 없어서 비치 타월을 펼치고 누웠다. 남편과 살이 닿게 누워서 하늘을 봤다. 

쓰리 테이블즈 비치: 세 개의 테이블이 보인다. 인어공주가 왕자님과 차 한잔 할 것 같은 테이블.
쓰리 테이블즈 비치: 해가 질때까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지는 해를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아이들과 경사가 급한 바위산을 올랐다.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고 한 남편 몰래 올라왔는데 결국 남편도 올라왔다. 애들이 넘어질까 봐 선셋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나는 남편 덕분에 여유롭게 지는 해를 볼 수 있었다. 

쓰리 테이블즈 비치: 바위산에서 본 석양

쓰리 테이블까지 들어가 보고 싶어서 슬쩍슬쩍 발로 간을 보다가 옷이 다 젖고 말았다. 아이들도 평화롭게 놀았다. 파도와 나 잡아봐라 놀이를 아슬아슬하게 하다가 발이 젖고 바지가 젖고 에라 모르겠다 마음껏 놀았다.     

점프샷을 찍지 않을 수 없는 비치였다. 비치만 보면 점프를 해대던 10년 전 풋풋한 여자 친구는 무릎이 아프다, 모래가 꼭 늪처럼 나를 잡아끌어서 점프가 안된다 하면서도 ‘다시 한 장만 더 찍어줘.’ 하는 아내가 되었다. 그만 찍으라고 안 하고, 하나 둘 셋을 끊임없이 외치며 ‘한 번만 더 찍자.’하고 그나마 나은 실루엣 사진을 남겨준, 나와 10년째 계속 놀아주는 남편이 고맙다.     

10년이 지나는 세월 동안 중력의 힘을 더 많이 받게 되었다.

힐링이 필요한지 몰랐었는데 여행하는 동안 긴장과 스트레스가 있었나 보다. 무거운 줄 몰랐던 어깨가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쓰리 테이블즈 비치는 우리 가족에게 힐링 비치였다. 다음에 오면 이 자리에 그대로 누워서 별까지 보고 싶다.

다음엔 별이 하늘을 가득 채울 때까지

쿠아 아이나 버거가 한국에서도 생각난다는 사람이 많아서 쿠아 아이나를 찍고 출발했다. 쓰리 테이블즈 비치에서 선셋에 취해 놀다가 사방이 깜깜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구글 내비에 영업 종료 시간 30분 전이라고 뜬다. 오 마이 갓! 주차하고 뛰어서 헉헉거리면서 들어갔다. 다행히 주문이 가능했다. 그런데 현금을 제외한 여행경비가 몽땅 들어있는 체크카드가 디클라인(승인거절)되었다. 아직 하와이에서 4일의 일정이 더 남았고 오아후 렌트비라는 큰 지출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쇼핑도 하나도 안 했다. 현금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한번 확인해달라고 했는데 디클라인이란다. 어쩔 수 없이 비상용으로 가지고 간 신용카드를 썼다. 애들 재우고 일기도 쓰고 여행경비 정리도 한다는 게 맨날 먼저 곯아떨어져 자느라 며칠간 정리를 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 막막했다. 체크카드 앱과 문자로 결제내역을 받았지만 결제 내역도 며칠 후에 뜰 때가 많아서 계산이 정확하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이 당시에 체크카드 통장에 돈이 200달러 이상 남아있긴 했는데 카드사에서 미리 결제를 제한한 듯했다. 

이제 돈이 없다는 충격과 함께 또 하나의 충격은 햄버거의 크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햄버거가 입에 한 번에 들어갈 수 없는 두께였다. 네 명이 2가지 종류 버거를 골고루 먹어보려고 네 조각으로 자르다가 내용물이 다 삐져나왔다. 분해된 햄버거 속을 이쑤시개 하나로 모으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먹는 법을 끝내 알아내지 못한 채 스테이크에 야채를 곁들이듯이 창의적으로(?) 먹었다. 혹시 두꺼운 햄버거 먹는 법 아시는 분? 

쿠아 아이나 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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