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Day 18, PM:폴리네시안 센터
훌라 춤을 배우다
2018.8.15.(수)
헤븐리(Heavenly) - 로스(Ross) -쿠알로아 랜치(Kualoa Ranch) 정글체험 – 카야 스토어(Kaya’s store) -폴리네시안 센터(Polynesian Cultural Center)
이날 오전의 이야기는 하와이 Day 18, AM: 쿠알로아 랜치 편에 있습니다.
가이드북과 카페 검색으로 쿠알로아 랜치에서 폴리네시안 센터 가는 길에 들릴 수 있는 식당 한 개를 찾았으나 마침 휴무일이었다. 밥을 어디서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에 왼쪽으로 카야 스토어 간판이 보였다. 시골 구멍가게 같은 곳이었다. 변비의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화장실이라도 들리자는 생각으로 차에서 내렸다. 일본인 두 명이 가게 앞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편의점 같은 곳이지만 간단한 식사도 주문할 수 있었다. 깨끗해 보이지도, 맛있어 보이지도, 싸지도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밖으로 다시 나가 뭘 먹어도 이쁘게 먹을 것 같은 일본인 남녀 (신혼부부처럼 보였다)에게 지금 먹고 있는 메뉴가 어떠냐고 물었다. 하나는 별로고 다른 하나가 맛있다고 했다. 나도 같은 메뉴로 주문했다. 휴게소 개념의 가게라고 생각해서 당연히 화장실이 있을 줄 알았는데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더럽단다. 공사장 간이 화장실 같은 게 하나 있었는데 나처럼 배가 아픈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폴리네시안 센터로 이동했다. 폴리네시안 센터는 폴리네시안 섬들의 민속촌 같은 곳이다. 우리는 가이드와 뷔페 저녁식사가 포함된 프라임 앰버서더 프로그램을 예약했다. 가격이 너무 비싸 한참 고민했지만 하쇼 공연을 좋은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공연, 식사 가격을 낸다고 생각하고 큰 맘먹고 신청했다. 가이드를 만나러 센터로 갔을 때 센터 앞에서 크게 손을 흔들어주던 동양인 남자가 이날 우리의 가이드였다. 유타대학교로 유학 온 한국인이었다. 영어가 정말 유창했다. 나는 영어교사이지만 통역 스트레스 없이, 인솔 스트레스 없이 졸졸 따라다니는 오래간만의 시간이 반가웠다. 두 가족이 한 팀이 되었다. 다른 가족도 초등 아들 둘이 있는 한국인 가족이라 반가웠는데 별로 친해지질 못했다. 같은 숙소에 묶고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하하하. 세상은 참 좁다.
선상 공연을 보기 전까지 시간이 30분 정도 남았다고 가이드가 공연 볼 자리는 좋은 자리로 맡아줄 테니 그늘에 좀 있다가 오라고 했다. 나는 너무 기뻤다. 화장실 갈 수 있는 30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스쿼트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복부 마사지를 하고 난리를 치다가 헛간처럼 생긴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오늘의 다섯 번째 도전이었다.
드디어! 성공했다. 오아후에 와서 일주일 만에 처음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가족들도 나를 보자마자 ‘성공했어?’ 묻더니 성공 소식에 환호했다. 배에서 돌덩이를 떼고 바라본 공연은 환희 그 자체여서 내가 선상 위로 올라가서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었다. 선상공연은 딱 하와이스러웠고, 음악과 춤은 원초적이고 신났다.
땡볕에서 공연을 보다가 가이드가 시원한 곳으로 데려가 주겠다고 인솔해 간 곳은 하와이의 자연과 생성 역사를 아이맥스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화산 폭발과 쓰나미를 겪으며 갖추어진 장엄한 자연을 보여주며 no wounds, no change 라는 나레이션이 나왔다. 상처가 없으면 변화도 없다. 우리가 감탄하며 보는 화산이, 바다가 한 때는, 아니 지금도 누군가에겐 집이 없어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자연재해를 거쳐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름다움도 상처에 빚을 지고 있구나. 터지고 깎이고 덮치며 만들어졌구나. 희생이 없는 아름다움은 없구나. 위험이 없는 즐거움은 없구나. 상처가 없으면 변화가 없다는 게 그 뜻이구나. 인간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에서도...
가족 대결로 하와이 전통 비석 치기 놀이도 하고, 얼굴과 몸이 다 빨개지고 눈이 하얗게 돌출되도록 (아이들은 이 아저씨한테 눈을 떼지 못하며 재밌어했다) 소리 지르며 쿵쾅쿵쾅 하는 부족 춤도 봤다. 얼굴 문신이 권력을 뜻해 문신을 너무 많이 해서 과다 출혈로 죽은 족장도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얘기를 듣고 우리도 팔에 문신 판박이를 했다.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문신이 생겼는데 왠지 세상이 좀 더 만만해진 느낌이다. 코코넛 나무를 맨발로 타고 올라가서 따오는 아저씨 공연도 봤다. 공항 광고 영상에 나오는 유명한 아저씨여서 꼭 연예인을 보는 것 같았다. 뗏목을 타고 다리 밑을 지날 땐 모두가 다 고개를 숙이고 손을 뻗어 다리 밑 천장을 만졌다. 행운이 온다고 했다. 무슨 행운을 빌었냐고 애들한테 물어보니 똥꼬 1호는 비밀이란다. 초3인데 벌써 비밀이 생겼다.
비석 치기
코코넛 따기 시범 공연가장 좋았던 프로그램은 훌라 레슨 시간이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짧아서 아쉬웠다. 춤추는 걸 좋아해서 인도 여행을 할 때도 인도춤 배우는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여행 오기 전에는 하와이 무식자라 하와이 하면 떠오르는 게 훌라 춤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와이의 팔색조 매력에 빠져 훌라라는 단어 자체를 잊고 있었다. 가이드 선생님이 훌라춤 배우기는 ‘의무’ 코스라고 강조해서 기뻤다. ‘하실래요?’ 하고 선택권을 우리에게 넘겼으면 세 남자가 ‘아니요.’ 했을 것이다. 훌라춤은 수화에 가까웠다.
"어느 한 소년이 있었는데 바다에서 큰 파도를 만났어요. ~ 꽃을 따서 선물합니다. "
다음에 하와이에 오면 훌라 춤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
무거운 목걸이를 하루 종일 하고 돌아다니느라 목디스크에 걸릴 뻔했다. 목걸이마다 색이 달랐는데 프로그램 등급을 상징하는 프리패스 같은 기능을 했다. 멋스러웠지만 보기만 해도 무거워서 나오면서 당장 버리고 싶었는데 애들이 추억이 담긴 거고 이뻐서 절대 안 된단다. 결국 돌 플랜테이션 아이스크림 통에 담아 한국까지 고이 모시고 왔다. 류준열을 닮은 가이드 선생님께 저녁식사와 하쇼에 대한 안내를 받고 헤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선생님만 졸졸 따라다니다가 헤어지고 저녁식사 전까지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해서 그때서야 브로셔를 펼쳐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코코넛 나뭇잎으로 만든 새와 모자는 어디서 만들 수 있는지 물어 물어 찾아갔는데 마지막 레슨이 끝났다고 했다. 눈여겨 두었던 전통 카누를 타고 싶어 미친 듯이 달려갔는데 이미 마감되었다. 가이드 선생님을 졸졸 쫓아다녀서 참 편했는데 그래서 놓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었다. 여유 있는 일정으로 와서 반나절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체험들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엠버서더 프라임 뷔페는 아주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만족스러운 결혼식 뷔페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음료를 마음껏 주문할 수 있었고, 게다리를 뜯어먹을 수 있었다.
엠버서더 프라임을 선택한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저녁에 열리는 하쇼를 더 좋은 자리로 배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늘이 뚫려있는 무대였다. 시간이 지나며 어둠이 깊어지는 하늘이 그대로 무대 세트가 되었다. 공연의 스케일이 컸고, 우리 자리에서는 배우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다 보였다. 이번에도 스토리를 따라가는 게 무리였던 아이들은 처음에는 엄마, 뭐래 뭐래?를 반복했지만 중간중간 서커스와 불쇼, 코미디스러운 부분들이 있어 점점 빠져들어 재밌게 봤다. 화려한 춤사위에 눈을 뗼 수 없었다.
하쇼 공연장: 이 공연장 하늘에서 바람이 불고, 해가 지고, 별이 떴다.꼭 패키지여행을 온 것 같은 하루였다. 계획과 검색, 내 몫의 긴장까지 가이드에게 맡길 수 있었던 날이라 변비도 해결할 수 있었나 보다. 똥만 잘 눠도 이렇게 행복하다.
폴리네시안 센터에 갈 때는 하루 종일 땡볕을 다녀야 해서 양산은 필수고 얼음물도 최대한 많이 담아가라고 했다. 오버해서 준비한 얼음물들은 미지근해 진채로 남편이 하루 종일 메고 다녔다. 차에 타면서 배낭을 받았다가 무거워서 놀랐다. 주부 10년 차에 반찬 양에 딱 맞는 글라스락 찾기는 어느 정도 잘하게 되었는데 얼음물 딱 맞게 준비하기는 아직 어렵다. 훌라 댄스를 배우러 다시 하와이로 올 때쯤에는 주부 내공도 좀 늘어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