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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ghtme Sep 20. 2020

커뮤니티를 탈퇴했다.

 20살이었던 2011년 초부터 즐기던 커뮤니티를 탈퇴한 지 어언 3주가 되었다. 커뮤니티는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었다. 처음으로 컴퓨터를 산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컴퓨터를 켤 때마다 엽혹진에 들어가서 재밌는 글을 찾아봤고, 20살에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시작했다. 특히 스마트폰을 산 이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시간을 보냈다. 게시판에 올라온 모든 글을 다 읽고도 모자라서, 새로 고침을 하며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게시물들을 확인한 적도 많았다.


 매일같이 자극적인 언어로 쓰인, 자극적인 글을 접하는 건 중독적이었다. 킬링타임 용이라고 합리화했지만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시간을 내서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집에서 영화를 보다가도, 일이나 공부를 하다가도 집중력을 잃고 핸드폰을 들었다. 다른 일을 하는 잔잔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커뮤니티에 접속해 마음에 돌을 던지고 파장을 일으키게 했다. 그렇게 8년 동안 달콤한 시간에 빠져 지냈다.


 그러던 중 작년 말부터 개인적인 사정으로 커뮤니티에 접속하지 않다가 최근에 다시 시작하게 됐고,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이 맞는 소수의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고, 서로 다른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자리는 기피한다. 그런데 너무나도 생각이 다른 몇십만 명의 사람이 모인 곳에 들어가니 머리가 아팠다. 점점 내가 예민해지는 걸 몸소 느꼈고, 이러다가 나를 갉아먹을 것 같아 탈퇴를 결심했다.


 어느 책에선가 스마트폰을 많이 하게 된다면, 마음이 자극적인 스마트폰을 원하는 이유가 있는 거라고 했다. 20대 초중반의 나는 많이 불안정했고,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커뮤니티를 접하지 않았다면 더 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지난 세월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20살 때 첫 이별을 겪고 위로도 받았고, 화나는 일이 있으면 같이 분노해주는 사람도 많았고,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여성 인권에도 눈을 떴다.

 하지만 이제는 나만의 가치관이 자리 잡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었기 때문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혼자서 걸어갈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더는 커뮤니티가 필요하지 않다.


 커뮤니티가 없어진 시간은 더 알차게 보내고 있다. 출퇴근 시간에는 책 읽는 시간의 비중이 늘었고, 성공한 여성들의 유튜브를 보며 저렇게 멋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심을 내게 됐고, 이제는 미래가 기대된다. 업무 시간에는 카톡 말고 핸드폰을 사용할 일이 없어서, 업무 효율도 상당히 높아졌다. 쉬는 날에는 온종일 커뮤니티만 하던 날도 많았는데, 이제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늘긴 했지만, 예전보다는 시간을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커뮤니티가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나는 다른 것을 이해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커뮤니티가 맞지 않았고, 그걸 이제 깨달은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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