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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Jan 19. 2019

#4. 질문의 시작

인사만 하다가 끝낼 수는 없었다

나는 영업을 하겠다고 나 순간에도 영업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 시절 내게 영업은 '매출을 올리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고객과 잘 지내면 물건이 팔릴 것이라는 순진무구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실제 필드는 마음 같않았다. 덩그러니 남겨진 병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인사뿐이었다. 매일 아침 병원 복도에서 인사를 한 달쯤 하니 '참 열심히 일하는 어린 친구' 이미지를 얻었지만, 그 이유로 고객들이 제품을 구매하지는 않았다. 문득 '이러다 인사만 하다 끝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병원 카페에 앉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고객을 알아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질문을 시작했다.


#1. 내 고객은 어떤 사람일까?

환자들에게 병원은 진찰을 받는 곳이지만 내게 병원은 매출을 뺏고 빼앗기는 전쟁터였다. 빠른 실행이 필요했다. 다급한 마음에 30여 명의 고객을 가장 단순한 기준으로 분류해보았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

영업 사원에게 우호적이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의가 있는  영업 사원이라면 질색을 하는 의사 있었다. 후자는 '내가 써보고 환자에게 유익하면 알아서 살 테니까 절대 오지 라.' 유형의 고객이다. 영업 사원에게 우호적인 의사에게는 자주 찾아갈 수록 친밀감이 높아졌지만, 영업 사원을 기피하는 의사에게는 얼굴을 비추면 비출수록 손해를 봤다. 그래서 눈에 띄지 않도록 그들의 이동 시간과 동선을 파악하여 톰과 제리에 나오는 제리처럼 피해 다녔다. 개인적으로 '환자만을 생각할 테니 내게 인사도 하지 말라'며 인상 쓰고 소리치는 몇몇의 무서운 교수님들을  존경했지만, 존경은 존경일 뿐. 매출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했기에 우호적인 고객 20여 명을 선별하 우선적으로 공략했다. 비교적 응대가 쉬운 고객과 소통하며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내게 냉담한 고객의 마음까지 돌려낼 요량이었다.


#2. 고객과 고객은 어떤 관계일까?

두어 달 의사들을 관찰해보니 내 담당 병원에도 드라마 속에 나오는 권력 다툼이나 갈등이 만연하다는 사실 발견했다. 처음 병원을 배정받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상황들이 눈에 들어오니 무척 흥미로웠다.

그때부터는 의사들의 직급뿐 아니라  병원, 과 내부에서의 실질적 권력관계에 집중했다. 누가 리더인지, 누구와 누가 친한지, 누구와 누가 적대적인지 알아내어 그들을 대하는 모든 말과 행동에 반영했다. 큰 구매 건이나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리더 급부터 접근하자 일이 쉽게 풀렸다. 병원의 탑다운 의사결정 방식에 맞춰 경쟁사 직원이 힘이 없는 사람에게 백날 이야기하는 동안 재빠르게 결정권자를 찾아 공을 들였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물론 영업 사원이라면 병원 안의 권력관계뿐 아니라 구성원들의 얽히고설킨 감정까지도 살펴야  했다. 실제로 A교수와 B교수 사이가 안 좋다는 상황을 모르고 영업을 하다가 일을 그르친 경험이 있다. B교수에게 제품 샘플 사용을 권기 위해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고민하다가 '동료 의사 선생님이 써보시고는 좋다고 하시던데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얼마 전 A교수님이 유방암 케이스에 저희 제품을 써보시고는 지혈도 잘 되고 환자 회복도 빨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B교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아하, 우리 과에서는 A교수를 제일 먼저 찾아가셨나 보네요?" B의사가 나를 휙 지나쳤다. 샘플 시연이 물 건너간 것은 당연하고 한동안 병원에서 가장 수술을 많이 하는 B교수의 매출은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솔직히 너무 유치하다 생각했지 의사도 결국에는 사소한 것에 서운해하고 삐'사람'이었다. 이를 간과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은 것은 결국 담당 영업 사원인 내 탓이었다.


을 계기로 나는 미리 고객들 간의 공적, 사적인 관계를 파악했다. 두 고객 모두 가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둘의 매출 파이를 비교했다. 과감하게 큰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하여 리스크를 줄였다.


#3.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을까?

시간이 흘러 병원 상황에 대해 빠삭하게 알게 됐지만, 실제 매출이 놀라울 정도로 오르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고생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보, 하지만 꼭 필요한 정보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술 장비 영업에 중요한 의사별 수술 정보, 제품 사용에 대한 피드백 등의 핵심 정보 사실 병원 복도가 아닌 수술방 안에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수술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위압감에 겁이 났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수술방 특성상 의료 기기 영업 사원은 장비를 설치, 검수하거나 잠재 고객이 샘플을 사용할 때만 출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장비 점검을 하러 들어갔다고 점검만 마치고 뚝딱 나와버리면 바보 영업 사원이다. 물론 내가 꽤 오랫동안 그 바보 같은 짓을 했지만 말이다. 일이 익숙해지면 오며 가며 수술방 간호사 선생님들과 친해져야 한다. 수술방이 워낙 긴장감으로 가득 찬 라 그런지 영업 사원에게 까칠하게 구는 간호사들 많다. 뾰족한 말로 내 마음에 상처를 내더라도 간호사는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수술방 사람들 통해 교수님의 수술 일정과 월평균 수술 케이스, 자사 제품 사용 유무, 주로 집도하는 수술, 수술 중에 흘리는 제품에 대한 칭찬이나 불만 등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 만약 병원 복도에서 인사할 때마다 "응~ 너네 제품 잘 쓰고 있어~" 하는 의사가 있다고 하자. 간호사가 의사가 말만 저렇게 하고 실제로는 경쟁사 제품을 쓰고 있다는 정보를 흘려준다면, 이에 대한 원인을 찾아 은근슬쩍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반대로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다들 쓴다는데 도대체 왜 내 매출이 안 오르지?' 궁금해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수술방 분위기를 살피고,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응대하기 위해 애썼다.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차갑던 간호사들의 말투와 태도가 점점 따뜻해졌다. 어느새 사이가 돈독해진 사람들은 수술방에서 고객과 제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그 때마다 급하게 받아 적은 지렁이 같은 글씨들이 언제나 업 활동의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스타트업 이직 과정에서 의료 영업 경험은 내게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힘들다는 의료 영업을 하셨네요. 인내심과 끈기가 중요하죠?" 식의 질문을 받은 적이 많다. 강성 고객을 응대하며 익힌 소통 역량이나 인내심 대한 물음이었다. 물론 몇몇의 권위의식을 가진 고객을 대하며 해당 역량을 기른 것은 맞지만 나는 내가 그 이상의 것을 익혔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상황에 대해 집요하게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여 적절한 행동을 하는 힘을 길렀어요."

하지만 면접 장소에서 구구절절 설명을 시도한 적은 없다. 위에 언급한 이야기를 짧은 시간동안 조리 있게 전달할 자신이 없었고, 전달하더라도 내가 지나치게 계산적이고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초반에 무턱대고 뛰어들어 자주 일을 그르쳤지만 나중에는 타깃과 관련된 온갖 변수를 조사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었던 경우가 많았다. 가끔은 나도 고객 앞에서 그토록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내 모습이 어색했지만, 치밀한 분석과 이에 근거한 행동들은 숫자로 평가받고 숫자에 대해 책임을 지는 영업 사원이었던 내가 어쩔 수 없이 가야했던 길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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