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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항현 Nov 22. 2022

끓는 물 속의 개구리

통계물리학의 주요한 연구주제 중 하나는 '상전이와 임계현상'이다. 상전이와 임계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간단한 모형 중 하나가 이징 모형(Ising model)이다. 스핀들은 +1 또는 -1의 값을 가지는데, 각 스핀은 이웃한 스핀들과 같은 값을 가지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질서 경향'은 상호작용 세기라고 하는 변수로 조절된다. 질서 경향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면 모든 스핀이 같은 값을 가지는 상태에 도달한다. 동시에 각 스핀은 열적 요동에 의해 제멋대로 스핀 값을 바꾸곤 한다. 이러한 '무질서 경향'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온도로 조절된다. 


질서 경향과 무질서 경향은 경쟁한다. 질서 경향이 무질서 경향을 압도하는 상태를 '강자성 상태'라고 부르고 그 반대인 상태를 '상자성 상태'라고 부른다. 이 두 상태 사이의 전이, 즉 상전이는 특정한 온도에서 일어나며, 이 온도를 임계온도라고 부른다.


여기서 '상태'는 거시적인 개념이다. 상태는 각 스핀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각 스핀은 그저 주어진 상호작용 세기와 온도에 따라 최선을 다할 뿐이다. 외부에서 온도를 바꾸어도 그런가보다 하며 따라갈 뿐이다. 예를 들어 임계온도보다 낮은 온도에서 시작하여 온도를 천천히 높이다가 임계온도보다 높은 온도가 되었다고 하자. 각 스핀은 "온도가 높아지네~"라고만 생각할 뿐 그게 시스템 전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온도가 높아지면서 시스템은 강자성에서 상자성으로의 상전이를 겪는다.


문득 나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런 상전이를 겪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를 이루는 개인들은 그저 주어진 외부변수에 맞춰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전체를 볼 능력이 없는 개인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들을 보다보면 이 세상이 시스템 수준의 비가역적인 상전이를 겪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위기는 거시적이어서 각 개인이 각자 노력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개인들은 그저 "온도가 높아지네~"라고 생각할 뿐 또는 위기감을 느낄 뿐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문제가 발생하는 속도를 문제를 해결하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무엇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지구적인 노력이 절실한데도 상황은 악화되는 것만 같다. 과연 우리는 서서히 끓는 물 속의 개구리와 같은 처지를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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