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퍼거북 Aug 30. 2020

하와이 Day 10, PM: 칼스미스 비치

나는 파인애플 주스가 먹고 싶어요.

2018.8.7.(화) 


카와모토(Kawamoto Store) - 사파리 헬리콥터(Safari Helicopters: Hilo, Deluxe Vocano Safari) - 4마일 시닉 드라이브(4-Mile Scenic Drive)- 아카카 폭포(Akaka Falls State Parks) – 칼스미스 비치(Carlsmith Beach Park) – 숙소 수영장 – 파인애플즈(Pineapples)   


-이날 오전의 이야기는 하와이 Day 10, AM에 있습니다.


아카카 폭포로 이동하며 4마일시닉드라이브를 달렸다. 하와이에 와서 ‘시닉:경치가 좋은(scenic)’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우리는 멈췄다. 그리고 멈출 때마다 ‘시닉’이라는 단어에 대한 신뢰가 점점 쌓여갔다. 시닉 포인트(scenic point) 표지가 나올 때마다,

멈춘 차가 별로 없는데? 시시한 거 아니야? 벨트 풀고 내리기 귀찮은데 그냥 갈까? 

했다가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애들을 달래서 내리면 숨 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기를 여러 번이었다.


이번엔 시닉드라이브라니! ‘시닉’인데 시닉 포인트가 아니라 드라이브라 벨트를 풀고 내리지 않아도 된다. 4마일시닉드라이브를 경유하는 코스로 구글맵을 맞추고 천천히 달렸다. 정글이 펼쳐졌다. 

4마일시닉드라이브

달리는 길 옆으로 힐로 한인교회 목사님도 언급하셨던 알라에 묘지(Alae Cemetery)가 보였다.    

하와이 오기 전에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책을 찾아보다가 ‘당신의 파라다이스’라는 책을 읽었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서 하와이로 이민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나라와 하와이 사이에 이런 역사적인 관련이 있는지 몰랐었다. 남자들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일하러 왔고, 여자들은 사진만 보고 태평양을 건너 결혼하러 온 것이 하와이 한국인 이민의 시작이었다. ‘사진 신부’ 할 때의 ‘사진’이 찰칵 찍는 사진을 의미하는지도 책을 한참 읽다가 겨우 파악했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Alae 공원묘지가 바로 우리나라 하와이 이민자들의 묘지였다. 우연히 만났다. 목사님 입에서 묘지 이름을 들었을 때 한 번 반가웠고,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보게 되어 두 번 반가웠다. 이 정도면 운명이라 차를 멈추고, 묘비에 적힌 글을 하나씩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한테만 의미 있는 곳인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나중에 빅아일랜드에 다시 오게 되면 꼭 찾아가고 싶다. 그때는 새로 나온 이금이 작가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도 읽어보고 가야지.   

차에서 찍은 Alae Cemetery : 한국인, 일본인, 몰몬교인의 무덤이 있다

   

아카카 폭포는 어젯밤에는 마우나케아 별보기, 오늘 아침은 헬기 타고 화산 보기라는 거대한 여행 일정을 연속으로 소화하고 있는 우리에게 쉼터가 되어주었다. 어제 미처 먹지 못했던 우주인 아이스크림을 아카카폭포를 거닐다 간식으로 먹었고, 폭포물 마시기 컨셉 사진 찍기 놀이도 했다. 처음에는 좀 귀찮아하는 것 같았던 남편이 점점 높은 완성도를 요구하며 사진 찍기 놀이에 빠져들었다. 안돼 다시! 다시 찍어줘! 폭포물로 샤워하기, 폭포물 마시기, 폭포물 손에 받기... 폭포물 마시기는 각도가 잘 안 나와서 나중에는 몸을 거의 90도로 꺾어야 했는데 이 사진은 찍을 때도 한참 웃었지만, 볼 때마다 너무 웃기다. 폭포만 보면 누구나 생각하는 사진 아이디어여서 시시할 만도 한데 왜 이렇게 즐거운 걸까. 오랜만에 사진 찍기 놀이로 신이 났다. 같이 이렇게 오버하고 놀아주는 남편이라 참 좋다. 우리가 많이 즐거워 보였는지 키득키득 웃던 다른 관광객들도 우리를 따라 했다. 그래! 식상해도 직접 해보는 거랑 그냥 보는 거랑은 다르다. 즐거운 건 따라 하자.  

아카카 폭포: 폭포수 한 잔 하고 가실래요?

힐로 한인교회 목사님이 아카카 폭포를 나와서 몇 번째? 주얼리를 파는 가게의 아이스크림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라고 꼭 먹어보라고 했었다. 걷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좀 있다 아이스크림 사줄게 하며 꼬셔놨는데 두 번째 가게인지 세 번째 가게 인지도 기억이 안 나고, 주얼리 가게로 쳐야 할지 기념품 가게로 쳐야 할지 헷갈리는, 두 가지를 같이 파는 가게도 여럿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뭐라도 잘못 건드리면 돈을 엄청 물어내야 할 것 같은 가게에 들어갔다. 아이스크림이 어딨냐고 묻자 본젤라또 아이스크림 냉장고 반만 한 크기에 오래되어 보이는 성에가 가득 낀 채로 차곡차곡 쌓여있는 플라스틱 통 아이스크림을 가리켰다. 여기가 아니구나 싶었지만 코코넛 맛과 파인애플 맛을 큰 통으로 골랐다. 세계 1등 맛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맛있었다. 

    

오후에는 칼스미스 비치에 다시 갔다. 1호, 2호는 거북이를 보기만 했지 같이 물속에서 만나보지는 못했었다. 아이들도 거북이와 함께 수영하기 버킷을 이루기 위한 두 번째 방문이었다. 이번에는 거북이가 좀 더 험난한 곳에 있었다. 접근이 만만치 않았다. 갑자기 물이 깊어지고, 파도가 세어지는 곳으로 거북이가 자꾸 움직였다. 저번에는 거북이와 나만의 무중력 스위밍 타임이 있었는데 (지금도 돌고래와, 거북이와 수영하던 때를 생각하면 이곳의 소음도, 그때의 소리도 음소거된 우주가 떠오른다) 이번엔 아이들과 거북이가 같이 있는 사진을 꼭 찍어줘야겠다고 욕심을 부렸더니 숨도 더 가빠지고 거북이를 자꾸 놓쳤다. 겨우 사진을 찍고, 사실 찍었다고는 하나 어떻게 찍혔는지도 모르는 채로 너무 추워서 밖으로 나왔다. 

두번째 칼스미스 비치

애들은 다시 낚시 놀이, 나는 다시 진짜 거북이 놀이를 시작했다. 잔잔한 바다로 옮겨온 거북이를 따라 멀찌감치 떨어져 유영하는데, 한 거북이가 내 쪽으로 오는가 싶더니, 내 몸을 향해 돌진했다. 나도 놀라고 가까이 있던 남편도 놀랐다. 소리를 지르며 비켜섰다. 저번에는 ‘거북이가 나를 좋아하나 봐. 내가 쫓아가는 게 아니라 정말 거북이가 자꾸 나한테 와.’ 하며 거북이 공주병에 걸렸었는데 이제 나도 좀 겁이 났다. 거북이를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난 여기 풀처럼 서 있을 테니 거북이 니가 와서 쓰윽 스치고 갔으면 좋겠어.’ 하고 수동적인 자세로 따라가고 있었는데, 정말 나를 풀인 줄 알았나 보다. 아니, 그만 따라오라고, 편히 쉬기에는 아직도 너무 가깝다는 거북이의 경고였을지도 모르겠다.

거북이공주병의 최후는?

돌아오는 길에 똥꼬2호가 ‘엄마, 칼스미스 참 좋다. 거북이랑 수영도 하고.’ 해서 ‘좋지, 좋지, 엄마도 거북이랑 수영하는 거 너무 좋더라’ 했다. 내가 좋은 만큼 2호도 좋다니 기뻤다. 그런데 나중에 사진을 보고 우린 엄청 웃었다. 정신없이 찍은 사진마다 2호는 거북이한테서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수영을 한 건지, 도망을 친건지. 거북이와 수영을 한 걸로 ‘보이는’ 사진 한 장을 찾아주려고 갤러리를 뒤졌는데 없다. 하하하. 사진 보며 놀렸더니 2호도 깔깔깔 웃는다. 

줄행랑 치는 똥꼬2호 ㅋㅋㅋ

저녁에는 힐로의 유명 맛집 파인애플즈에 갔다. 대기 시간이 길어서 바로 맞은편에 있는 KTA 마트에서 시간을 때웠다. 파인애플즈는 분위기도 내 맘에 쏙 들었다. 창문이 없어 밤 바닷바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조명이 노랗지만 어둡지 않고, 식탁마다 빨대 꽂힌 통파인애플이 하나씩 놓여있는 열대 분위기. 저 리얼 파인애플 음료는 꼭 먹어야지! 힐로플레이트와 립아이를 시켰는데 난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너무 맛있었다. 내가 꼭 시키고 싶었던 빨대 꽂힌 통파인애플 음료는 남편이 탐탁지 않아했다. 가격이 거의 밥값이기도 했다. 음식에 대해서만은 주관이 확실한 남편이 대신 파인애플아이스티를 먹자고 했다. 평소에 음식에 대해 주관이 거의 없고, 비싸면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내가, 이 정도면 꽤 먹고 싶다는 어필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겉만 번지르르한 파인애플 주스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결국 파인애플 ‘아이스티’를 시켰다. 

아니야. 그건 가짜야. 나는 진짜가 먹고 싶어. 여기서는.  

난 밥을 안 먹고라도 빨대 꽂힌 통파인애플 저걸 꼭 먹고 싶었는데 말이다. 가짜 파인애플아이스티는 맛이 없었다. 남편도 이건 실패라고 통파인애플을 시킬 걸 그랬단다. 


다른 사람이,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질 때 나는 쉽게 ‘노’라고 하지 못한다. 그게 평화로워지는 방법이고, 상대방을 위하는 일이라고 잘못 생각했다. 나이가 마흔이 되고서야 나를 존중하지 않는 건, 절대 나를 위하는 것도, 남을 위하는 일도 될 수 없음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때로는 별거 아닌 일에 연습 삼아 고집을 부려보기도 한다. 이번에는 별거인 일이었다. 고집을 부릴 걸 그랬다. 맛이 생각했던 거랑 다르고 스트로 후웁 한 번씩 네 명이 빨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 사기당한 느낌이 들어도 나는 상관없이 행복했을 거다. 내가 통파인애플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봤으면, 남편은 나보다 더 기뻐했을 거다. 이 생각이 그때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은 바로바로 되지 않는다. 더 연습이 필요한가 보다. 기억하자! 우리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좋아서 자기가 더 좋아할 사람이다. 


1호가 귀가 아프다고 했다. 스노클링, 호텔 풀장 2m 수심 다이빙 놀이, 마우나케아 정상, 오늘 아침 헬기까지 바닥과 하늘을 오가며 귀가 힘들어하고 있었다. 귀가 아프다고 하면 못 놀게 할까 봐, 아님 신나서 노는 가족들한테 걱정을 끼칠까 봐 그랬는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아빠가 너무 강행군이지. 미안해. 내일은 물놀이하지 말고 쉬엄쉬엄 놀자.






이전 08화 하와이 Day 9, PM:마우나케아 별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