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이만큼의 온도
2018.8.6.(월)
켄즈(Ken’s House of Pancakes) - 칼스미스 비치(Carlsmith Beach Park) - 카페 100(Cafe 100) - 레인보우 폭포(Rainbow Falls State Park) - 마우나케아(Mauna Kea Visitor Information Onizuka Center) 선셋 - 마우나케아 별보기
-이날 오전의 이야기는 '하와이 Day 9, AM'에 있습니다.-
서둘러 마우나케아로 향했다. 늦었다.
가는 길에도 비가 확 쏟아졌다가, 개이기를 반복했다. 태풍 예보도 있고, 평지에서도 바람이 무섭게 휘몰아치는데, 과연 저 높은 곳에 갈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달렸다. 사막에서 길 잃은 사람한테만 보이는 줄 알았던 신기루가 계속 나타났다. 우리 차밖에 없는 도로에 자꾸 물웅덩이가 앞쪽에 나타나는데 가 보면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물 못 먹은 사막 여행자가 아닌데도 그렇게 보였다. 신기했다.
마우나케아 일몰과 별보기도 우리 가족 모두의 버킷 중 하나였다.
전적으로 하늘에 달린 버킷.
보름달이 뜨면 별이 안 보이기 때문에 달 정보를 찾아가며 보름달과 먼 날을 택해야 했고, 마우나케아 방문자 스테이션(오니즈카 센터)이 문을 닫는 날도 있고, 바람이 많이 불거나 날이 험해도 갈 수 없었다. 오늘 별을 볼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 없이, 바램만 가득 담고 출발했다.
도무지 어디서 별로 가득 찬 풍경이 나타난다는 건지 상상이 안 되는 도로를 1시간 달렸다. 이 도로 끝에 마우나케아 정상이 있다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가장 비현실적이었던 것은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이었다. 우와, 우와. 탄성이 이어졌다. 이러다 선셋 못 보겠다고 늦었다 늦었다를 입에 달고 속도를 내고 달리다가도 결국 내려서 사진을 찍었다. 이런 걸 내 평생에 언제 또 보겠나 싶었다. 마우나케아 스테이션에 도착하기도 전에 말이다.
이 날 만을 위해 준비한 짐이 한가득이었다. 상상을 초월하게 춥다고 해서 한국에서부터 경량 패딩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똥꼬1호는 소매가 뜯어져서 솜이 삐져나온, 딱 이날까지만 쓰고 버리고 갈 파카, 똥꼬2호는 모자 달린 오리털 조끼, 아빠곰은 마땅한 게 없어 새로 하나 구입할까 하다가 겨울 외투 안에 덧대어 입는 초초초경량 깔깔이 같은 걸 들고 왔다. 나는 친정엄마가 예전부터 ‘생긴건 이래도 가볍고 따뜻하다.’고 자랑했던 패딩을 빌려왔다. 패션은 없고 생존만 있었다. 거기에 컵라면 4개, 보온 물병 2개, 그래도 추우면 덧입을 담요와 우비, 핫팩까지 넣어 큰 배낭이 뚱뚱해졌다. 이거 메고 올라가면 힘들 텐데. 그래도 어느 하나 뺄 수 있는 짐이 없었다.
마우나케아 스테이션에 주차를 하고, 고산병에 대비해서 30분 적응시간을 가졌다. 선셋은 마우나케아 스테이션 앞 언덕에서도 볼 수 있고, 정상(해발 4200M)에 가서도 볼 수 있다. 정상은 4WD 차량이 아니면 길이 위험해서 권장하지 않는다고, 여기저기 끔찍한 사고 차량 사진과 함께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구간이었다. 우리 차는 4WD가 아니었다. 그린샌드비치를 직접 운전해서 들어가고, 마우나케아 정상까지 가려면 4WD가 필수였지만 가격이 비싸서 2WD로 예약했다. 렌트할 때 미친 척 4WD로 업그레이드가 안 되냐고 물었는데 ‘네가 예약한 차는 그게 아니야.’라는 단호한 대답과 함께 거절당했다. 그래서 마우나케아 ‘정상’의 꿈은 접어지는 거구나 했다.
한국에서도 정상까지 올라 갈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이까지 왔으니 정상까지 올라가서 일몰을 보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고산병이 무서웠다.
나는 인도 배낭여행 중에 해발 3500M 고산지대 ‘레’ 지역에 올라간 적이 있다. 바퀴 한 개만큼만 옆으로 잘 못 가면 바로 낭떠러지인 길을 버스 타고 가야 했는데 가는 길에 레보다 더 높은 해발 5300M 고산지대를 지나갔다. 고산병을 앓는 사람도 있고, 안 앓는 사람도 있다고 했고, 스무 살의 나는 뭐 별로 무서울 게 없었다. 떠나기 전 다람살라 지역에서 만났던 한국 스님이 내 얼굴을 보고, 고산병 안 앓을 얼굴이라고 해서 나는 그 말을 철떡 같이 믿었다.
스님이 틀렸다. 나는 고산병으로 죽을 뻔했다. 갑자기 누가 막 목을 조르는 느낌이 들더니 토와 설사가 같이 나오려고 했다. 버스 창문을 깨부수고 나가고 싶었다. 기사 아저씨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정말 숨이 끊어지겠구나 싶었을 때, 나는 다행히도 기절했다. 이때 기절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고산병에 아주 취약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마우나케아까지 왔는데 정상에서 보고 싶다는 욕심과, 무리하지 말자는 마음 사이를 하루에도 수십 번 왔다 갔다 했다. 레에 도착한 후 3500M에서는 괜찮았고, 5300M에서는 기절했는데 4200M 마우나케아 정상에서는? 하와이 여행 카페에 검색을 해보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죽을 것 같았다는 사람도 있고,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모험을 감행하기에는 나는 전력이 있었고,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20대 때와 달리 이제 돌볼 아이가 있는 엄마였다.
남편은 분명히 4WD로 업그레이드 안 시켜주면 정상 안 가는 걸로 하자! 했었는데, 미련을 못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아 의도가 훤히 보이는 검색 결과들을 내놓았다. 4WD 아니어도 다 잘 갔다 왔다던데? 나는 올라갈래. 남편이 선언해버렸다. 체질과 기호와 모든 것이 아빠를 똑 닮은 1호는 아빠를 따라 정상에 가겠다고 했고, 나를 더 닮은 2호는 나와 함께 스테이션에 남기로 했다. 스테이션에서 적응 시간 동안 핫초코와 우주인 아이스크림을 사고, 아빠팀 하나 엄마팀 하나로 보온병을 나눠 챙겼다. 스테이션의 최고 인기 메뉴는 ‘코리안 누들 수프’였다. 우리는 한국에서 이까지 공수해왔는데 여기서 다 팔고 있었다. 여기선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코리안 누들 수프를 샀다.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나한테만,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만 맛있는 게 아니었다. 세계적인 맛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먹고 싶은 유혹이 너무 많았지만, 이건 마우나케아에서 먹어야 해! 하고 아끼고 아껴 온 푸라면(우리 애들은 신(辛)라면을 푸라면이라고 부른다.) 4개는 오늘을 위해 그 먼 길을 왔다. 핫초코와 아이스크림을 계산하느라 서 있는데, 카운터 언니가 문자를 확인하더니 ‘또야? 도로가 또 막힌 거야? 집에 가는데 두 시간 걸리겠네.’ 혼잣말을 했다. 혹시 부시 파이어(산불)가 다시 났나 싶어서 물어보니 맞단다.
순간 소름이 확 돋았다. 이제 더 이상 탈 것이 없어 보였던 그 도로가 우리가 지나오고 나서 다시 활활 타오른 것이다. 태풍 걱정하느라 부시 파이어는 잊고 있었는데, 다시 한번 여행이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만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닭살 돋아가며 느꼈다.
간사한 마음이 다시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지 못하도록,
이렇게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 자체가 선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남편이 서둘러 차를 타고 스테이션 주차장에서 나가 정상으로 가는 입구에 섰다. 관리인이 차 한 대 한 대 확인하고 통과시켜야 올라갈 수 있었다. 심장이 쿵쾅댔다. ‘4WD가 아니어서 안 됩니다.’ 하면 남편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아 두근 댔고, 통과가 되면 가다가 혹시 바퀴가 빠지기라도 해 차 사고가 나면 어쩌나, 똥꼬1호나 남편이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면 어쩌나 싶어 두근댔다.
결과는? 통과였다.
신나게 올라가는 차 뒷모습이 경쾌했다.
이럴 때가 아니다. 똥꼬2호랑 나도 서둘러 스테이션 앞 나지막한 언덕으로 올라갈 시간이었다. 오르막길이어서인지, 정상만큼은 아니어도 고산지대여서인지 헉헉대며 올라갔다. 벌써 일몰을 보기 좋은 곳에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세상에 색깔 봐.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이 환상적이었다.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오묘한 색깔들을 만들며 변해갔다.
“엄마, 너무너무 이쁘다.” “엄마 여기 와 봐. 여기도 이쁘지?”
2호의 입을 통해 나오는 감탄과 경이로움은 마우나케아의 선셋보다 더 이뻤고, 더 감동적이었다. 이날 2호는 한 번도 ‘엄마 사진 그만 찍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엄마 찍어!”를 연발했다.
물론 “엄마 근데 너무 춥다. 우리 코코아부터 먹자.”라고 해서 더 추워질 순간을 위해 남겨놓으려고 했던 코코아는 언덕에 올라간 즉시 원샷했지만.
2호가 옳았다. 우선 속을 따뜻하게 데워놓으니 여유가 생겼다.
남편은 디카를 들고 가고, 사진 화질이 내 폰보다 훨씬 좋은 남편 핸드폰을 나에게 주고 갔다. 이렇게 풍경이 이쁠 줄 알았으면 코디에 신경을 좀 더 쓸 걸. 무조건 따뜻하게만 겹쳐 입다 보니 배경과 어울리지 않게 난민룩이다. “엄마도 여기 서봐” 하고 2호가 나를 많이 찍어줬다. 좀 더 옆으로! 어찌나 주문도 야무지게 하는지.
아빠와 1호, 둘은 저 정상에서 잘 보고 있을까? 우리랑 같은 걸 보고 있는 걸까? 괜찮은 걸까? 이 선셋을 배경으로 넷이 다 같이 찍은 사진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좋은 카메라를 가진 사람 옆에 서 있다가, '보는 눈 있는’ 그 사람이 배경으로 한 곳에서 둘이 서서 짧은 팔로 힘겹게 셀카를 찍고 있으면, 그 사람은 어김없이 “MAY I?(찍어줄까요?)” 하며 사진을 찍어줬다. 누구의 시간도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은 순간들이라, “WOULD YOU?(찍어주실래요?)” 하고 사진을 부탁하는데도 몇 번을 주저하게 됐다. 그래서 우쥬(would you)의 ‘우’만 꺼냈는데도 활짝 웃으며 얼른 받아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준 십 대 소녀들이 너무 고마웠다.
눈을 감고 하와이를 떠올릴 때 2호와 손 잡고 이 언덕을 오르는 장면, ‘너무너무 이쁘다’ 할 때 2호의 입모양, 같이 사진을 찍던 이 장면이 떠오를 때가 많다.
2호에게도 가끔 꺼내 볼 수 있는 장면이 되었길, 그때마다 이 하늘 색깔을 닮은 온도가 마음에 퍼지길, 엄마와 맞잡은 손의 온도, 양손으로 호호 불며 감싸 안은 코코아의 온도가 느껴지길 바래본다.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도 몇 번을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더니, 센터로 오자 깜깜해졌다. 벌써 라면 물 받는 줄이 길어졌다.
-이날의 다음 이야기는 '하와이 Day 9, PM-별보기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