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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Nov 17. 2024

하프 마라톤을 뛰어보았습니다.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프 마라톤을 뛰었습니다. 42.195km의 절반이니 약 21km 정도인데요. 평소 러닝을 좋아하긴 하지만 마라톤 대회를 나가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예전 20대 때 10km를 뛴 적이 있고, 약 15년이 흘러 오늘 두 번째 대회를 참가하였네요.  


지난 9월로 기억합니다. 주말 아침에 다이어리를 보다가 2024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노트와 펜을 들었어요. 그렇게 몇 개를 썼는데 그중 하나가 하프 마라톤이었습니다. 최근 제가 싸이클을 타느라 좀 소홀했지만 그전까진 평소 주 3-4회 이상 5km씩 꾸준히 뛰어 왔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10km를 뛰곤 하여 하프 마라톤 또한 어느 정도 연습을 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프를 신청하였습니다. 


그런데 대회 날짜는 하루 이틀 다가오고 연습은 거의 하지 않으니 하프를 신청한 것이 후회가 되더군요. 그냥 10km 신청해서 부담 없이 뛰고 올걸이란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24년 11월 17일 일요일, 대회 당일이 되었어요. 마침 어제 비가 와서 날씨가 추워졌어요. 평소 뛸 때 반바지를 즐겨 입는지라 추워진 날씨 앞에 고민이 좀 되더군요. 어젯밤 긴 바지를 꺼내놓았다가 아무래도 뛸 때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 반바지를 입고 나갔습니다. 마이 갓! 완전 겨울입니다! 



하프 마라톤은 오전 9시에 출발을 하였어요. 여의나루역으로 가니 지하철에 참가자들이 엄청나게 붐볐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지하철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몸을 푸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저도 어젯밤 자기 전에는 아침에 여유롭게 일어나 고관절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늦잠을 잔 데다 어제 입고 가려고 모셔놓은 옷들도 바꿔야 하는 바람에 준비운동은 지하철에서 허벅지 몇 번 주무른 게 다였어요. 그래도 출발 전까지 약 10분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스트레칭 보다 중요한 것이 물을 빼는 것이죠. 화장실 앞 길게 늘어선 줄에서 열심히 준비 운동을 해주었죠. 




물도 뺐겠다 준비 운동도 대충 했겠다 이제는 준비가 얼추 완료되었습니다. 드디어 출발 신호와 함께 마라톤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므로 처음부터 너무 욕심내서 무리하거나 빨리 뛰는 사람들을 쫓아가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최대한 나의 몸 상태를 관찰하면서 오늘 목표한 거리인 21km를 뛰어야 합니다. 초반 페이스는 1km당 딱 5분을 유지하면서 시작을 했어요. 5km 정도 달리니 딱 좋더군요. 이대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5km를 달려서 그런지 몸이 딱 5km에 적응이 되었나 봅니다. 한 차례 고비를 넘기고 나니 8~9km 정도에서 두 번째 고비가 왔습니다. 힘은 들지만 페이스는 최대한 적정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10km에서 조금 더 뛰고 반환점을 돌고 나니 이제 반만 더 뛰면 된다는 생각에 힘이 아주 쬐금 나더군요. 


약 15km를 넘기니 한계치가 슬슬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 걸을까? 저기에서 옆 길로 빠지면 우리 집인데 그냥 집으로 갈까?"라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한 번 걸으면 다시 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멈추면 안 되었죠. 그대로 그냥 계속 뛰었습니다. 약 18km를 넘어가니 한계치의 약 95% 이상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깡으로 악으로 뛰는 수밖에 없습니다. 18km를 뛰어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걷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3km 밖에 안 남았어! 그냥 닥치고 뛰어!  



한계치에서 저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어찌나 괴물들이 많던지요. 저에겐 반환점이 약 1km 이상 남았는데 이미 반환점을 돌고 쌩쌩하게 달리는 넘사벽 괴물부터 마지막 1km를 남기고 스퍼트를 내던 괴수까지. 그들을 보면서 저의 아리따운 20대가 스쳐 지나갔지만 향수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거든요. 그래도 레이싱은 끝이 나더군요. 서서히 눈앞에 몰려 있는 사람들이 보였고 머지않아 Finish 라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 왔다!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자마자 그대로 앉아버렸습니다. 기록은 얼마나 나왔을까요? 1시간 44분, 1km당 4분 55초 페이스였습니다. 명확한 목표 없이 뛴 것이라 이 정도 기록에 일단 만족합니다. 다음엔 목표를 세우고 조금 더 연습을 해서 나간다면 훨씬 더 좋은 기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네요. 처음 뛰어본 하프 마라톤이었는데 부상 없이 잘 뛴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러닝은 신체 건강도 건강이지만 목표한 바를 성취했다는 성취감과 만족감 그리고 뛰는 내내 은은하게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까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싸이클에 푹 빠져 있었는데 오늘 뛰고 나니 아무리 바빠도 러닝을 게을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년 봄에 또 한 번 뛰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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