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들이닥친 큰언니는 꿀잠을 자고 있던 나를 깨우더니 언니의 핸드폰을 내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렇게 뜬금없는(앞뒤 좌우 없는 상황 속) 핸드폰 화면에는 너무나 행복한 표정의 큰언니와 조영구 님(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조영구 진행자 맞습니다.)의 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뭐긴 뭐야? 내가 찍은 사진이지. 대단하지? 몇 장 더 있는데 사진 보내줄까?"
이 말을 남기고는 큰언니는 휑하니 엄마의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내 핸드폰에는 '띠링'하는 문자 알림음이 났으며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의 핸드폰에도 조영구 님의 사진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꿈에 나올까 무섭긴 하지만,) 푸하하하.. 역시 우리 큰언니야'
행복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겐 물질이 행복의 기준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가족이나 사람들이 행복의 기준일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명예나 지위와 같은 것들이 행복의 기준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아직도 나를 진정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지 못했다. 뭐 나름 감사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현재의 나의 모습이나 상황들이 진정 행복의 조건인지가 의문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게 될 때, 나는 우리 큰언니를 떠올리게 된다.
큰언니와 나는 무려 12살의 나이 차이를 가지고 있다. 띠가 한 바퀴 도는 엄청난 차이로 인해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큰언니는 이미 성인이 되어 경제생활을 시작했으며 나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더욱이 큰언니는 내가 중학교 2학년이던 그 해 결혼까지 하여 한 가정을 이루었기에 언니와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나에겐 극히 드물뿐더러 떠올리수 있는 것조차 별로 남아있지 않다.
그저 부모님께서 전해주시는 이야기들로 인해 실제 경험한 기억이 아닌 나 나름대로의 상상의 모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큰언니가 중학생이던 시절, 큰언니는 죽어라 공부를 싫어했기에 아침마다 학교를 가기 싫어했고 그에 대한 핑계로 어린 동생(즉, 바로 나)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학교 등교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아침만 되면 잘 자고 있는 나를 등에 업고는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꼬장을 부렸다 하니, 아무것도 몰랐던 나로서는 본의 아니게 언니의 학업에 지장을 준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부모님들의 증언입니다. 큰언니는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머리가 크고 모든 걸 잘 기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언니는 이미 한 가정을 이루고 누군가의(저의 첫 번째 형부시죠.)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큰언니는 내가 지금껏 본 모든 사람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유쾌하며 명확한 사람일 것이다. 물론 내가 언니의 인생의 모든 면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한 바로는, 우리 큰언니는 정말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다. 남들보다 풍족하거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소소한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을 줄 알며 본인이 좋아하는 일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상관치 않고 과감하게 실행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다.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고민을 오래 간직하고 있지도 않는 그야말로 단순 명료의 삶의 가치를 몸소 실현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의 큰언니라고 나는 감히 생각해 본다.
우리 아빠가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계실 때, 자녀들인 우리는 매일매일을 병원에 들려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며 아빠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나름 노력들을 했지만, 조금도 움직이시지 못하고 병원에만 누워계시는 아빠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기에는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셋째 언니가 아빠께 동영상 하나를 보여드리게 되는데, 아빠는 그 영상을 보시고는 고통마저 잊으시고 오랜만에 껄껄거리시며 웃음을 터뜨리셨다.
그 영상은 바로 우리 큰언니가 친구분들과 함께 노래자랑에 나가 춤추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고만고만한 아줌마들이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박자는 하나도 안 맞는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은 정말 내가 보기에도 가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1절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땡"하는 맑고 고운소리가 났으며 언니와 친구분들은 실망스러운 표정들로 무대를 내려왔다.
그러나 우리의 큰언니는 정말 부끄러운 표정 하나 없이 그리고 너무도 당당하게 얘기했다.
"예선 떨어졌잖아. 난 잘했는데 말이야. 다음엔 반드시 방송에 나오고 말리라"
언니의 이런 당당함에 우리 모두는 한바탕 웃음을(존경의 박수를 치며) 터뜨렸으며 그렇게 우리 가족 모두가(아프신 아빠까지도..) 잠시나마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요즘 들어 내가 많이 하게 되는 생각 중 하나가 바로 '그래, 인생 뭐 있나.. 큰언니처럼 살면 되지!'이다.
언니도 지금의 삶의 모습으로 오는 과정 속에 많은 고비와 노력들을 지나쳐 왔겠지만 이제, 나름 인생의 후반을 시작한 언니는 누구보다도 행복하며 즐거운 삶을 살고 있음이 나와 우리 모두에게 보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녀들도 다 잘 키워 번듯한 직장을 가진 성인들이 되었고 지금까지 함께 한 배우자와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으며, 주말이면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노래교실에 가서 춤도 추고 노래 부르며 다음 노래자랑에서는 예선을 통과하기를 고대하고 있으며, 그리고 부모님들과 동생들에게도 이제는 웃으며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서 언니는 그렇게 누가 봐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보통의 삶은 결코 쉬운 일도 사소한 일도 아니다. 그다지 큰 고난 없이 무난하게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이 좋은(훌륭한)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며, 작은 것에 행복과 보람을 느낄 줄 아는 진정 아름다운 삶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보통사람들은 절대 보통이 아닌 어느 누구보다도 위대한 사람들이며 칭찬받아 마땅한 인생의 선생님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큰언니는 나의 훌륭한 인생의 스승이자 행복의 본보기이다.
"그래! 인생 뭐 그렇게 심각하고 심오할 이유가 있나? 우리 큰언니처럼만 살면 행복한 인생인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