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완이 Jan 09. 2023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었다. (또!)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를 읽으며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먼저 단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네이버 사전 어플을 켜두고 이 책을 읽었다. 어렵거나 낯선 단어(대부분 한자어)를 보면 저장해두곤 했는데, 그 때문에 이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감응하다‘, ‘부감하다’, ‘감촉’, ‘실감’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뒤의 두 단어는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앞의 두 단어를 첨언해보자면 감응하다는 어떤 느낌을 받아 마음이 따라 움직인다는 의미고, 부감하다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는 의미이다. 이 네 단어를 되씹어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형상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듯하다. 어떤 것을 감촉으로서 느끼고, 직접 부딪히고, 거기서 느끼고, 생각하느라 내면에 잠겨 있는 그런 모습 말이다. 적고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는 실존주의에서 지향하는 인간상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이 문장을 적으면서 네이버 백과에 실존주의를 검색하며 한 번 내 지식이 틀리지 않았는지 검색해 보았다... 꾸준히 공부하자).


나는 어릴 적부터 소설에 대해 ‘언젠가 내가 해야 할 것’이라는 막연한 목표라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에서야 이 막연함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들어 생각해 보니, 굳이 소설일 것도 없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것은 나의 내면을 깊이 고찰하고 그것을 글이라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서는 ‘아, 소설을 쓰면서 혹은 쓴 후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써보고 싶다!’ 하는 감상이 있었다. 정리하자면, 소설을 써야겠다 -> 굳이 소설일 필요는 없다 -> 소설은 참 써볼 만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흘러온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소설이 무엇인지 아직까지 그 구체적인 감촉을 모르고 있을 수 있겠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에 대해 정의한 것이나, 소설에 대한 일반적 설명을 보아도 ‘아, 소설이란 이런 것이구나!‘하고 명료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없다.


그래도 책을 끝까지 읽고 덮은 후 내게 명확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면, 나는 소설에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마치 짝사랑을 하는 것처럼 누군지 정확히 모르겠고 그에 대한 마음도 간단하거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 없이 얽혀 있지만 그래도 내가 종착해야 할 지점이자 관계해야 할 분야라는 선명한 목적의식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나저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에서 마지막에 소개한 가와이 선생님, 그리고 그와의 대화에서 경청과 공감의 경험을 묘사한 점에 매우 놀랐다. 내가 전공하고자 하는 것이 심리상담 분야여서 그런지 몰라도(묘사한 구절이 정확히 경청과 공감을 의미하는 게 아닐 수도 있지만) 받아들여지고 수용되는 경험이 세밀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서 표현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직관적으로 어떤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언젠가... 이 다짐이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에세이가 아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꼭 읽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활용하여 마음의 판도 바꾸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