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사람들도 그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반면 좋아하는 것은 오래 생각해야 한다.
이번 일기는 그래서 쓸 마음을 먹기 어려웠다. 지금까지 싫어하는 것. 힘든 이유 따위만 써 왔으니 다음 글은 좀 더 밝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쓰자 생각했기 때문에.
덕분에 나는 어제 글을 쉬었다. 위에 서술한 이유로 좋아하는 것을 고민해야 했기에 지하철 안에서의 19분 동안 나름 진지하게 생각했다.
별로 생각나는 건 없었다. 먹는 건 기름진 걸 못 먹어서 회를 제일 좋아하고, 예의 있고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한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며 불안해하며 여러 명과 만나는 것보다 일 대 일로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 삶을 되짚으며 생각해 보기에 19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물론 이 뒤 기억에 꼬리를 물고 몰려온 외로움과 씁쓸한 마음과 싸우느라 짧게 느꼈을 수 도 있다.
그렇게 딱히 건실하지 못한 지하철 내의 시간이 지나고 퇴근길. 또 다른 지하철에 몸을 실은 나는 버릇처럼 소설 어플을 켰고, 갑작스레 번뜩 떠올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2호선 퇴근길에는 정말 많은 인간군상을 볼 수 있다. 강남과 같은 유흥가에 갈 것 같은 사람. 직장에서 에너지를 불태워 의자에서 꾸벅꾸벅 조는 사람. 게임, 애니, 소설 등을 보며 이 무료한 시간을 잊으려 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빡빡한 시간에도 공부를 하는 우러러볼 만한 사람들이 있다.
난 이걸 제일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보는 것도 주인공의 인생과 주변인들의 행동. 삶을 볼 수 있어서 좋아했고 이렇게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의 오늘은 어떠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어릴 적에 본 하나의 관경을 마음에 담고 살아왔다. 아주 이른 아침. 새벽 5시를 겨우 넘긴 시간에 버스에 올랐을 때 그 안에 있던 손님들의 모습이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른 시간 앉아있는 그들의 모습은 참 멋있어 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1, 2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나라는 놈은 주변 관찰을 확실히 좋아했었고, 지금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장면이 나의 저주였다. 무릇 태어났으면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깊게 박혀 지금까지 나를 기쁘게 했고 절망하게 했다. 몇 년 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최선을 다해 살았을 때, 그 풍광은 나의 연료이자 축복이었으나 지금 늪에서 헤엄치는 나에게는 늪 아래에서 나를 붙잡는 족쇄였다.
아, 19분이 끝나오는데 내 머릿속 생각은 끝나지 않는다. 분명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버릇이라 이럴 것이라 믿는다. 크로키나 스피드페인팅도 많이 해야 느는 것처럼 내 빠른 일기 쓰기도 늘어나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제일 내가 바라는 것이다. 생각을 통제하는 것. 이번 글은 여기서 마치지만 몇 십 번째, 몇 백 번째의 좋아하는 것을 담은 일기의 종료는 행복하기를. 이른 아침 버스 속의 풍광을 떠올렸을 때 그 안 햇 빛처럼 밝은 감정만 안에 담고 지하철에서 내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