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oung Jul 31. 2019

인물열전(나, 사람 그리고 사람들)

선(先:먼저 선) 생(生:날 생)

"선생님~ 저 방학했어요. 밥 먹어요."

"충성! 선생님. 휴가 나왔습니다. 고기 사주십쇼."

방학철이 되면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옛 제자들이 어김없이 전화들을 걸어온다. 하나같이 집에 왔다며 한번 만나자는 연락들이 대부분이며 간혹 군대에서 휴가 나온 청년들과 벌써 취업을 한 제자들이 (전 세계적인 경제난 가운데 참으로 훌륭한 제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휴가를 맞아 고향에 오면서 만나자는 연통들을 날리는 것이다.

그러면 이 밥 잘 사 주는 예쁜(맞을걸.... 요? 죄송합니다.) 선생님은 이 경제난에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으로 신사임당님을 부득이하게 자주 영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연인 건지 아니면 필연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많은 사람들(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어있다. 대부분의 제자들과 여전히 간간히 서로의 안부들을 물으며 잘 지내고 있지만 지금까지 지내온 제자들 중에는 나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아이들도 꽤 여럿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의 처음 만남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저 그들에겐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이름이 그다지 중요치 않는) 항상 선.생.님 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사에서 선생님들의 역할을 참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가족과 친인척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만나는 어른 사람이 선생님이고 부모님의 말은 죽어라 듣지 않는 청개구리 같은 우리들이 선생님의 말이라면 찰떡같이 믿는 사람들로 거듭나는 것을 보면  선생님이란 어른의 존재는 우리들에게(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상당한 영향을 가짐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꽤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한다. 나 또한 모든 정규 교육과정을 무사히(맞나?) 통과해 왔기에 여전히 나의 기억 속에 또렷이 자리 잡고 계시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에게 인상적인 선생님들은 딱 두 류로 나눠질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본받고 싶은 그런 어른인 선생님들과 그야말로 그저 선생님인 사람들... 이렇게 말이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사립재단의 학교였다. 그렇다 보니 선생님들의 이동 자체가 별로 없었고 나는 3년 내내 같은 선생님들과 학교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이 학교가 좀 특이한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일제식 교육의 잔재가 아닌가 싶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에 말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치마 있는 날이 있었으며, (이때까지 교복자율화가 시행이 되고 있었기에 저는 중학교 때는 교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그런 연유로 여자중학교의 이사장님께서는 이런 괴상한 규칙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청소시간에는 앞치마와 머리 두건을 착용하라는 어처구니없는 교칙들이 존재했었던 것이다.

1학년일 때는 아무것도 모르던 순진한 소녀였기에 그 괴상한 규칙들을 엄수하며 모범생이 되려고 애썼으나 2학년이 되고(갱년기와 맞먹는다는 중2병의 시기입니다.) 더욱이 다른 학교 아이들은 우리 학교의 규칙들이 듣도 보도 못한 일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하나둘 그 규칙들을 어기기 시작하였다.

치마 입는 날은 선생님들보다 일찍 학교에 등교하여 사물함에 넣어뒀던 치마를 바지 위에 덧입고 있었으며 청소시간에는 요리조리 숨어가며 앞치마와 머리 두건을 거부했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쩌다 걸리게 되면 학교 운동장을 오리걸음으로 몇 바퀴씩 돌기도 했으며 회초리로 허벅지를 맞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나는 이런 일들이 이제 중학생이 되어(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기에) 모두들 겪는 당연한 일들로 여겼었으나, 나중에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다른 중학교 출신 아이들은 치마는커녕 학교 다니면서 맞는 일들로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그 부당함에 뒤늦게 억울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러나 정작 나의 중학교 선생님들은 너무나 오래 그러한 일들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학생들에게 말도 안 되는 규칙을 강요하고 어긋나는 아이들에게는 벌칙과 매로 그 대가를 치르게 하는, 이 모든 일들 자체가 선생님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며 자연스러운 일상들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중학교 선생님들은 그야말로 그냥 선생님들이었다. 상하관계가 명확하며 누군가는 가르치고 누군가는 배우는... 그 선이 분명하게 그어져 있어야 하며 또한 명확하게 지켜져야 하는 그런 관계들 말이다. (물론,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늘 그 선들을 침범하기도 하고 지우기도 한다. 우리는 무적의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이었으니까..)


그런 일상들로 인하여 지금까지도 생생히 남아있는 기억이 하나 있다. 중학교 선생님들 중 수학담당의 한 남자 선생님의 관한 기억인데, 그 선생님은 학교에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을 하시곤 했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청소시간이 되면 그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를 누비시면서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하지 않은 학생들을 회초리로 때리시곤 했었다. 당연히 내가 늘상 맞는 대상이었고 청소시간은 그야말로 추노와 노비들의 기는 현장을 방불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 운명의 그날) 그날도 어김없이 선생님은 오토바이를 타시고 학교의 이곳저곳을 활보하시면서 회초리로 교칙을 어긴 아이들의 매타작을 즐거이 행하고 계셨고 나는 선생님을 피해 열심히 도망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동을 하던 중 그만 오토바이를 타신 선생님과 정면으로 맞닥드리게 되었고 나는 눈물을 머금고 매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있던(앞치마와 머릿수건을 착용하지 않은) 한 아이가 선생님의 눈에 먼저 띄게 되었고 선생님은 그 아이의 엉덩이를 회초리로 가격을 하셨다. 그리고 깜짝 놀란 그 아이가 뒤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나는 그만 "선생님!!!!"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분은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회의차 학교에 오셨던 어머님이셨던 것이었다. 수돗가에서 몸을 수그리시고는 손을 씻고 계셨던 그 어머님은 너무나도 어이없는 상황에 얼굴이 벌게지셔서 할 말도 잊은 채 선생님을 노려보고만 계셨고 선생님은 당황한 나머지 얼른 오토바이에서 내리셔서는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셨다. 얼마 후, 진정을 하신 그 어머님께서는 그 길로 바로 교장실로 달려가셔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하여 항의를 하셨고 그날 이후로 수학선생님의 청소시간 드라이브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참으로 희한한 일은 분명히 나는 그 수학선생님의 수업을 들었었다. 그러나 나의 기억 속의 선생님은 오로지 이 한 사건으로만 기억이 난다는 것이다. 어째서 3년이란 세월을 함께 보낸 선생님의 대한 기억이 쫓고 쫓기고 그리고 맞고 벌 받은 기억만 남아있단 말인가!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또한 아련하면서도 미소 지어지는 기억이긴 하나, 이왕이면 나의 중학교 선생님들이 진정 다시 뵙고 싶은 분들, 그리고 스승의 날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분들이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됨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고1 시절 나의 담임선생님은 국어과목을 담당하셨던 여자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가 2학기를 막 시작할 즈음부터 건강이 좋지 않으셨다. 그러다 결국, 병가를 가시게 되었고 우리는 졸지에 담임선생님 없이 부담임 선생님의 지휘 아래 나머지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의 부재 외에도 국어과목 수업이 여러 선생님들로 대체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런데 국어시간을 채워 주시던 선생님들 중, 그 당시 3학년 담임을 맡으셨던 한 남자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우리 반의 수업을 들어오시자마자 나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게 될 말씀을 하셨다.

"너희들도 이제 내 새끼들이다. 길거리 가다 나 만나고 모른 척하면 가만 안 둔다. 난 너희들을 다 기억하니까."

처음엔 그저 '오지랖이 넓으신 분이네. 우리가 한 두 명도 아니고 다 어떻게 기억을 하신다고.' 정도의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3학년이 되던 해 삼일절 날, 물론 국경일이기에 학교를 나가는 날은 아니었지만, 그 해 우리 학교는 삼일절 행사를 가질 겸 그리고 새로운 반과 담임선생님을 확인할 겸 우리들의 등교를 권유했었다. 당연히 강요가 아닌 권유이기에 나는 이 권유사항을 깔끔히 무시하고는 집에서 국경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때, 살짝 궁금해진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반과 담임선생님에 대해 물었고 놀랍게도 1학년 때 잠깐 만났었던 그 남자 국어 선생님께서 나의 담임선생님이 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설마 날 기억하시겠어? 정말 잠깐 스쳐 지나간 우연이구만.'

다음날,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가뿐한 마음으로 나의 3학년 교실로 입성을 했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나의 눈에 들어온 건 바로 교실 칠판에 떡하니 붙어있는 하얀 종이 한 장이었다. 그리고 그 종이에는 나의 이름을 비롯한 몇몇 아이들의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적혀 있었다.

'저게 대체 뭔고? 왜 내 이름이 저기 적혀있단 말인가? ' 그건 바로 어제, 그러니까 삼일절날 등교하지 않은 아이들의 이름, 다시 말해 나의 새로운 담임선생님께서 정성스레 추려 붙여놓으신 수배자들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드디어 앞으로 1년을 보낼 담임선생님과의 만남의 시간이 되었고, 선생님께서는 들어오시자마자 칠판에 있는 수배자들을 일으켜 세우셨다. 서있던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곁으로 지나가시면서 선생님께서는 회초리로 '톡' 치시고는 혼을 내셨다. 그렇게 나 역시 선생님께 혼날 각오로 결연히 서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내 옆으로 오시더니 역시 나의 머리를 '톡' 치시면서 말씀하셨다. "어이구, 이것도 내 새끼네. 잘하는 짓이다."

'헐! 정말 나를 기억하시는 거야? 수업 한 두 번밖에 안 들었는데. 그럴 리가, 난 늘 있는 듯 없는 듯 한 사람이건만..'

선생님께서는 그 두 번의 수업밖에 듣지 않았던 우리들을(그리고 나를) 정말 다 기억을 하고 계셨다. 그리고 너무도 친숙하게 우리를 '내 새끼들'이리고 말씀해 주셨다.

어느 날 수업시간,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선생이란게 별거 없어. 그냥 먼저 태어나 너희들보다 세상을 먼저 살고 있는 사람들이야. 먼저 경험하고 먼저 배운 것들을 너희에게 전해주는 사람들이야. 너희들보다 많이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너희들보다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저 너희들보다 먼저 살아온 사람들이니까 보고 좋은 점은 따라하고 나쁜 것들은 따라하지 말라는 거야. 선생이란 말에 존중의 의미의 '님'을 붙이는 건 좋은 일이지만, 선생들이 권위에 사로잡혀 무조건 '님'을 붙여야 한다고 강요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희들이 진정 본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강요하지 않아도 우리를 존중해 줄테니까."


내가 대학교 3학년이던 어느 여름날, 방학이 되어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큰 대로변 한쪽 편에 가파른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다. 집을 나와 막 언덕길을 내려가려고 하던 그때, 언덕 아래 대로변 맞은편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분들은 길가에 있던 한 중국집으로 들어가시고들 있었는데, 아마도 회식 자리였던 것 같다. 그렇게 그 무리를 보면서 나도 길을 나서려던 찰나, 무리 중 한 중년의 신사분께서 가시던 길을 멈춘 채 팔짱을 끼시고는 언덕 위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고 계셨다. 거리상 좀 떨어진 곳이었기에 나는 설마 나를 보고 계신 건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으나, 곧 그분이 바로 나의 고3 때의 담임선생님이시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간, 난 얼음이 되어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고3 새 학기 시작의 그날처럼 나의 머릿속에서는 '설마, 날 기억하시는 거야? 있는 듯 없는 듯 하던 나를? 그럴 리가, 난 정말 조용했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간의 대치의 시간 후, 나는 그 자리에서(그 먼 거리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는 배꼽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팔짱을 푸시고는 이내 중국집 안으로 들어가셨다.

'훗! 선생님께서는 여전하시네. 내가 할머니가 되어도 기억하시겠다.'


선생님은 딱히 몇몇의 아이들만 뻐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또 몇몇의 아이들만을 유난히 싫어하시지도 않으셨다. 그저 본인이 맡은, 그리고 가르치시던 아이들 모두를 본인의 새끼들이라 칭하며 기억 속에 남겨 두셨다. 먼저 태어나 먼저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만나는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존중해 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렇게 '님'이란 호칭을 붙여드리기에 전혀 거리낌 없는 그런 본받고 싶은 어른으로 살아가시고 계시는 것이다.

나 또한 그저 누군가보다 먼저 태어나 먼저 살아가고 있기에, 그리고 먼저 이 세상을 경험하고 고군분투하고 있기에 누군가에게(아이들에게) 선.생이 되어 버린 것 뿐일 것이다. 고로 나 또한 나의 선생님처럼 '님'을 붙이기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진정한 선.생.님이 되고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기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 간다면 그보다 더 좋을수는 없을 거 같다.




이전 02화 인물열전(나, 사람 그리고 사람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