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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거북 Sep 06. 2020

하와이 Day 13: 와이키키 서핑 배우기

마미, 아 유 오케이? (Mommy, are you OK?)

2018.8.10.(금)     


모쿠 서핑(Moku Surf) - 치즈버거 인 파라다이스(cheese burger in paradise) - 와이키키 파도타기 - 호텔 수영장 – 힐튼 불꽃놀이  

   

오늘은 대망의 서핑 배우는 날. 남편의 두 번째 버킷! 서핑 배우기가 이루어지는 날이다. 나는? 난 솔직히 서핑이 배우고 싶었다기보다 서핑도 한 번 배워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와이까지 왔는데, 다시는 못 올지도 모르는데. ‘나 서핑해봤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서핑 보드 위에 서있는 사진 한 장을 갖고 싶었다. 한국에서 남편이 내 수업도 예약하자고 했을 때 나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라고 얘기했었다. 사진 한 장이 갖고 싶긴 했지만 잘 못해낼 것 같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진짜야, 난 안 해도 돼. 비싸기도 하고. 우리 둘 다 하면 애들은 누가 봐? 애들이랑 내가 놀고 있을 테니까 아빠 두 번 수업 들어.’ 남편을 위하는 척 얘기했지만 남편은 이미 나를 다 꿰뚫고 있었다. 번갈아가며 하면 된다는 거다. 똥꼬1호도 배웠으면 좋겠단다. 내가 많은 걸 경험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넓은 세상에 눈을 뜨기를 바라는 남편의 마음이 느껴졌다. 결국 아빠는 개인 레슨 2회, 나와 1호는 둘이 한 조가 되어 배우는 세미 프라이빗 레슨 1회를 예약했다. 우리에게 배정된 선생님은 친절하고 잘 가르치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대망의 서핑 데이인데 나는 생리 전 증후군이 심해 컨디션이 안 좋았고, 남편은 설레어서 잠을 못 잤다. 

집밥을 먹고 급하게 나와서 모쿠 서핑 앞에 우리와 어마어마한 물놀이 짐을 내려놓고 남편은 좀 걸어야 하지만 주차비가 착한 호놀룰루 동물원으로 주차를 하러 갔다. 예약 상황을 설명하는데 안내를 맡은 직원이 우리 선생님이 오늘 못 나온다고 했다. 빈대(bedbug) 문제가 생겨서 오늘 출근을 할 수 없단다. 오 마이 갓! 우리 남편의 버킷이 이루어지는 날인데 시작부터 순탄치가 않았다. 빈대라니! 고객과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는데 미안하다는 말 없이 당당하게 사유를 설명하는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빈대에 물려서 병원에 가야 할 상황이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빈대가 집에 발견돼서 없애는 작업을 해야 해서 올 수가 없단다. 게다가 다른 선생님들은 예약이 다 차서 지금 레슨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다른 날로 예약을 다시 잡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언니! 우리는 하와이에 와이키키에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열심히 돈 모아서 어렵게 시간 내서 여행 온 사람들이라고요. (우리 남편은) 오늘 서핑 배울 거 생각하며 설레어서 잠도 못 잤다구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주차장에서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을 우리 남편을 어떻게 하면 덜 실망시킬까 고민하고 있었다.

남편이 헐레벌떡 달려왔고 실망스러운 얘기를 전하고 있을 때 어떤 레게 필 충만한 서퍼가 들어왔다. 안내직원이 그 서퍼에게 지금 바로 수업이 가능한지 물었고, 그렇게 우리는 카이카를 만났다. 먼저 나와 똥꼬1호가 먼저 수업을 받고 다음 타임에 남편이 하기로 했다. 먼저 서핑샵 안쪽에 들어가서 지상훈련을 받았다. 원 투 쓰리 닌자!  엎드려 있다가 오른발 왼발 닌자! 이 단순한 동작이 잘 안돼서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1호는 닌자! 한 마디에 카이카 선생님 팬이 되었다. 보드를 들고 해변으로 나갔다. 보드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다. 앞에서 한 명, 뒤에서 한 명이 옆구리에 끼고 나갔다. 보드는 튜브라기보다는 배였다. 튜브 역할을 할 거라고 순진하게 상상하고 있던 나는 이 무거운 배에 내가 어떻게 올라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같이 생겼는데 들어보면 납덩어리 같았다. 여행책에서는 분명히 웬만큼 운동신경이 있는 사람이면 한 번 수업을 받으면 보드에 올라타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이 말을 주문처럼 되새겼다.

선생님이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오는 자리를 알려줘서 남편과 똥꼬2호는 둑으로 올라갔다. 선생님이 탈 만한 파도가 있는 쪽에 먼저 가 있고 나랑 1호가 패들링해서 선생님이 있는 쪽으로 갔다. 탈만 한 파도를 기다리며 떠 있다가 좋은 파도가 오면 선생님이 “고”하며 밀어주고, “업 업 업 업 업”하면 일어나서 닌자! 를 하는 거였다. 카이카는 우리말도 잘했다. “엄마 앞으로 앞으로!” 그런데 잔잔해 보였던 파도도 내가 일어나려고 하면 무서운 기세로 밀고 나갔고 나는 배에서 떨어질 것 같아 보드를 양손으로 꼭 잡고 버티다가 앉아보지도 못하고 떨어졌다. 

“엄마, 나 이거 꼭 해야 돼?”하던 1호는 닌자! 때부터 신이 나더니 첫 파도부터 성공해서 파도가 끌고 나가는 곳 끝까지 여유 있게 닌자를 유지했다. “엄마! 이거 하루 종일 하라고 해도 하겠어.” 입이 귀에 걸렸다. 서핑 신동이었다. 카이카 선생님은 처음 배우는 게 맞냐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서핑 신동 똥꼬1호

카이카 선생님은 우리 학교 원어민 선생님으로 오면 너무 좋을 것 같은 발음과 아이들 수준에 딱 맞는 영어를 구사했다. 나에게 제일 많이 한 말은 “Mommy, are you OK?” OK하지가 않았다. 나는 계속 떨어지고 보드는 저쪽으로 날아가고 보드를 찾아서 선생님 있는 데로 가지고 와서 ‘고’하면 부들부들 흔들리다가 또 떨어지는 게 일이었다. 부르르 하다가 턱을 단단한 보드에 잘못 부딪힌 것만 두 번이었다. 바로 부풀어 올랐고, 시퍼런 멍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남아있었다. 가족들은 만져보더니 부딪힌 쪽에 턱이 자랐다고 했다. 하하하. 엄마 파이팅을 외치며 계속 카메라 셔터 누를 타이밍을 찾고 있던 남편도 이제는 포기한 눈치였다.

이 날 이후로 우리 집에는 유행어가 생겼다. “Mommy, are you ok?” 엄마가 안절부절못하거나 헤매고 있을 때 하는 말이다. 


중간쯤부터는 솔직히 그만하고 싶었다. 턱이 너무 아팠다. 딱 한 번만 좀 길게 타보고 싶기도 했다. 선생님이 ‘업업업업업’ 하고 한 10초는 있다가 겨우 일어난 게 딱 두 번 있었다. 그래도 일어났다. 폼이 안 나고 어색하지만 파도 위에 보드 위에 내가 서 있는 사진이 생겼다. 충분히 만족한다. 내 인생에 없을 뻔한 경험이었다. 

겨우 건진 엄마곰 사진 

원래 다음 시간은 남편의 프라이빗 레슨이었지만 똥꼬1호가 계속 타고 싶어 해서 남편과 1호가 같이 수업을 받기로 했다. 프라이빗 레슨과 세미 레슨이 가격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선생님께 부탁할 수는 없었는데 선생님이 1호에게 먼저 아빠 옆에서 같이 더 타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고마웠다. 

나는 사진기를 건네받고 둑으로 올라갔다. 한 시간을 꼬박 기다리기만 한 똥꼬2호는 둑에 바글바글했던 게를 잡으며 놀다가 “엄마, 심심해. 나도 보드 타고 싶어.” “응, 우리 2호가 타기엔 너무 위험해. 엄마도 계속 넘어지는 거 봤지? 다음에 더 커서 오면 그때는 2호도 꼭 하자. 지금은 형아랑 아빠 사진 좀 찍고.” 다음에 올 수 있을지, 보드를 탈 기회가 내 인생에 다시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8세면 서핑 수업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위험하게 느껴졌다. 우리 집에서 1호는 외모에서 뇌까지 아빠 탁, 2호는 엄마 탁으로 통한다. 엄마가 잘 못하고 무서워한 서핑은 2호한테도 힘들 거라 지레짐작했다. 엄마 닮아 스노클링도 잘 못할 거야 라고 생각했던 2호가 바다에 들어가자마자 스노클링 물개가 됐던 건 벌써 잊어버렸다. ‘물 가에 내놓은 아기’를 보는 심정이었던 거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오느라 실내 훈련을 전혀 못 받은 채로 바다로 나갔다. 거기다 개인 레슨이 아니라 1호와 같이 받다 보니, 선생님이 아무래도 1호를 더 신경 쓰느라 남편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남편은 기초를 전혀 배우지 못한 채로 실전에 투입됐다. 그래도 나보다는 훨씬 잘했으나 서핑이 버킷이었는데 아쉬울 것 같았다. 

아빠곰: 두 번째 버킷을 이루다.

카이카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2호도 태워준다는 거다. 2호가 신이 나서 뛰어갔다. 암튜브를 하고 바로 바다로 나갔다. 카이카 선생님이 여기서 찍으면 사진이 잘 나올 거라고 하며 자리를 세팅해줬다. 제발 사진을 건질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2호도 처음부터 성공했다. 나보다 더 작은 몸으로 튜브에 살짝 올라타듯이 부드럽게 타서 균형을 잡았다. 1호 2호가 나란히 서핑을 즐기는 동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너무 기특했다. 카이카 선생님도 같이 기뻐했다. 

단번에 성공한 똥꼬2호

남편 표정이 밝다. 서핑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집중해서 배우지 못해 실망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1호가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며 대단하다고 난리다. 서퍼 신동 아빠의 미소다. 카이카 선생님이 애들을 잘 챙겨줘서 너무 좋단다. 이건 수업 하나를 따로 해준 거랑 마찬가지라고 팁을 30불 드렸다. 내일 아빠는 수업이 한 번 더 남았다. 우리는 내일도 카이카 선생님이 수업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똥꼬1호는 자기도 내일 또 탈거란다. 내일 만나기로 하고 카이카 선생님과 빠이빠이했다. 빈대는 우리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카이카 선생님과

서핑만 하고 가기에는 아쉬워서 와이키키 파도를 타고 한참 놀았다. 딱 놀기 좋은 파도이다. 바디보드를 타고 놀기에도, 맨몸으로 점프 점프하며 파도 타고 놀기도 딱 좋은 파도였다. 1호는 조개 찾기 삼매경이다. 이쁜 조개와 돌멩이를 찾아서 자꾸 나한테 준다. 절대 버리면 안 된단다. 키가 안 닿는 곳이 많은데 자꾸 암튜브를 벗는 2호를 챙기면서 손에 조개와 돌멩이를 들고 있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을 짐있는 데까지 왔다 갔다 하다가 방수 케이스에 넣고, 모자에 달려있는 지퍼에 넣었다. 


“엄마, 파도가 올 때 나는 어떻게 하는 줄 알아? 나는 물속으로 들어가. 오히려 물속으로 들어가면 파도가 별로 안 느껴져.”

초3이 하는 말인데 심오하게 느껴졌다. 어, 그거 엄마도 투스텝에서 느꼈는데... 반가웠다. 인생의 파도도 그렇다는 걸 우리 아들은 언제쯤 알게 될까? 갑자기 들이닥친 인생의 파도에도 물 먹고 허우적대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파도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그때도 엄마와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엄마도 그랬다는 얘기를 도란도란 할 수 있을까. 


일리카이 숙소 수영장은 선베드에 누워 선글라스를 끼고 책을 한 손에 들고, 칵테일 한 잔 하기 딱 좋은 수영장인데 여행 내내 한 번도 그리해보지 못했다. 욕심 안 부리고 딱 한 권 가지고 온 책, 하와이에 두고 와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챙겨 온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여행 끝날 때까지 꺼낼 일 없는 짐들은 모아두는 캐리어에 마우나케아용 패딩, 부모님들 면세점 선물과 뒤섞여있었다. 


호텔 수영장에서 한 바탕 수영을 더 하고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떡볶이를 먹으면 김밥도 먹어야 하고 국물도 있어야 하는데 너무 비싸고 내가 하는 것보다 맛이 없었다. 참고로 내가 하는 떡볶이는 우리 아들이 친구 초대할 때 “엄마, 설마 떡볶이 해 줄 생각은 아니지? 떡볶이는 절대 하지 마. 그냥 사.”라고 미리 신신당부하는 수준이다. 


남편이 고심하여 이 숙소를 고른 이유는 또 있었다. 금요일마다 있는 힐튼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명당이라는 것이다. 금요일에 이 숙소에 머무를 수 있도록 숙박 스케줄을 짜고, 이 숙소에서 불꽃놀이가 잘 보이는 방이어야 하고, 아이들이 침대에서 안 떨어지게 양쪽 벽으로 붙일 수 있는 침대가 두 개 있어야 하고 이 모든 걸 고려해서 탁월한 선택을 해 준 우리 남편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그 과정을 다 건너뛰고 어린아이처럼 ‘아 너무 좋다.’만 해도 되게 해 줘서, 이런 걸 누려보게 해 줘서 너무 좋다. 


팝콘과 안주를 준비해서 온 가족이 테라스에 앉았다. 와이콜로아 숙소에서 서비스로 받은 팝콘을 이때를 위해 아껴두었다.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자 저 밑에 엄청난 인파가 모여드는 게 보였다. 그런 복잡함 위에 둥 떠서 여유롭게 우리만을 위해 상영되는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왼쪽 힐튼, 오른쪽 우리 호텔 사이의 하늘을 스크린 삼아 불꽃놀이가 상영 중이었다. 내 가슴에서도 기쁨이 팡팡 소리를 내며 터졌다.

일리카이 숙소 베란다에서 본 불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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