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난 술 그리고 담배는 나의 에고가 비대해지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내 삶을 천천히 파괴하였다. 첫 만남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인생의 가능성을 하나 둘 지워나갔다. 술과의 지독한 사랑은 이후 20여 년간 이어졌다.
술은 두려움이 많은 나에게 마법지팡이었다. 여자를 만나고 싶을 땐 나에게 용기를 주었고, 괴로움 앞에선 망각을 주었다. 나는 항상 술을 즐겼다. 혼자서든, 여럿이든. 술집이든, 내 방의 작은 책상이든. 어디에서나 나는 술이라는 마법 지팡이를 휘둘렀다. 대학을 다니며 끝없이 이어지는 술자리를 즐겼고, 숙취로 휘청거리는 청춘은 우리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다. 밤새 술을 마시다 보는 떠오르는 태양은 낭만이었다. 나는 너무나 젊었고 시간은 흘러넘쳤으며 어떤 행동에도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생의 시간은 끝없이 계속되는 줄 알았다.
거의 매일을 술에 찌들어 지냈지만 몰랐던 것은 아니다. 술이 내 인생을 갉아먹고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끌고 다닐 거라는 걸 말이다. 내 안에는 두 개의 자아가 공존했다. 이성적 자아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술 먹은 나를 책망하였고, 책망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고개를 들이미는 수치심에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또 다른 자아는 그 지독한 사랑이 정말 끝이라도 날까 두려워하며 부여잡은 손을 잔에서 떼지 못했다.
내 삶은 술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고 있었다. 절대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그 밖의 모든 것은 부차적이었다. 기쁘던 슬프던 술은 항상 내 인생의 한편을 장식했다. 주변 사람들 또한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기에 나는 이러한 삶이 한 번도 문제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도 그리고 내 주변의 그 사람들에게도 술은 여러 사건과 사고의 중심에 있었다. 떠올리기조차 부끄럽고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중심에는 항상 나와 그리고 술이 있었다. 종종 정상 궤도에서 벗어난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날 때가 있다. 두려움이 덜컥 나면서 술인지 나인지 모르는 어두컴컴한 인생에 희미하지만 강렬한 불빛이 하나 켜진다. 그 불빛은 작지만 강렬하기에 몇 날 며칠 꺼질 줄 모르며 나와 술에게 말을 건다.
정말 계속 이렇게 살 거야?
이렇게 살면 네 인생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니?
이러한 질문이 여태 수 백번은 넘게 찾아왔을 것이다. 술을 더 이상 먹지 않는 것 외에 이 질문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딱 하나 있었다. 술로써 작지만 활활 타오르는 질문의 불씨를 꺼트리는 것이다. 나는 수 백번 이 질문과 대면했다. 처음엔 갈등했지만 나중엔 익숙해져 서둘러 술로 깨달음의 불씨를 꺼버렸다.
술은 나의 뇌를 하루하루 적셔가며 마비시켰다. 술로 마비된 나의 뇌는 서서히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술을 먹기 전에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에서 빛과 즐거움을 발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술에 적셔진 삶을 산 이후부터는 술과 같은 강렬한 자극이 아니고서는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느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술을 먹기 전 기대감, 술을 먹는 몇 시간의 기쁨 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극도로 줄어들면서 매일 아침 눈 뜨는 것이 괴로웠다. 아침부터 먹지 못하는 술을 담배가 대체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담배로 뇌를 달래는 것이었다.
저녁 술 먹기 전까지만 버티면 돼!
매일 아침 태우는 담배 연기가 나를 달래고 나서 근근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밝게 빛나던 눈빛과 사랑스러운 태도, 열정을 가득 품은 젊음이 가진 무기들을 술과 맞바꾸었다.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이었다. 내면이 죽은 느낌을 묘사하기란 쉽지 않다. 정말 다행히도 나는 매일 아침 진저리 쳤던 자기 상실감과 수치심을 술과 완전히 이별하면서 떨쳐 낼 수 있었다.
내가 술을 더 빨리 끊었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종종 궁금할 때가 있다. 더 좋은 학교를 가고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났을까? 지금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도 더 많이 벌었을까?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을까? 왜 나는 더 빨리 술(과 담배)을 끊지 않았을까? 애초에 술(과 담배)을 그 어린 시절에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이런 질문들이 어리석은 질문이란 걸 잘 안다. 그럼에도 이러한 회한이 가득 찬 질문들이 가끔 나를 압도한다. 이 글의 연재가 완료되는 날 이 질문도 함께 사라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