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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ghtme Feb 01. 2022

엄마

 나에게 엄마는 애증에서 사랑보다는 미움에 더 가까운 존재다. 엄마와 관련된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내가 하지 않았다고 한 일을 네가 아니면 누가 하냐며 나를 혼낸 일, 내가 듣고 있는데 내 앞에서 외숙모와 전화하면서 내 욕을 하던 일, 사람들 앞에서 우리 딸이 보기와 다르게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뚱뚱하다며 창피를 준 일, 화가 나면 몽둥이로 피멍이 들 때까지 때리던 일 등이 있다. 엄마와 있었던 따듯한 일을 생각해보라고 하면 한순간 멍해진다. 억지로 쥐어짜 보자면 고등학교 때 아침에 김밥을 싸준 일이 떠오른다. 그때 당시에는 내가 고등학교 올라와서 성적이 좋아지니까 이제야 잘해주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같이 사는 동안 매일 밤 절대 엄마 같은 어른이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잠들었다.


 엄마는 고집이 세서 본인이 생각하기에 잘못한 일이 아니면 상대가 아무리 애원해도 절대 고치지 않는다. 사람들 앞에서 딸이 뚱뚱하다고 하는 것도, 내가 다 듣고 있을 때 친척들에게 내 뒷담화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내가 존경했던 대통령에 대해 모욕적인 말을 하지 말라는 것도, 사생활을 존중해달라는 것도 울어도 보고 화도 내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웃으면서 약 올리기까지 한다. "그래 울어라~ 너만 손해지"라고 말하며 비웃던 엄마를 떠올리면 나는 절대 그녀를 존경할 수 없다. 나는 우리 엄마를 사회성이 결여된 인간으로 분류한다.

 또 한 가지 생각나는 건 유치원에서 친구들은 집에 가서 엄마에게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한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었다. 나는 엄마랑 대화를 안 하고 지냈기 때문에 그날 처음으로 집에 가서 엄마에게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알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내 얘기를 듣던 엄마는, 얘기가 끝나자 그래서? 딱 한마디를 남긴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엄마는 내 얘기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성질이 덜 나쁘고, 할 말을 안 해도 속으로 꾹 참을 수 있는 성격이었다면 관계가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릴 적 이미 엄마 때문에 화병이라는 걸 경험한 후로 혼자 속으로 쌓았다가는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서 한 번은 참아도 두 번은 못참고 엄마에게 화를 낸다. 우리 언니들은 모두 엄마에게 토를 달지 않기 때문에 엄마에게 나는 이상하고 성격이 더러워서 사회생활이 걱정되는 딸이다.

 모두가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있다고, 엄마는 애증의 존재라고 하는데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나는 어릴적 엄마를 증오했는데, 다른 집도 이정도일까? 우리 엄마는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인데 다른 엄마들도 이럴까? 상처가 나만큼 컸을까? 진심으로 궁금하다. 나는 정말 정신적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엄마와 애증 관계라니 다들 나처럼 살았다는 걸까? 아니면 그중에서도 유독 우리 집이 심했던 걸까?


 사실 어제도 엄마와 다툼이 있었다. 설을 맞이해서 언니네 가족과 본가에 방문했는데, 엄마는 나를 보며 너는 먹는 만큼 살이 찌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평균적인 몸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릴 때부터 엄마가 준 살과 관련된 스트레스 때문에 유독 살 얘기에 민감하다. 몇 개월 만에 다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우선 참고 넘겼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가서 내 몸을 쓱 훑어보더니 "야 너 살쪘다 허벅지 봐 너 살 빼야겠다" 라고 하는데 참았던 게 터져버렸다. 만날 때마다 몸을 훑어보며 내 몸을 평가하는 엄마한테 그러지 말라고 알아서 관리한다고 말 한 게 수십번인데 왜 엄마는 항상 그대로인지 화가 났다. 결국 내가 이래서 본가에 오기 싫은 거라고, 살은 찔 수도 빠질 수도 있는 건데 딸한테 살쪘다고 해서 자존감 깎아내리면 엄마가 행복해지냐고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를 용서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멀었나 보다. 엄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긴 했지만 난 여전히 엄마가 밉다. 하지 말라고 수도 없이 말해도 항상 똑같은 엄마를 그냥 받아들여야 할까.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두 번을 못 참고 상처를 준 내가 잘못한 걸까. 좋은 말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 후회도 되고 죄책감도 느낀다. 같이 살지 않고 자주 만나지 않으면 무난하게 잘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속상하다. 동굴 속에 숨고만 싶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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