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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Jun 23. 2022

[바르셀로나 3일차] 스페인 속 로마, 타라고나

지중해 바다에서 여유롭게 헤엄치기

 

(앞선 1,2일차 글은 여행의 단상을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기억을 남겨보자는 글이었지만,  어느덧 일상 복귀 4일 차가 된 지금 벌써 기억이 아득해져 버린 관계로 이번 편부터는 차분하게 글을 써보려고 한다. 1,2일차 글이 부끄러워진다)


 어디로 갈까. 어제 옮긴 한인민박 침대. 눈을 뜨자마자 고민이 시작됐다.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 오늘은 어제 느꼈던 북적함을 또 경험하기보단 다른 구경을 하고 싶었다. 가우디 투어는 역시나 힘들었다. 바르셀로나엔 계속 있을 테니까 나중에 바빠도 되잖아. 블로그를 뒤적거리는데 근교 타라고나 방문기가 뜬다. 평온하면서도 로마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1시간 남짓한 거리. 부담 없이 훌쩍 가서 수영하기에 좋겠다 생각했다. 남편을 꼬셨다.


 민박집 사장님께서 차려주신 조식을 맛나게 먹은 뒤 사장님께 "타라고나 어때요?"라고 물어봤다. 약간 망설이시는 듯한 사장님 표정. 입을 떼시더니 "투어로 갔다 온 사람들의 후기는 썩 좋지 않았다"라고 하셨다. 말을 듣고 약간 고민이 됐지만 뭐라도 좋은 경험이겠다 싶어서 그냥 떠나기로 했다.  


 기차엔 수학여행 온 유럽 학생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다. 어딜 갈까 궁금했는데 타라고나 역이다. 바다에 맞붙어 있는 역에 내리니 넓은 가시거리와 한적한 거리가 펼쳐진다. 관광객은 물론이고 사람도 별로 없다. 같이 내렸던 학생들의 수다 소리가 정겹게 멀어진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지중해의 발코니'(Balco del Mediterrani)라는 산책길을 천천히 걸었다. 깨끗한 코랄 블루빛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길 곳곳엔 노랑·보라 꽃들이 흐드러지게 펴 있다.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소매치기당할까 긴장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편히 마음 가는 대로 걸으며 평안을 채워 넣었다.


바르셀로나에서 1시간여 떨어진 타라고나. 수학여행을 많이 오나보다.


  타라고나는 고대 로마시대에 'Tarraco'로 불렸던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지였다. 걷는 중간중간 로마 유적들이 보인다. 거리에 놓인 해시계에 남편이 손목시계를 대본다. 얼추 시간이 맞는다(!) 조금 더 걸으니 눈에 들어오는 원형 경기장(Amfiteatre del Roma), 로마 유적의 하이라이트다. 월요일이라 못 들어가는 게 아쉬웠지만 멀리서 봐도 충분히 감상할 만했다. 스페인에서 로마를 만났다.  


스페인에서 만난 로마. 원형경기장을 보니 로마인들이 이 땅을 밟았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런저런 구경을 하다 보니 바닷가에 도착했다. 어쨌든 우리의 목표는 수영이었다. 돗자리가 필요했는데 여기의 한적함이 갑자기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에선 넘치는 게 잡상인이었는데 이 넓은 바다를 두고도 돗자리 파는 사람 한 명 찾아볼 수 없다. 맥주나 사자며 반 포기상태로 문을 연 가판대 하나를 찾아 맥주와 프링글스를 사고 가려는데 진열대 틈새로 돗자리가 있다(!) 영어가 서투신 아주머니한테 손으로 네모 모양을 그려가며 겨우 구매. 돗자리까지 손에 넣었으니 이젠 스페인 바다로 향할 시간이다.


  관광객들 없이 잔잔한 바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다 잠에 들었다.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일어나서 찬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이윽고 몸 전체를 내맡긴다. 소매치기 걱정 없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지중해에서 여유롭게 수영을 하고 있다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수영을 하다 허기져 대충 말린 머리로 시내로 간다. 와인을 홀짝인 뒤 반쯤 취한 상태로 고즈넉한 거리를 헤매는데 어느덧 인간 탑 쌓기 동상이 있는 데까지 와 버렸다. 인간 탑 쌓기, 카스텔(Castell)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오래된 축제. 서로 손에 손을, 어깨에 어깨를 엮은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동상일 뿐인데도 그들의 유대감에 묘하게 이끌려 엽서까지 사버렸다.


이렇게 사람 없는 바다에서 수영해볼 수 있을까. 더군다나 지중해에서!

 

 해수욕을 하고 나니 체력이 방전됐지만 벙커 야경을 보러 가기로 한다. 돌산까지 오르는 길이 꽤 험하다. 그 험한 곳에 이미 삼삼오오 모여서 맥주와 주전부리를 먹고 있다. 앉을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다면 '사람 몰리는 전망대…안전장치 부족' 이런 기사들이 도배됐을 텐데 하는 몹쓸 '일' 생각이 잠시 스쳤다. 내가 챙긴 건 환타 레몬맛. 환타 오렌지맛보다는 즙이 덜 함유됐지만 그래도 한국 환타보단 찐하다. 이걸로 목을 축이다 보니 어느덧 해가 어스름하게 지고 곧이어 땅거미가 진다. 바다에 아른거리는 달빛을 보며 바르셀로나 3일째 밤을 마무리했다.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벙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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