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퍼거북 Oct 05. 2020

하와이 Day 20 : 돌아오다

여행의 유효기간

2018.8.27.(금)


호놀룰루 공항 - 인천 공항 - 집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꿈만 같던 20일이 지났다. 츤데레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마지막 짐 싣는 것까지 도와주셨다. 공항에서 달러 현금을 탈탈 털어 스타벅스 커피도 마시고 우리가 좋아하던 탄산음료 릴리코이 패션도 마셨다. 

게스트 하우스의 효순이: 늙어서 기력이 없다고 했다. 다시 이곳에 오면 효순이를 만날 수 있을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컵라면과 햇반을 시켰다. 애들이 먹자고 졸라서 엄마는 ‘아빠한테 물어봐.’ 아빠는 ‘엄마한테 물어봐.’ 하고 서로 미루다가 여기저기서 풍기는 라면 향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주문했다. 웬만한 기내식보다 더 맛있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전철역에 있는 떡볶이집으로 갔다. 거대한 짐으로 통로를 다 막아놓고 허겁지겁 먹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맛이 없었다. 애들이 아직 떡볶이 한이 안 풀렸다며 우리 동네 떡볶이 집에 다시 가야 한단다.      

집에 와서 그리웠던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킁킁대며 ‘바로 이거야. 역시 잠은 우리 집이야.’ 하며 감탄했다. 1분의 감격 후에 나는 바로 바빠졌다. 텅 빈 냉장고를 보니 가슴이 답답했다. 집안일과 육아, 기다렸다는 듯이 의무들이 몰려왔다. 이리 쉬 꺾여버릴 기쁨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차적 응이 안 돼서 새벽에 깼다. 사실 나는 새벽형 인간이라 새벽에 깨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 내가 앉아있을 서재 방 책상에 벌써 불이 켜져 있었다. 남편이 하와이 커피와 하와이 쿠키를 먹으며 하와이 후기를 쓰고 있었다. 한국에서 하와이를 그리워하며 남편과 동틀 녘 하와이안 티타임을 가졌다.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잘 돌아왔다고, 집에 오니 할 일이 너무 많아 여행의 은혜가 사라지려 하는 위기가 있지만, 아직도 꿈은 하와이 꿈이고 꿈을 꿀 뿔만 아니라 꿈만 같고 그렇다고.... 여행도 불안해하던 나를 응원해줘서 고맙다고. 

답문이 왔다. “마음속에 여행지의 풍경과 공기 가득 담긴 아름다운 충전소 하나 생긴듯한 그 기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거기 들어가서 쉬다 와. 우울한 엄마보다 게으른 엄마가 훨씬 좋은 거래.” 일상으로 급하게 돌아와 현실 타격에 한 대 얻어맞은 머리는 은지의 마지막 멘트에 반대방향으로 다시 한 대 얻어맞았다. 

이어서 은지가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라는 책에서 캡처한 부분을 보내줬다. “매일 청소를 안 해도, 육아 정보를 꿰고 있지 않아도, 누군가가 혀를 찰 정도로 게을러도,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어떤 엄마는 요리와 청소에 소질이 있고, 어떤 엄마는 살림은 별로지만 아이들과 즐겁게 놀 줄 압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아이에게 모범이 되는 엄마도 있죠. 뻔뻔한 엄마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연습, 할 수 있는 것만 하라! 한 사람이 이 모든 것을 다 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못하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 집중하세요. 우울한 엄마보다 게으른 엄마가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훨씬 낫습니다.”

저녁은 사 먹기로 했다. 부엌에서 바쁜 엄마 말고, 여유 있게 먹으면서 애들이랑 수다 떠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텅 빈 냉장고 따위는, 트렁크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는 산더미 같은 빨래는 잊어야지. 

이날 우리 동네 떡볶이는 최고로 맛있었다. 하와이에서 그리워하던 바로 그 떡볶이 맛이었다.     


왜 하와이에서는 아픈 곳이 하나도 없었다가 집에 돌아오니 몸이 아프기 시작했을까. 목이 뻣뻣해졌고, 고관절과 엄지발가락에서는 다시 소리가 났으며, 코가 찡찡했다. 하와이에서는 다 잊고 있던 부분이었다. 온몸이 ‘이제 여행은 끝났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집안일을 다시 시작해서 아픈 걸까? 다시 시작한 홈트 동작이 무리가 된 걸까? 하와이의 기후와 공기가 좋아서 안 아팠을까? 아님 하와이에서는 노느라 아픈 걸 잊었던 걸까? 심리적인 이유일까? 그렇다면 심리적인 게 이렇게 강력할 수 있는 걸까? 똥꼬 1호와 2호는 바로 가려워하기 시작했다. 하와이에서는 매끼 콜라를 먹고, 일 년 치 먹을 라면을 다 먹어도, 집밥을 챙겨 먹지 않아도 가려워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내 관절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아이들이 다시 가려워할 때마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했다. 

     

애들 방학숙제를 포기했다. 아이들이 3일 만에 방학숙제를 다 해내는 것보다 엄마가 방학숙제를 포기하는 것이 더 기적 같은 일이다. 태풍 전 마지막 야외수영장 찬스를 선택했다. 우울한 엄마보다 게으른 엄마가 되기로 했다. 내가 잘했던 거, 애들 이야기 잘 들어주기에 집중해야지. 폐장을 하루 앞두고 한적해진 수영장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또 컵라면을 사 먹고, 하와이와 다르지 않은 우리나라 이쁜 하늘에 감탄하며 방학을 마무리했다. 


여행의 기쁨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았다.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또 다른 기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쁨을 알아보는 눈을 여행을 통해 선물 받았다. 

     

영화 '어바웃 타임'을 영어로 더빙하는 영어 밴드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5분 미션 분량이 있고 녹음파일을 올려야 한다. 여행기간 동안 미션 수행을 못했고 한 주 더 실패하면 탈퇴였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삼일 만에 다시 영화파일을 열었다. 이번 주 미션은 주인공 아빠가 마지막으로 아들과 시간여행을 하는 부분이었다. 둘이 손을 잡고 돌아간 시간은 주인공의 어린 시절, 딱 지금의 우리 똥꼬1호 만할 때였다. 집 앞 바닷가를 아빠와 산책하며 물수제비를 던지고, 같이 바다 보며 나란히 앉아있는 대사도 별로 없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펑펑 울었다. 1호, 2호와 마지막으로 타임 트래블을 하게 된다면 어디로 갈까? 우리 남편이랑 마지막 타임 트래블을 하게 된다면 어디로 갈까?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른 이유는, 나에겐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참 감사했다. 이번 여행 후로 더 많아졌다. 우리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 남편도 그랬으면 좋겠다. 손잡고 해변을 거닐던 그 때로도 좋다. 같이 파도를 타던 그때도 좋다. 같이 재즈음악을 듣고 드라이브하며 석양을 보던 그때도 좋다. 어느새 시차에 적응해서 아침까지 쿨쿨 잘 자는 남편 옆에 가서 가만히 누웠다. 손을 잡았다. 남편이 놀라서 ‘왜 울어?’ 하고 벌떡 일어났다가 영화 보다가 그런다니까 ‘깜짝 놀랐네.’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나는 그 후로도 한참을 울었다. 울지 말라는 뜻으로 연신 내 손을 문질러주다가 스르르 잠이 든 남편을 보고 울다가 웃다가 했다. 

     

감사와 경이로움에 대한 감각이 회복된 여행이었다.      


그래서 바로 이어진 가을에 나는 더 자주 멈추어 서서 감탄을 했고, 사진을 찍었고, 메모장을 펼쳤다. 하와이가 아닌 우리나라 우리 동네에서 말이다. 


여행의 은혜는 지금 여기서도 계속된다. 

하와이 안녕! 


슈퍼거북의 하와이 여행일기는 에필로그 한 편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