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단상을 잊어버리기 전에 후다닥 남기는 글임을 밝혀둔다. 다소 어색한 표현이 있을 수, 많을 수 있다.)
우리나라와 파라과이의 A매치 축구 평가전이 있던 날. 두 골을 넣은 알미론을 비롯한 파라과이 선수들을 인천공항에서 마주했다. 경기 마치고 바로 온 모양이다. 유니폼 때문에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파리를 경유하는 비행기도 같이 탔다.
공항에서 요기를 좀 때우려고 했는데, 연 데가 없다. 여행금지가 풀렸어도 당장 공항부터 완전 정상화되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한참을 걸어가니 세븐일레븐 편의점 하나 열었다. 여행 가기 전 컵라면으로 수혈할까 했지만 뜨거운 물 제공이 안 된단다. 결국 이것저것 빵으로 배를 채우고 새벽 2시 25분 비행기를 기다렸다.
비행기 타서는 그동안 일터에서 느꼈던 상념들을 정리했다.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가만히 눈을 감고 예민해진 내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아껴뒀던 '스페인은 가우디다' 책을 꺼냈다. 가우디의 삶과 여행 오기 전날 받았던 나의 정신분석 상담이 교차됐다. '성취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강박관념이 있었다'라고.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신경 쓰느라 정신이 뾰족해진 나를 가우디의 삶에 얹어보았다. 그 완벽주의자 가우디가 실제로 완성한 건물들은 별로 없다는 것. 완벽하지 못하다고 해서 괴로워할 필요가 없었다. 완벽한 건 세상에 없으니까.
훌륭한 에어프랑스 기내식을 먹으면서 어느덧 파리에 도착. 스탑오버 중에 스타벅스에 있는데 우리나라 모 국회의원을 발견했다. 어떤 연유로 이곳에 있는 걸까.
또 한번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에 도착. 카탈루냐 광장까지 이동. 마스크를 벗고 활보하는 외국인들. 정체 모를 외국어들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이 기분을 느낀 게 얼마만이었던가. 20대엔 외국여행을 오면 생경하고 호기심이 넘쳤는데, 코로나 시국을 지나 30대 초중반이 돼서 오니 이젠 '아, 이런 느낌이었지'하는 익숙함이 더 앞선다. '이런 게 내가 경험했던 유럽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였구나'하는 느낌.
북적이는 람블라스 거리
첫날 숙소는 경비 절약 차원에서 막 비싼 곳으로 하진 않았는데 생각보다 숙소가 허름해서 우리 부부 모두 약간 당황했다. 게다가 로밍 문제로 약간의 말다툼까지. 부부끼리 처음 온 해외여행인데 올 게 왔다 싶었다. 일단 근처 빠에야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대화 간극. 남편이 워낙 차분한 성격이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고만 있는다. 근처 펍으로 옮겨 맥주를 더 들이부었다. 더 답답해졌다. 싱글베드에 각자 누워 눈을 감는다. 첫 부부싸움을 유럽해서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