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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Jan 08. 2020

인물열전(나,사람 그리고 사람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선생님! 대학을 꼭 가야 할까요? 전 공부가 너무 싫은데요."

" 꿈이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라며? 그럼 대학 가서 더 배워야 할거 아니야?"

"디자인이랑 공부랑 뭔 상관이에요? "

"야!! 그럼 너 나랑 영어공부는 왜 하냐?"

"그거야 엄마가 하라니까.."


몇 년 전, 그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한 여자아이가 어느 날 문득 전화를 걸어서는 다짜고짜 대학을 가기 싫다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본인의 꿈은 디자이너라며 공부는 그다지 필요치 않다고,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꿈을 이룰 수 있지 않겠냐며 나의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당시, 운전 중에 받았던 전화라 오래 통화할 수가 없어서, 그리고 난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 아이에게 쏟아부었다.

"그래, 대학을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해 보자. 너를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 만들어줄 좋은 디자이너 선생님을 만날 행운은 아마 극히 희박할 걸. 아마 로또 맞을 확률 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되겠어? 고만고만한 직장에 들어가 고만고만한 월급을 받고 고만고만한 생활을 하겠지. 그러다가 또 고만고만한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그렇게 고만고만하게 살게 되겠지. 그렇게 넌 고만고만한 사람이 되는 거야." (참, 이 뭐 황당하고 거지 같은 소리입니까?)

잠깐의 침묵 후, 그 아이는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

과연, 나는 이 아이와 그 뒤로 영원히 안녕을 하였을까? 물론, 아직도 우리는 서로 가끔씩 만나 서로에게 욕을 퍼붓고 지내고 있다. 그 아이는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학을(디자인과를) 진학했고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디자인 업무를 하고 있다. 이래저래 꿈을 이룬 셈이니 나의 거지 같은 소리가 어쩌면 '효과가 있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나의 지난 과오를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반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어떤 여자아이가 나에게 어느 날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너 꿈이 뭐였어?" (얘는 왜 과거형으로 물었을까? 그러니 내가 오해를 하지.)

" 나 밤에 꿈 안 꿨는데.."

"........................."

"잠잘 때 꿈 물어본 거 아니었어?"

그 아이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버렸다.

별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지만(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생각 없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라고 왜 꿈이 없었겠는가, 당연히 나 역시 꿈이 무궁무진했었다. 꼬맹이였을 때, 다들 나보고 예쁘다 했기에 난 미스코리아의 운명이라고 생각했었고, (아! 옛날이여. 역변의 야속한 시절이여, 짧디 짧은 나의 몸뚱아리여...) 선생님을 보면 선생님이 꿈이 되었으며,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이 되고 싶기고 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밤하늘이 너무 좋아 천문학자의 꿈을 키웠으며, 전형적인 문과 체질의 모습을 깨닫고는 밤하늘을 찍는 다큐멘터리 방송 연출자로 방향을 틀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 나야말로 고만고만한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고 말았고 경제 악화를 만나 꿈은커녕 오로지 안정적인 직업을 꿈 아닌 꿈으로 갖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마도 그때부터이지 않을까 싶다. 딱히 되고 싶은 것이 없게 된 것이 말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도(무엇이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꿈이란 것은 그야말로 여유로운 이들의 사치품쯤으로 생각되었었다.

세월이 흘러 세상도 변하고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과 상황들도 변했지만 나의 꿈은 여전히 행방불명이다. 나이가 들어버려 이제와 딱히 새로운 무언가를 꿈꾸는 일 자체가 버거운 일이 되었으며 꿈꾼다 한들 과연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염려가 먼저 마음속을 짓누른다.

결국, 나는 꿈꾸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을 처음 만날 때도 나는 그들에게 "꿈이 뭐야?"라고 묻는 대신 "어느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니?"라고 물어본다. 그리고는 그 씁쓸한 뒷맛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곤 한다.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는 꿈이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고 꿈이라는 인간의 맛깔난 양념을 잃어버린 채 다른 사람들에게도 꿈은 결코 쉬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냥 포기하라고, 꿈이 아닌 그저 너희들의 앞날을 예상해보라고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되고 싶은 사람과 하고 싶은 일들을 반짝거리는 모습으로 늘어놨던 시절도 있었고 어른이 되고 불혹이라는 나이를 맞게 되었을 때, 내가 어린 시절 꿈꾸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예측불가의 무대 속에서 나는 그야말로 반짝거리며 꿈꾸던 나의 모습은 무대 뒤로 넘겨버리고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살았다. 하루하루 무사히 넘어가기만 하면 그만인 걸로.. 그저 내일도 오늘처럼 아무 일 없이 평안히 지낼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대학교에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이런저런 알바의 세계에 몸을 담그고 있던 시절, 즉 나의 인생이란 무대의 주인공에서 살짝 조연으로 빠지기 시작할 무렵, 하고 싶은 일보다 먹고사는 게 우선이었고 당장의 등록금을 걱정하던 그 시절, 나의 반짝거리던 꿈들과 조금씩 멀어지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알바를 하던 곳에 일찍 출근해서 업무를 막 시작하려던 찰나, 직원분이셨던 한 남성분께서 전날 그분의 아들과 있었던 일화를 사무실 직원들에게 털어놓으시고 있었다.

"우리 둘째 아들 때문에 내가 어제 어이가 없었어."

"왜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니, 큰아들 놈과는 달리 둘째는 너무 공부를 안 해서 어제는 내가 앉혀놓고 얘기를 좀 해봤지."

그 당시, 그분의 둘째 아드님은 중3이었고 고입시를 앞둔 시기였기에 걱정이 많으셨던 모양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등학교가 평준화가 되어있지 않았다. 즉, 중학교 성적을 토대로 고등학교를 지원해야 하며 그렇기에 학업의 순위가 학교별로 매겨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학부모님들이야 당연히 본인의 자녀들이 이왕이면 공부를 잘하는 학교를 지원하기를 원했고 16세밖에 안된 아이들이 일찌감치 입시라는 문턱을 넘어야 했던 것이다.

그 직원분의 아드님들 중 큰 아드님은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좋은 학교를 진학했지만 둘째 아들은 그럴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들을 붙잡아 놓고는 아버지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던 것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아, 아빠가 조금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데 넌 도대체 꿈이 무엇이냐?"

그러자 아들이 너무나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대원고요."

".............. 어.... 그래? 그럼 꿈을 이룰 수가 있겠네."

"네. 당연히 이룰 수 있죠."

".............. 그럼 됐지 뭐."

이 대화의 내용을 설명하자면, 아들이 말한 대원고는 우리 도시에서 공부로 알려진 학교는 아니었다. (지금은 거의 평준화가 이루어졌기에 이 고등학교 또한 훌륭한 인재들을 꽤 배출하고 있다.) 인문계이긴 하나 공부 순위로는 조금 뒤처지는 학교인 것이었다. 어쩌면 당연히 화를 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아들의 당당한 이야기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꿈을 이룰 수 있다니 다행인 거 아니냐고, 아들의 꿈이 상당히 소박하긴 하나(그저 아빠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한 임기응변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모습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도 좌절하지도 않고 있으며 자신의 꿈에 확신이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고 말이다.

직원분과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사무실 전 직원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나는 머릿속이 뭔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꿈이 그렇게 꼭 거창하고 위대해야만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할까? 그냥 저 아들처럼 당연히 이루어질 수 있는(분명 이룰 수밖에 없는) 꿈을 꾸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꿈을 물어본다면 직원분의 아들처럼 당당히 이룰 수 있다고 말하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는 왜 꿈은 꼭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는 그런 모습을 꿈꾸었던 나 자신이 갑자기 좀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말씀하시는 것처럼 원대한 꿈을 꾼다한들 누가 뭐라 그럴 건 없다. 꿈을 꾸는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며 세금을 걷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앙드레 말로가 언젠가 말한 것처럼 '오래 꿈꾸는 자는 결국 그 꿈을 닮아간다'라는 이야기도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먼 훗날의 나의 모습을 꿈꾸는 일과 동시에 당연히 이룰 수 있는 작은 꿈들도 열심히 만들어 보려고 한다.

"꿈이 고작 그거야?"라고 누군가가 비아냥 거릴지라도 절대 실망하거나 기죽지 않을 것이며 하루하루 이루어가는 그 작은 꿈들을 모아 마지막 나의 모습은 좋은 사람으로 남겨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작은 노력들)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그 꿈들을 닮아가고 있나요? 당신의 꿈들이 당신의 기쁨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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