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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Jul 10. 2019

인물열전(나, 사람 그리고 사람들)

우리 모두의 고향 다리 밑..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엄마를 빼다 박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혹여 동네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다닐지라도 외모만 보고도 우리 엄마에게 데려다 줄 정도로 엄마랑 다방면에서 비슷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자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내가 엄마보다는 아빠의 외모를 많이 닮았다는 평가들을 내놓았다. 다시 말해, 엄마를 닮았든 아빠를 빼다 박았던지 간에 나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 부모님의 딸이라는 것은 외모만으로도 증명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요즘 아이들에게는 아니지만) 공통적으로 해당되던 "넌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라는 레퍼토리는 역시 나에게도 어린 시절 내내 적용되던 이야기였다. 심지어 안방 한켠에 놓여있던 조그마한 밍크담요는 엄마께서 다리 밑에서 나를 주워오실 때 내가 쌓여있던 것이라며 나의 다리 밑 설화의 현실성을 더해주기도 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내가 엄마, 아빠께 야단맞을 때, 그리고 언니들, 동생과의 싸움에서 내가 불리할 때 나는 그 밍크담요를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내 주변 아이들 대부분도 고향이 다리 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 황당한 이야기의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얼마 후 다리 밑 설화는 우리네 부모님들이 우리들을 놀려먹기 위해 흔히 쓰시던 수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안도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도대체 이 설화의 출처는 어디인가가 궁금해지기도 했었다. (아직도 언제부터 시작된 이야기인지는 알지 못한다.)


우리 부모님을 아주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꽤 있다. (심지어 자녀들 중에서도 말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오로지 가족만을 생각하고 가족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지 하며 살아온 분들이다 보니 주변인들에게는 그저 본인들과 그 자녀들만이 최고인 이기적인 사람들로 보여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빠는 지방공무원이셨는데, 젊은 시절부터 음주가무를 좋아하셨으며 우리 모두를 떠나실 때 까지도 철이 없었던, 평생을 자잘한 사고 속에 사셨던 문제적 아버지였다. 우리의 아빠를 떠올려 보았을 때 내가 드는 생각은, 그렇게나 놀기 좋아하시고 가지고 싶으셨던 것이 그리 많았었던 분이 어떻게 어마어마한 대가족의 가장 노릇을 하실 수 있었던 것인지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엄마께서는 그게 다 본인의 노고 때문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인생의 숱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우리의 아버지는 꿋꿋하게 직장을 다니셨고 수많은 사건사고 속에서도 가족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던 대한민국의 불굴의 아버지였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빠가 우리와의 영원한 이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던 어느 날, 언니와 내가 기억 속에 아빠의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언니는 가슴 찡한 이야기를 하나 꺼내놓았다.

언니가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저녁 언니는 TV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고 시험기간이라 눈치가 보이는 가운데서도 언니는 마루에 놓여 있었던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몰입을 하고 있었다. 마침 그 당시 언니가 너무나 좋아하던(저는 누군지 기억이 안 납니다.) 한 록가수가 가죽점퍼를 입고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오토바이를 타고 무대 위로 등장했던 파격적인 가수라고 했다.) 언니는 그 가수에게 흠뻑 빠져서는 무아지경 상태에 놓여있었다. 불현듯 뒤쪽에서 기울어지는 그림자에 언니는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아빠가 언니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당연히 공부는 하지 않고 가수에 빠져있는 언니는 혼날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아빠께서는 의외의 말씀을 내뱉으셨다. 

"와~ 저 가수 누구냐? 엄청 멋있네. 노래도 잘하고 기타도 너무 잘 치네. 참 멋진 가수구나."

순간 언니는 두 귀를 의심했었다고 했다. 

'우리 아빠가 저런 말씀도 하시는구나!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아빠도 멋있다고 하다니. ' 그렇게 그날 언니는 우리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고 했다. 바로 무언가를 좋아할 줄도 아는 평범한 남자를 말이다.


어린 우리는 아빠는 그저 아빠라고만 생각했었다. 어른이었고 자식들을 책임져야만 하는 막중한 사명감의 사람으로 말이다. 당연히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기에 오로지 일만 하는 그런 사람으로, 그렇게 본인의 인생보다는 가족의 인생을 우선으로 여겨야 함이 마땅한 그런 사람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참으로 불효 막심한 자녀들이었다. 평범한 남자였던 아버지, 나름의 꿈이 있고 멋을 알았으며 하고 싶은 일도 우리처럼 많았던 아버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어리석은 자녀들이었다. 

아빠는 이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지만 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감은 아버지의 지분이 상당수 차지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난 영원히 우리 아빠의 딸이라는 변치 않는 사실에 감사히 여기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 아빠를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말이다.


엄마는 참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시다 말고 펑펑 우시는 일은 늘상 있는 일에 옆집 할머니 이야기에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생각하시다 말고도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정말 유리 같은 마음을 가진 그런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엄마는 우리 6남매를 모두 건강히 잘 키워주셨다. 

자식들을 위해서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도 서슴없이 하셨고 힘든 가정형편 사이에서도 자녀들을 대학까지 가르치며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사셨다.  남편의 온갖 사건사고를 수습하는 일들도 엄마의 몫이었고 집안의 대소사는 모두 엄마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해결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랬던 엄마인데, 나이가 들자 몇몇 사람들은 그런 엄마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자녀들만을 위해 했던 그 모든 일들이 어리석은 행동이었으며 자기 가족만 위하는 이기적인 행동들이었다며 비난했다. 엄마의 눈물은 엄마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려는 무기라고 일축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결과란 말인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으며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그 모든 일들을 감히 누가 평가한단 말인가? 더욱이 엄마의 그런 희생을 먹고 자란 우리는 엄마의 인생을 절대 평가해서도 안되며 비난할 자격 같은 것은 절대로 가지고 있지 않다. 

엄마가 유치원을 다니고 있던 어린 조카를 봐주던 시절, 가족여행으로 일주일간 유치원을 결석한 후, 다시 등교를 시작했던 조카가 유치원에서 그만 점심을 놓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일주일간의 부재가 선생님들에게는 어느덧 작은 습관이 되었고 그 익숙함으로 인해 점심시간에 선생님들은 조카는 빼놓고 다른 아이들의 점심만을 챙겼던 것이다. (병설유치원이었기에 초등학교 급식실로 아이들을 데려가시면서 조카는 빼놓고 가신 것이었다.) 그 사건은 우리 엄마의 자식들에 대한 유별난 애정을 다시 일깨워 주었고 분노에 치밀던 엄마께서는 다음날 학교로 선생님들을 만나러(따지기 위하여) 달려가셨다. 

그러나 노발대발 화를 내실 줄 알았던 엄마는 전혀 내가 예상치 못했던 행동으로 우리 모두를 당황케 하셨다. 그만 선생님들 앞에서 펑펑 울어버리신 것이었다. (사실, 이 방법이 효과는 훨씬 좋았습니다. 원감 선생님, 더불어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까지 맨발로 쫒아 나오셔서는 머리 숙여 사과를 하셨으니까요.) 역시 우리 엄마는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하실 자식 바보이시다. 우리 자녀들이 도저히 어찌할 바 없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어머니이신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져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다리 밑에서 발견되어 우리 부모님을 만난 것도 아니며 전설 속에 위인들처럼 알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 바로 우리 엄마 아빠의 일부를 받고 태어난 우리 부모님의 소중한 딸이다. 나의 외모, 성격 그리고 작은 버릇 하나까지도 우리 부모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부모님으로 인해 이 세상에서 사람 노릇 하며 살고 있으며 부모님이 고생하여 이끌어 주셨기에(대학까지 기어코 가르쳐 주셨기에) 사람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어깨 피고 살고 있는 것이다. 누가 어떻게 평가하든지 간에 나만큼은, 적어도 우리 자녀들만큼은 우리의(본인들의) 부모님의 삶을 평가하지도 그리고 비난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며 평생 동안 그 노고와 수고에 감사히 여기며 살아가야 할 것이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들로 부모님의 이기적인 사랑에 보답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식 된 자들의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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