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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마치 Jul 18. 2022

At Last (마침내)

영화 <헤어질 결심>







"마침내"

"나는 완전히 붕괴됐어요"


영화가 끝나고 내내 귀에서 맴도는 단어와 문장들이다. 보통 영화를 보고 나서 여운이 남는 건 배우의 눈빛이나, 특정 장면 같은 시각적인 요소가 많았는데, <헤어질 결심>의 여운은 텍스트로 남았다. '마침내'라는 단어가 이토록 슬프면서 설레는 단어였던가 새삼 곱씹어 보게 된다.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의 만남이 <헤어질 결심>이라는 수작을 또 탄생시켰다. 두 거장은 <아가씨> <친절한 금자씨> 등 작품에 이어 또다시, 영화가 남긴 여운에서 나를 한참이나 헤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섬세한 두 사람의 합작을 애정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개인적으로는 이번 영화가 가장 와닿았다. 가장 이해하는데 오래 걸린 사랑이었음에도 말이다.


극장의 불이 켜지고 나서 한참 후까지도 내내 생각에 잠겼다. '왜'라는 의문과 '그럴 수밖에'라는 이해가 머릿속에서 계속 둥둥 떠다녀서다. 서래는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고, 해준은 왜 조금 더 일찍 깨닫지 못한 걸까. 혹은 깨달았음에도 왜 좀 더 일찍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지 못한 걸까. 이런 질문들은 서래와 해준이 비로소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빚어낸 아쉬움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을 만날 수 없었다'는 서래나, 결국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해준이나 모두 안타까운 건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드라마만큼은 맘 편한 해피엔딩이 좋다고 고집하는 내게 이 작품은 '미결(未決)의 사랑도 영원한 사랑으로 남을 수 있다'라고 짙게 말해주는 듯하다. 그래서 더 치명적으로 여운이 남는지도.




나는 해준 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





우리 일 무슨 일이요
내가 밤마다 당신 집 앞을 서성인 일이요?


곱씹을수록, 다시 볼 수록 절절한 사랑 이야기다. 처음엔 범인 찾기에 집중하느라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의 무게를 온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을 뿐 그 모든 말들엔 애정과 그리움이 넘치도록 담겨있었다는 것을 영화 끝날 때쯤이 돼서야 알았다. 아마 해준도 파도치는 바다에서 서래를 찾아 헤매며 그제야 깨닫게 된 것 아닐까.  






 

 너무나 다른 환경에 놓인 두 사람이지만 누가 봐도 하나처럼 조화된다. 함께 초밥을 먹고 치울 때나, 직접 요리를 하며 맛을 보여주는 행동들도 마찬가지다. 집과 육체를 공유하면서도 묘하게 이질적인 아내 정안과의 생활과는 달리, 부부가 아니지만 누구보다 부부답게 행동하는 모습들에서 사랑임을 눈치챘다.


어쩌면 용의자와 형사라는 설정을 봤을 때 이미 알았던 것 같다. 이 사랑이 해준을 서서히 붕괴시키고, 서래가 끝내 '헤어질 결심'을 하도록 만들리라는 것을.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치 <아가씨>에서 숙희와 히데코가 자유롭게 벌판을 달려가듯 서래와 해준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영영 행복하기를 바란 건지도.







그 폰은 깊은 바다에 버려요
아무도 못 찾게




무너지고 깨어진 해준은 밀려오는 만조에서 얼마나 울부짖었을까. 그럼에도 자부심 있고 꼿꼿한 형사니까 서래의 흔적을 찾았을까. 이제 누가 그를 재워줄 수 있으려나. 이 작품에서 잔상이 남는, 텍스트 말고 '장면' 중 하나를 고르자면 바닷가에서 펄럭이는 해준의 자켓자락과 그의 애타는 눈빛이다. 그 장면에서 비롯된 해준을 향한 걱정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더 복잡 미묘하게 만들었다. 사랑을 '마침내' 깨달은 해준이 조금은 원망스러우면서도 불쌍하기도 해서다.




초록 같기도, 파랑 같기도 한 서래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서래의 행동들이 처음엔 자꾸 의심스럽고,  모호한 사람 같았다. 그 모든 게 사랑이었음을 알고 나선 손톱만큼의 의심도 사라졌지만.

"당신은 붕괴되기 전으로 돌아가라"는 서래의 말은 미결로 남기로 결심한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전부의 마음.  동시에 영원히 자신을 사랑하기를 원하는, 서래다운, 단 하나의 바람인 것 같다.  






해준과 서래의 눈빛과 몸짓, 그리고 대사 하나하나 남김없이 '사랑'인 영화.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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