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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Aug 04. 2024

그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장

내 아내를 처음 만난 날, 그녀가 내 꿈속을 마구 휘젓고 다녔다.  사랑은 언제나 첫 만남의 강렬함으로 시작된다고 믿는다.  내 아내의 첫 만남과 같이 나는  술과 담배가 가장 확실한 기쁨이 되어 줄 수도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던 기억과 느낌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사진: Unsplash의 Mathew MacQuarrie


그 기억은 나의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난하거나 불우한 삶을 살지 않았다. 제법 풍요로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생 시절, 운동을 좋아했던 나는 한 살 터울 친형과 매주말 아침 7시면 야구 방망이에 글러브 두 개를 끼워 넣고 테니스 공을 손으로 튕기며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땀 흘리고 뛰어노는 것이 전부였던 순수했던 나와 형의 삶은 이사를 가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전문직이었던 아버님은 당시 제법 많은 돈을 벌었다고 들었다. 1970년 대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시작된 한국의 아파트 광풍은 나의 유년 시절인 80-90년 대도 이어졌다. 당시 부모님은 포니를 시작으로 프레스토 르망, 소나타에서 그랜져로 이어지는 기쁨의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 넓어지고 커지는 차와 더불어 부모님은 아파트로 눈을 돌렸다. 당시 부산의 변두리에 살면서 8 학군 부자 동네로 버스를 타고 초등학교를 다녔다. 학교 주변 아파트에 살면서 걸어서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부러웠다.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내가 다니던 중학교 주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달라진 환경과 함께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뀐 환경과 함께 완전히 변해버린 친형이었다. 한 살 터울인 형은 항상 나의 우상이었다. 야구 방망이에 글러브를 끼워놓고 매주말 아침 야구를 하러 다닐  때부터 형은 나의 길라잡이 었다. 운동도 공부도 잘했던 형에게 이겨 먹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먹는 것이었다. 마르고 예민했던 형에 비해 먹는 양이 압도적이었던 것 외에 형 보다 잘했다고 할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의 우상이던 형은 이사를 오더니 급격하게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다. 형이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이라며 데리고 왔던 형의 친구들을 잊지 못한다. 이사를 오고 나서 부모님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만 집에 있었고 우리 집은 항상 비어있었다. 비어 있는 집에 그 형들이 오기 시작했고 온 첫날부터 그들은 우리 집 아파트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본드를 흡입하였다. 무려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행동치곤 너무나 충격적이었지만 그런 형들이 ‘항상’ 비어 있는 우리 집에 드나드는 날이 며칠씩 이어지면서 내 눈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때 나는 왜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당시 형에게 내가 본 모든 것을 부모님께 알리겠다고 이야기하였지만 무서웠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상황에 부모님과 형 그리고 우리 가족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두려웠다. 매일 밤 기도했다. 형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무엇인가에 기도를 했다. 그러나 형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대담해졌다. 나는 두려웠고 괴로웠고 갈등했다. 계속되는 갈등을 없애기 위해선 어떤 결정이든 내려야 했다. 부모님께 이야기하여 모든 것을 알리거나 아니면 나도 그 상황에 적응을 해야 했다. 나는 실망하여 화를 내실 부모님이 두려워 용기 나지 않아 두 번째 선택을 했다.



항상 형을 따라 했던 나는 두렵고 괴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다시 한번 형을 따라 하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그 당시 처음으로 음주를 시작했다. 그렇게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더욱 대담해졌고, 술과 담배를 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주변엔 술과 담배를 하는 친구들만 있었다. 술과 담배는 그렇게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담배와 술은 2019년과 2020년, 이별하기 전까지 20년을 넘게 함께 했다. 술과 담배 없이 살아온 날 보다 술과 담배와 함께 한 날이 아직까진 더 길다.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후회스럽다. 그때 내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보다 나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 나의 20년 남짓한 세월 동안 그 오점 하나가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20년 넘는 세월 동안 나는 끊임없이 나를 합리화했고 기만했다. 당시 어리석던 나는 이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앞으로 20년 넘게 내 인생을 갉아먹고 내 인생을 망가질 때까지 끌고 다닐 거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사진: Unsplash의 Kyle Williamson


나의 지난 20년은 철저한 자기기만의 삶이었다. 매일 아침 담배 한 개비로 시작하는 하루가 얼마나 고단한지 알면서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담배를 찾았다. 매일 저녁 입 안에 털어 넣던 술과 그로 인한 경험이 나의 미래를 앞당겨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스레한 저녁이 되면 술잔을 다시 쥐고 누구보다 시끄럽게 떠들었다. 이성적 자아는 이제 그만 담배를 그리고 술을 놓으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또 다른 자아는 그 지독한 사랑이 정말 끝이라도 날까 두려워하며 벌벌 떨고 있는 손에 쥔 담배와 술잔을 놓지 못했다. 담배와 술잔만 놓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끝없는 자기기만과 거짓된 삶이 괴로워 담배와 술잔 대신 삶 자체를 놓아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깐, 다음 날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눈을 떠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이며, 이만한 것도 없다고 되뇌었다.



술과 담배 없는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내가 술과 담배에서 기인된 감정의 바닥을 기어 다니고 삶 자체를 훼손하는 경험을 수 백 차례 하고 마침내 그들과 아픈 이별을 한 경험을  풀어내보려고 한다. 혹시나 나와 같이 술과 담배를 유일한 친구로서 위로받고 동시에 자기기만에 빠져 거짓된 삶을 산다고 느끼는 분이 계신다면 이 글이 조금이나마 다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제부터 애절한 러브 스토리를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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