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우 Mar 17. 2019

혼술

단편소설

“이번 주 도 수고했다! 어떻게 또 보냈네.”

“그러게. 진짜 월요일에는 어떻게 보내나 싶었는데.”

길 구석에 있는 흔히 볼 수 있는 호프집. 그곳에서 들을 수 있는 흔한 대화다. 햇빛이 저무는 빛 같은 조명이 따라놓은 맥주를 더 탐스럽게 보이도록 만든다. 늘 그랬듯이 우리는 오른쪽 구석에 있는 테이블을 차지하고 한 주의 노고를 수다로 풀어내고 있었다.

“이번 주는 진짜 힘들었던 것 같은데. 라프회사 대표 얘기 들었어? 지네 애들은 하나도 못 빌려준다는데 그거 때문에 열 받아서 미치는 줄 알았다.”

“걔네는 양심도 없지. 같이 공동으로 뭘 하기로 했으면 서로 손해 좀 같이 보고, 이득도 같이 보고 하는 건데 순 이득만 같이 보려고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진짜 가끔 정장 입고 오면 ‘아 저게 정장 입은 도둑놈이구나.’ 싶어."

피차 생각은 같은지 나오는 말은 결국 같은 말이었다. 팀장이 아주 나쁜 놈이라는 것. 결국 그것을 이렇게 거창하게 나눠 말한 것뿐이었다. 한 번 나눠 말한 것으로는 모자랐을까. 우리의 말이 조금 더 거칠어지며 결국에는 회사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까지 흘러갔다. 수 번 맥주를 더 시켰지만 오늘은 술이 잘 들어가는 날인지 취하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역시 최고의 술안주는 뒷담화 였다.

“그러니까 결국 걔네는 관심 없으니까 발 빼겠다는 소리야. 자기네들이 먼저 하자고 해놓고 조금 해보니까 돈 안 될 것 같다는 거지.”

“양아치 새끼들이랑 다를 게 없어.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네들 망하는 거 조금이라도 나눠보겠다고 애초에 우리랑 계약한 것 같아.”

“대표님은 그것도 모르고 계약서 디밀었겠지. 하. 사람은 착한데 일은 참 그래?”

뒤에 말은 털어놓은 것이 텁텁했는지 목이 탔다. 이야기가 과열되다 보니 잠시 마시는 속도가 줄었는데 내 몸은 그새를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까보다는 미지근해진 맥주를 잡아 올렸다.

비록 맥주가 시원하지는 않았으나 넘겨낸 뒤 잔만큼은 아주 시원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다들 그럴 때가 있지 않는가. 아주 잠시의 정적인데도 길게 느껴지는 기분. 분명 지금이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결국 사람은 관심 있는 것만 하는 생물이니까. 뭐라 할 수도 없겠다.”

정적은 깨졌지만 조금 황당한 말이 튀어나왔다. 마치 옹호하는 듯이 말하는 그가 어이없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무리 그래도 도의적이라는 게 있는 거지.”

“결국 회사 관계도 인간관계의 하나일 뿐이야. 그 사람이 우리 회사에 관심이 동했으면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같이 가려했겠지. 관심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을 뿐이야. 너도 그렇잖아?”

욱하고 의견을 반박했으나 이어 뒷받침한 말들은 나를 동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인정하기 싫어도 맞는 말이었다. 순식간에 스스로가 생떼를 부리는 애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그런 말이었다. 멋쩍은 손이 유리컵의 손잡이를 턱 잡고 입으로 올려 줬다. 반복학습의 결과인지 애매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술잔을 들어 올리게 됐다. 남은 맥주를 전부 넘기고는 알싸한 보리 향을 뱉어냈다. 다음 잔을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맞아. 나도 그렇게 하겠지. 근데 그렇게 안 살려고 노력하고 있거든. 그렇게 사는 건 너무 못난 사람 같아서.”

한숨인지 술을 마시고 난 뒤의 버릇인지 숨이 말과 같이 토해져 나왔다. 그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또 다른 말들이 나에게 박혀왔다.

“그렇게 사는 건 당연한 거야. 괜히 그 관심이라는 거에 무게를 너무 달고 사니까 전에 걔한테 한 것처럼 되는 거잖아.”

전에 말한 걔가 누군지 바로 알 것 같았다. 분명 우리 사이에서 입에 오른 사람들은 많지만 지금 저 말에 떠오르는 건 한 명밖에 없었다.

“걔는 내가 잃어버린 거니까. 포기했어야지.”

“뭘 했다고 네가 잃어버려. 얼마나 잘 못했다고.”

“그냥 너무 나만을 바랬어. 힘들어서 알아달라고 계속 칭얼거렸는데 지금 다시 생각하니까 나 같아도 싫어질 것 같더라. 나는 걔를 보지 않으면서 상대는 날 봐주길 바랐으니까.”

다시 한 모금을 목에 털어 넘겼다. 이번에는 애매해서가 아니었다.

“그래서 정리한 척하면서, 매일 그렇게 괴롭게 살고 있냐. 아무것도 안 하고.”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야. 지금 이렇게 무관심으로 대해주는 거에 감사해야지. 여기서 넘어가면 그대로 연 끊어야 할 텐데. 하하”

쓰디쓴 아픔이 더 넘어오지 못하게 억지로 웃었다. 앞을 바라보던 시점이 어느새 내 무릎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러니까 넌 너무 관심에 집중해서 산다고 그런 거야. 무관심은 끊어버리면 그만일 연 인건데 질질 끌고 ‘난 못난 사람 아니니까 ‘라고 변명하면서 이어가고 있는 거잖아 지금.”

“그럼 내가 뭐 어떻게 할까. 뻔히 결과 알면서 망치러 가기라도 해야 하는 거냐?”

“그렇게라도 해야지. 네가 옛날처럼 변하면 관심도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지리 궁상떠는 지금 보다는 그게 훨씬 낫지.”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

“아니 넌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관계를 끊지도 못하고 그렇게 매달려 있는 거야.”

술기운이 반발심과 함께 끓어 올라오기 시작할 때 마침 맥주가 나왔다. 그에게 한마디를 더 쏘아내려 하는 순간 사장님이 먼저 선수를 쳤다.

“오늘은 좀 많이 마시네?”

“예. 오늘은 술이 좀 잘 들어가네요.”

“혼자 그렇게 많이 마시는 거 보면 술 참 좋아하는 것 같아. 자 감자튀김 서비스.”

“어휴.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경쾌하게 맥주와 감자튀김을 내려놓으시고는 총총히 사라지는 사장님의 뒷모습을 보아하니 오늘 매출이 썩 나쁘지 않았나 보다. 감자튀김을 입에 하나 던져 넣으며 다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그러고 싶다. 너무 힘든데 겁나서 못하는 걸 보면 나도 대단한 겁쟁이야.”

길 구석에 있는 흔히 볼 수 있는 호프집. 오른쪽 구석 벽 앞 솔로 테이블에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하루를 끝내는 중이었다.


습작 <혼술>

작가의 이전글 안녕 흰 순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