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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이 Mar 01. 2023

맑은 강 위를 걷는 듯한 목소리

모든 걸 내어주어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왜 그런 느낌을 갖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모든 것'이란 게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나는 그런 마음에 한껏 휘둘리고 있었다.


그 사람과 함께 걷는 내내 마음이 흘러넘치지 않도록 꽉 동여매고 있었다. 어떤 선이 있다면, 나의 마음이 그 선을 넘어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은 생소하리만치 낯설었다. 누군가에게 폐가 되거나 힘들어질까 하는 걱정은 익숙했지만 마음이 흘러넘칠까 인상 쓰는 것은 거의 처음에 가까웠다.


설명하기가 도통 어렵지만, 이 마음에 가장 가까운 단어를 찾는다면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이런 마음에서 출발하겠구나. 배우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는 자명한 것이었다.


그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옅은 섬유유연제 냄새가 맴돌았다. 이런 내가 변태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짙은 수풀 속에서의 섬유유연제 냄새는 다소 낯설지만 어울렸다. 아주 새로운 느낌이 들게 했다.


그는 말이 없었다. 말을 하기가 어려웠으리라. 말은 내가 했다. 계속 질문을 했다. 계속된 질문에 그가 지친 나머지 질문을 하도록 하는 게 내 작전이었다. 이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이 수풀 속에서 일하며 야생동물을 본 적 있는지,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곳에는 어느 계절에 와보았는지, 이 수풀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등.


내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하나의 인터뷰와 같았다. 그 방법 외에는 내게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바라는 것은 이 폭풍우 같은 질문을, 그가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해석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당신에게 관심이 있어요, 당신이 궁금해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당신은…….


그는 맑은 강 위를 걷는 것처럼 말했다. 맑은 강이 조르르 조르르 여러 갈래로 흘러내리는 곳에서, 맨발을 찰랑이며 걷는 사람처럼 살며시 이야기했다. 신중하고, 조심성 있게 이야기했다. 앞서가던 그는 내가 발을 살짝 접질리자, 그걸 알아채고 조심하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의 그러한 예민성이 좋았다.


그 상황이 있고서, 우리는 아주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그와의 만남 자체가 이성관계를 전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맑은 강 위를 걷는 것처럼 말하던 그가 아직 자리해 있다. 그래서 더욱 이상하다고 느껴진다. 내가 그에 대해 가진 정보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었다. 마음은 차고 넘쳐서, 그에게로 흘러내릴 것처럼 찰랑거렸다.


아마 그를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관심과 다른, 애착과 다른, 사랑의 감각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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