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과 불안으로 힘들 때마다 엄마의 부재와 뒤늦게 시작한 심리 치료를 떠올렸다. 어린 나이에 비극을 마주하고, 어른이 되어서야 치료를 받았으니 당연히 힘들 수 있다고 스스로를 보듬었다. 친구들과 달리 나만 왜 이 모양인지 납득할 수 없을 때마다 나 자신에게 설명해 주어야 했다. 과거를 탓하는 방법이 가장 쉬웠다. 고통으로 기억된 온갖 과거 장면들을 끌고 왔다. 실제로 이 방법은 증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소중한 사람이 죽을까봐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할 때면 어릴 적 엄마가 갑자기 떠났던 잔상이 남아 아직도 이러려니 생각하며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또다시 돌아가도 긴 세월 동안 만들어진 단단한 벽을 깰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벽을 더 두텁게 만들 뿐이었다. 아픔에서 탈출하는 방법이 과거가 아닌 현재에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머리로 알고 있지만 사고의 흐름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이별 과정에서 연인이 힘겹게 건넨 한 문장을 듣기 전까지 말이다.
이제는 너의 불안, 강박, 우울이 버거워
심장 깊은 곳이 아팠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우울하다는 이유로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던 나와 긴 시간 고통을 함께 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웠던 시절 자존심이 센 나는 불안해서 모임에 못 나가는 것은 증상에 대한 굴복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그와 함께 꾸역꾸역 모임에 나갔다. 친구들에게 시시 껄껄한 농담을 던지는 내내 식탁 밑에서는 차갑게 떨리는 손을 웅켜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손수 내게 밥과 찌개를 떠먹여 줬다. 그 사정을 알 리 없는 친구들은 오늘따라 둘이 꼴 보기 싫도록 유난스럽다는 장난스러운 비난을 던졌다.
자다가 일어나 나쁜 짓을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잠 못 드는 밤들도 많았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푹 잘 수도 없었다. 물론 옆에 있는 사람도 덩달아 잠을 설쳤다. 불안감이 극도로 치솟는 날이면 긴 줄을 찾아 그의 팔목에 내 팔목을 꽁꽁 손을 묶어야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이런 상대가 견딜 수 없이 힘들다면 길을 내어주는 것이 도리였다.
사실은 좋은 시간도 많았을 텐데 냉정하게 이별을 고하는 모습에 야속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스스로를 돌아볼수록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주 천천히 증상이 완화되고 있었을지 모르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내가 이렇게 힘든 건 당연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극복보다 안주에 무게를 둘 수록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다. 물론 장기 연애의 헤어짐에는 좁힐 수 없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런 나의 자세가 한몫을 했다고 본다.
10년 가까운 연애를 정리하면서 과거에 집중해 현재의 고통을 당연시하면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다고 배웠다. 그게 사람이든 시간이든,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든 말이다.
전문가의 상담과 소중한 친구, 가족, 연인은 존재 자체 만으로 아주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스스로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솔직히 평생 동안 내가 힘들 수밖에 없는 과거 이야기만을 들어줄 사람은 없다. 내게도 더 이상 탓할 수 없는 순간은 왔다. 결국 회복의 마지막 라운드는 개인전이다. 내 인생 보석과 같은 지금의 남편에게 과거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 함께 그리는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는 이유다. 지금을 이야기할수록 습관처럼 과거를 돌아보던 나도 다시 또다시 현재를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