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이다
사회적 은퇴나이 이상이 되면 그전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따라 제2의 삶이 달라진다
여기 30년을 일 하다 은퇴한 분이 있다. 비슷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했기에 나름 전문가라고 불리고 싶다. 그래서 비슷한 업종의 사람이나 동일한 분야를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나면 입에 거품을 물고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그 건 아니라고 말하고 해 봐야 안되고.. 상대방의 감정이나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여유가 없어 대화기 끝나면 뭔가 허전함이 남는다. 요즘 집에서도 밖에서도 점점 격리되는 듯한 신세가 되어 가는 것 같아 편한 지인들만을 찾게 된다. 또 옛날이야기가 이어진다. 요즘 아이들은, 젊은이들은.. 흔히 꼰대라고 불려지는 분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세상에서 늙은 것은 모두 사라지기 전의 쓸모없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수렵생활을 할 때는 힘 있는 젊은이가 필요했고 따라서 수명이 길 필요가 없어서 30~40대가 마지막이었다. 농업시대에 오면서는 점차 위험도도 줄어들고 안정된 식량 보충으로 수명이 50~60대로 늘었다. 그러면서 노인들의 경험과 지혜가 다시 생산에 기여하여 생산량이나 생활이 풍족해졌다는 연구가 있다
현대인의 생을 연령으로 나누어 보면, 30세까지 공부를 하고 기술을 익히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30~60세까지는 본격적으로 사회인으로서의 경제활동을 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한다. 60~90세까지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로 지금까지 쌓아온 돈과 인맥과 가족을 바탕으로 제2의 삶을 살다 여생을 마치게 된다. 즉, 약 30년간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생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30년과 본격적인 30년의 기여를 합쳐 60년 동안 쌓은 경험과 지혜를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귀한 데이터가 있다. 60세가 되었을 때 남은 30여 년의 여생을 또 다른 가치창조를 할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책을 써도 좋을 것이다. 강의를 해도 좋을 것이다. 회사를 차려 컨설팅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멋지지 아니한가. 아들, 손자뻘 되는 친구들과 현재를 논하고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이.
세계인의 삶을 조명한 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아프리카의 한 마을이었다, 젊은 어부들이 며칠을 나가서 물고기를 잡아왔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하고 모든 물고기를 공평하게 나누었다. 먼저 아이들, 여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다음으로 나이 든 어르신에게 나누어 주었다. 젊은 어부에게 물었다. 저 어르신 분도 남자인데 일하지 않고 받기만 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하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분이 어부이실 때 전 저 어린아이였습니다. 지금은 제가 그 역할을 합니다. 나중에 제 아들이 그 역할을 할 겁니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늙음에 지치거나 외로워하지 말자. 충분히 잘 살아왔고 이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한다. 인생의 마무리도 잘해야 하지 않을까?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명이 사라지면 백과사전 한 권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