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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거북 Aug 24. 2020

하와이 Day 9, PM:마우나케아 별보기

나랑 별보러 가지 않을래

2018.8.6.(월) 


켄즈(Ken’s House of Pancakes) - 칼스미스 비치(Carlsmith Beach Park) - 카페 100(Cafe 100) - 레인보우 폭포(Rainbow Falls State Park) - 마우나케아(Mauna Kea Visitor Information Onizuka Center) 선셋 - 마우나케아 별보기


-이날 별보기 전의 이야기는 

1) 하와이 Day 9, AM 

2) 하와이 Day 9, PM-선셋 편

에 있습니다.


이제는 오니즈카 센터 옆에서 레이저 포인터 해설을 들으며 별을 볼 차례이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남편과 1호를 무사히 만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불을 밝히고 내려오는 차들을 보며 왜 안 오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고산병으로 쓰러지거나 사고가 난 건 아닐까? 어둠을 헤치고 더듬더듬 걸어가 별이 잘 보일만한 곳에 2호를 앉히고, 라면 냄새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2호를 달래러 온수 줄을 섰다. 사실 달랜다는 핑계로 우리 둘은 미리 라면을 먹었다.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린다. 빅아일랜드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한국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있었다. 기압 때문인지 라면이 빨리 익지 않았다. 덜 익어 꼬들한 면을 그냥 후루룩했다. 너무 맛있었다. 국물까지 다 먹고, 다시 줄을 섰다. 아직 못 만난 두 남자 라면 물을 미리 보온병에 담아 돌아왔을 때, 반갑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호! 살아 돌아왔구나. 요란한 상봉을 했다. 똥꼬1호는 머리가 아프고 속이 안 좋아 좀 힘들었다고 했다. 나중에 사진으로 보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증상이 한참 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라면에 햇반 밥까지 넣어 후루룩 하는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우리가 라면과 씨름하고 있는 사이, 하늘엔 별이 빼곡히 들어찼다. 나는 이런 하늘을 내 인생에 두 번째로 봤다. 대학생 때 인도 배낭여행 중에 사막 낙타 사파리를 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별과 우리밖에 없었다. 별이 어둠을 이기고 빛나고 있었다. 밤인데 어떤 인위적인 빛도 필요 없었다. 그 사막 모래 위에 바로 침낭을 깔고 하늘을 보며 잠이 들었었다.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별잔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17년이 지나 다시, 별 잔치에 초대받았다. 별이 핸드폰 카메라로는 도무지 잡히지 않아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날을 위해 준비한 캐논 카메라로 찍으니 별과 우리가 같이 담겨 나왔다. ‘그거 무거워서 어떻게 들고 다닐라 그래!’ 하며 구박했었는데, 안 가지고 왔으면 크게 아쉬울 뻔했다.  


레이저 포인팅 별 해설이 시작되었다. 해설자 피터가 오늘은 달이 밤 1시에 뜬다고, 그전에 별을 마음껏 볼 수 있어 정말 행운이라고 했다. 더 이상은 나올 별들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숨김없이 다 드러나며 점점 더 또렷해졌다. 

마우나케아: 별도 색이 있다.

피터의 발음은 정확하고 부드럽고 알아듣기 쉬웠다. 분명 그랬다. 음... 그런데,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나는 우리 집 공식 통역사, 자랑스러운 영어 선생님 엄마이다. 1호와 2호는 계속 “엄마 뭐래? 빨리 얘기해 줘 봐. 뭐라고? 사람들 왜 웃어?”라고 나를 재촉했고, 앞 뒤 사람들은 계속 자기 나라 말로 소란스러웠고, 나는 그때마다 피터의 말을 놓쳤다. 급기야 애들한테 화를 냈다. “엄마 안 들리잖아. 니네가 계속 얘기하면 엄마가 못 들어.” 영어는 못해도 별자리에 대한 배경 지식이 많고, 눈치가 빠른 남편이 나보다 더 이해를 잘했다. 남편 말을 듣고 그거였구나 할 때가 많았다. 나는 영어교사인데 왜 잘 못 알아들을까 하는 조급함이 생기려 할 때쯤, 별 해설 시간이 영어 듣기 평가시간으로 둔갑하려고 할  때쯤, 재작년 제주 한 달 살기 하며 별 해설 들었을 때가 생각났다.  

    

맞다. 나는 그때도 하나도 못 알아들었었다. 

우리말이었는데, 우리 애들도 ‘아~’ 하는데 나는 ‘어디? 어디?’ 하고 반대쪽 하늘을 보며 헤매고 있었다. 알아듣고 기억에 남은 건 “여러분 저기 반짝이는 거 보이죠? 저걸 뭐라고 할까요?... 저건 비행기!라고 하는 겁니다.”하는 농담 하나였다. 그렇구나. 우리말로도 잘 못 알아들었는데 영어가 쉬울 리가 없지.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별과 하늘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듣기 평가는 그냥 내려놓기로 했다. 애들도 지쳤는지 더 이상 나에게 묻지 않았다. 졸리고 추워서 언제 집에 가냐고 묻는 2호를 그냥 꼭 안았다. 그래. 영어는, 별은 몰라도 돼. 별을 보고 감동하는 이 눈이면, 이 마음이면 충분해. 더 오래 눈에 담아두자. 


적재의 ‘별보러 가자’를 들으면 나는 언제나 이날 밤 마우나케아로 소환된다.     


적재 ‘별보러 가자’     


어디야 지금 뭐해

나랑 별보러 가지 않을래

어디든 좋으니 나와 가줄래

네게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도 많지만

너무 서두르지 않을게     

그치만 네 손을 꼭 잡을래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나와 같이 가줄래

너와 나의 걸음이 

향해 가는 그곳이

어디 일진 모르겠지만      

혼자였던 밤 하늘 

너와 함께 걸으면

그거면 돼     


피터가 마지막으로 기념품으로 챙겨갈 게 있다고 했다. 바로, 우리가 가지고 온 쓰레기이다. 기념품으로 꼭 다시 가져가 달라고 했다. 아름다운 하와이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기념품을 꼼꼼히 챙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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