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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Jun 26. 2023

이탈리아 7박 8일 여행 wrap up 1부

물의 도시 베네치아, 꽃의 도시 피렌체, 그리고 아름다운 피사까지. 


 이 글은 애당초 여행의 단상이 머릿속에 완전히 지워지기 전에 후다닥 기록하는 메모성 글이다. 향후 이 메모에 조금씩 덧대가며 자세하고 정제된 글로 수정하려 한다. 





 1일차: 로마 도착


 전날까지 과제를 정신없이 마무리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일주일 간 새벽 출근에다 잠을 거의 못 잔 탓일까. 몸이 으슬으슬했고 감기가 올듯말듯 했다. 공항에서 스쿨푸드 콩나묵 국밥을 먹고 감기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13시간 비행 시간 동안 숙면을 취했더니 한결 나아졌다. 눈 뜨니 로마 도착이었다. 내가 이렇게 비행기에서 잘 잤었나 싶다. 우리나라만 입국 수속이 빠른 줄 알았는데 이탈리아도 자동화 시스템이 잘 갖춰 있어 수속이 굉장히 빨리 끝났다. 로마 떼르미니 역 코 앞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비행기에서 끊임 없이 사육 당한 덕에 배는 고프진 않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하룻밤을 흘려보내기엔 아쉬운 우리. 근처 COOP 마트에서 바나나와 하몽 샌드위치, 맥주를 사들고 들어가기로 한다. 남편이 준비해 준 예쁜 토퍼와 이탈리아 맥주 페로니 색깔이 찰떡이다. 낡은 숙소. 그렇지만 충격적이었던 바르셀로나 첫날 숙소보단 나았다. 비행기에서 너무 숙면한 탓일까. 생일을 알리는 자정이 넘어섰지만 숙면하는 남편 옆에서 나는 좀처럼 잠을 자지 못한다. 그렇게 밤을 새버렸다. 


로마에서 첫 저녁은 든든한 바나나. / 직접 촬영 


2일차: 로마 → 베네치아 


 베네치아로 출발하기 전 로마 떼르미니역에서 마신 에스프레소의 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했다. 남편은 기차 시간이 초조했던지 굳이 take-out으로 커피를 받았다. take-out이 민망할 정도로 후딱 입에 마셔버릴 수밖에 없는 양. 어제 잠을 못 잤는데 에스프레소의 각성 탓인지 4시간 이동하는 동안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 눈이라도 감고 있자며 되뇌고 또 되뇌는 순간 베네치아역이란다. 내리는 순간 날씨가 쨍하니 바다가 눈부시게 빛났다. 별로 덥지도 않았다. 이래서 베네치아, 베네치아, 하는구나 싶었다. 

베네치아 역에 내리자마자 보인 풍경. 날씨가 깨끗했다. / 직접 촬영 


 행복함도 잠시, 허벅지가 축축해 온다. 이탈리아 생수병 뚜껑은 너무 약하다. 가방 안이 흥건했다. 지갑이며 여권이며 모두 젖어버렸는데 자꾸 괜찮다는 남편의 말에 짜증이 났다. 첫날부터 싸우는 것은 국룰인가. 맛있다는 중식당에 갔는데 음식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좁은 골목길을 화난 자가 앞서고 화를 풀려는 자가 뒤쫓아 걷는다. 안 그래도 튼튼한 두 다리가 '탈 것'으로 기능하는 이 도시. 배를 탈 게 아니면 걸어야 한다. 오밀조밀한 골목길을 정처 없이 걸으니 체력도 떨어져 간다. 남편과 나는 어느새 앞뒤가 아니라 나란히 걸으면서 낭만적인 풍경을 보고 있었다. 줄무니옷을 입고 열심히 노를 휘젓는 곤돌라 사공 아저씨들이 모여 숨돌리는 모습도 정겨웠다. 남편이 하나 더 준비해준 토퍼를 가지고 리알토 다리 앞에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본다. 


 드디어 제대로 된 저녁. 남편이 생일을 기념해 예약해 준, 골목길 사이로 바닷물이 보이는 멋진 레스토랑이다. 까르보나라는 생각보다 좀 짠 느낌. 화이트와인 한 잔씩 걸치고 오니 잠이 쏟아졌다. 숙소에 와서 쓰러져 자다가 불현듯 눈을 떴다. 남편은 이미 발코니에서 석양을 감상 중이었다. 잘까 말까 고민이 됐지만 결국 남편을 따라 눈을 비비고 밤 바닷물결을 보러 나왔다. 점점 어두워지는 베네치아는 또 다른 낭만이었다. 남편은 조그마한 가판대에서 모히또 한 잔을 주문했다. 1~2평 남짓한 조그마한 공간에서 여러 음료를 제조하시는 아저씨. 조그마한 공간에서도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꾸려가는 마음이 전해졌다. 


베네치아에서 모히또 한 잔! / 직접 촬영 


3일차: 베네치아 → 피렌체 


 새벽 5시에 길을 나섰다. 원래는 일출을 보려 했으나 걷다보니 왠지 해가 이미 뜬 느낌이었다. 산 마르코광장에선 곳곳에 커플들이 웨딩 사진을 찍고 있었고 상인들은 하루를 지탱할 음식 재료들을 실어 옮기기에 바빴다. 1시간 넘게 걷고 들어와 먹는 호텔 조식은 꿀맛이었다. 


 북부에서 이제 중부로 내려와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도시,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에 도착했다. 1인 1피자를 시전한 뒤 줄이 짧은 세례당 내부와 지하 성당 유적을 먼저 둘러본다. 그 다음 조토의 종탑에 오르려고 기다리는데 안내원이 "당신들, 4시 30분에 두오모 입장 예약돼 있는데 가능하겠어?"라고 묻는다. 둘다 400여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 "괜찮다"고 대답한 뒤 조토의 종탑 정상에 먼저 오른다. 1436년 브루넬레스키가 완성한 쿠폴라를 내려다볼 수 있는 뷰. 바티칸 베드로대성당의 쿠폴라를 지은 미켈란젤로가 '이것보다 크게 지을 순 있어도 아름답게 지을 순 없다'고 말한 그 쿠폴라가 보였다. 


안전하게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조토의 종탑에선 두오모의 쿠폴라가 보인다. / 직접 촬영


 조토의 종탑에서도 피렌체 전경을 감상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쿠폴라에 올라가려는 이유는 바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준세이와 아오이가 재회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오르는 계단에, 하필 생리 첫날이라 예민해져버린 나는 남편한테 '4시 30분 입장인데 15분부터 줄을 서 있냐'고 닦달해버렸다. 볼 수 있는 시간이 한정돼 있어서 부지런하게 간 건데 혼을 내버린 셈이었다. 쿠폴라에 올라서도 제대로 구경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씩씩 거리고 있는데 남편이 다가온다. 5시 15분엔 내려가야 한다고. 멍청했던 나는 그제서야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본다. 남편이 항상 한 수 위였다. 뒤늦게 영화 OST를 살짝 틀어가면서 분위기를 내본다. 


 무사히 잘 화해하나 싶더니 자꾸 말이 예쁘게 나가질 않는다. 미켈란젤로 광장까지의 길은 꽤나 길었다. 베키오다리를 지나 겨우 도착하니 바르셀로나 벙커보다 꽤나 좁은 계단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다. 한국인 신혼부부도 "막 결혼했는데, 신혼여행으로 여기에 왔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스냅을 찍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지나 더 어두워지니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비운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가져 온 와인을 다 비운 우리는 계단 빈 자리에 앉아 생맥주와 스프리츠를 추가로 주문해 마셨다. 아름다운 피렌체 야경에 서서히 사이가 풀어졌고 만취해버린 우리는 겨우 숙소로 돌아왔다. 사실 생리 첫날이기도 했지만 이미 이탈리아에 한 번 온 남편이 나를 위해 또 왔다는 생각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복합적으로 들었던 날이었다. 또 유럽에 있으면서도 이 아름다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또 다른 유럽 여행을 꿈꾸고 있는 내가 바보같았던 날이기도 했다. 


피렌체는 건물들이 오밀조밀 서로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쿠폴라가 눈에 띄긴 하지만 그의 기품 때문이지, 뽐내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 직접 촬영 


4일차: 피렌체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전날 하루를 반성하는 일기를 쓰는데 남편도 눈을 떴다. 함께 피렌체 아침 산책에 나섰다. 여기에도 웨딩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네. 근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목에 털어넘기고 민박집으로 왔다. 조식은 푸짐한 삼계탕이었다. 


우피치 미술관의 아늑한 복도. / 직접 촬영 

오전은 우피치 미술관 투어. 투어 미팅 장소인 시뇨리아 광장의 다비드 복제상으로 향했다. 다비드 복제상은 얼굴이 좀 컸고 허리가 좀 길었다. 미술 전공하러 이탈리아로 오신, 지금은 예순살이신 아주머니께서 투어를 진행해주셨다. 우피치미술관은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손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가 가문 소장품을 모두 피렌체 시에 기증하겠다고 해서 생긴 미술관이다. 우피치(Uffizi)는 사무실이란 뜻.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이라 약간 삐걱삐걱 대는데 르네상스부터 바로크 시대 그림까지 볼 수 있었다. 나는 역시 사람이 제일 몰렸던 따뜻한 색감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제일 기억에 남았고 남편은 필리포 리피의 '성모자와 두 천사' 그림이 포근해서 좋다고 했다. 보티첼리의 '라 프리마베라(봄)'까지 세 그림을 엽서와 냉장고 자석으로 들고 왔다. 가이드님은 카라바조의 '메두사'를 기념품으로 추천해주셨지만 남편은 불길하다며 한사코 거부했다. 가이드님의 설명에 따르면 조토는 원래 화가였단다. 그래서 조토의 종탑도 그의 화가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게 흰색, 분홍색, 녹색 대리석을 그림처럼 잘라서 붙인 것이라고. 아, 그래서 채색된 것처럼 보였구나. 


실제로 보니 더 기울어져 있던 피사의 사탑. / 직접 촬영

 길거리에서 곱창버거로 때우고 오후엔 피사의 사탑을 보러 피사로 이동했다. 기울어진 채로 700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로마네스크풍 사탑. 피사엔 피사의 사탑 말고 볼 것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평화로운 마을 분위기도 사탑 못지 않게 참 좋았다. 관광지를 벗어나 처음으로 현지인들의 삶을 느껴볼 수 있었달까. 한적했던 바르셀로나 근교 타라고나가 생각났다. 20분 남짓 걸어 사탑에 도착하니 다들 기묘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손을 뻗어 사탑을 쓰러뜨리거나 무너뜨리는 사진을 찍고 있는 모양이다.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피사의 사탑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꽤 많이 기울어져 있다.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 신기했다. 멀리서 보지만 말고 실제 올라가 보기로 한다. 올라가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짐은 사물함에 맡기고 몸만 올라가야 한다. 계단은 꽤 미끄러웠고 계단을 따라 오르는 동안, 그리고 정상 위에서 한바퀴 빙 도는 동안 몸이 한 쪽으로 쏠리는 느낌을 받았다. 건물은 밖에서만 보면 반절도 못 경험한 것이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다. 또 기울어져 있다는 것만 주목받지만 사실 피사의 사탑은 건물 자체의 색도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이 점도 사람들이 주목해줬으면. 


 여유로운 피사에서 저녁 한끼 편안하게 먹고 돌아와서 레퓨블리카 광장 초입에 위치한 카페 질리로 향했다. 1l짜리 맥주와 티라미수를 시켰는데 꽤 가격이 나갔다. 1733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니 그 전통의 값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피렌체 마지막 날의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나머지 2부는 로마 이야기로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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