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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Oct 12. 2019

인물열전(나,사람 그리고 사람들)

칼국수와 자판기 커피 한 잔

지금의 시대는 결혼 적령기라는 것이 딱히 무의미한 형색이지만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겨버린 나에게 주변인들은 간혹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하곤 한다.

"비혼주의자인 거야?" "혼자 있는 거 외롭지 않아?"

이러한 질문들을 받게 될 때, 나는 늘 조금(나름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젊고 꽃다운 나이가 지나버린 현 상황이 슬프거나 우울해서가 아니라, 외롭다는 기분이 정확하게 어떤 건지를 잘 모르겠다는 이유에서이다.

혼자 있어 심심한 것이 그 심오한 외로움 일리는 없고 나를 챙겨주는 이가 없어 서럽고 가슴 스산한 것이 외로움이라면 그건 지금까지 굳건히 지켜온 나의 자존감에 죄스러운 일이니 그 또한 외로움은 아닐 것이기에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아직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오히려, 거의 평생을 많은 형제들 속에서 복작거리며 살아온 나는 지금의 조용함이 꽤 마음에 든다. 혼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멍 때리는 일도 아주 즐거우며, 주말이나 휴일에 약속 하나, 전화 한 통이 없더라도 적적하거나 지루하지도 않다.


그러나 사실,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노후까지도 혼자인 것을 상상해 보았을 때 살짝 불안하기도 하고 약간은 무서운 기분이 들기도 함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나라의 경기가 하루빨리 나날이 좋아져 복지가 훌륭한 나라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그리고 열렬히 바래본다. 혼자의 이 즐거움이 외로움으로 변질되는 일이 최대한 늦게 다가오기를 바라며 말이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나의 엄마께서 우리의 집을 개조하여 식당을 운영하시던 때가 있었다. 나의 엄마가 지금까지도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 음식이 있는데 그건 바로 손수 국수면를 뽑아 만들어내는 칼국수이다. 우리가 식당을 운영하던 그 당시, 엄마의 칼국수에 들어가는 것이라곤 일일이 손으로 만든 칼국수 면과 호박볶음 그리고 김치가 전부였지만 그 투박한 칼국수의 맛은 시골의 정취를 생각나게 했으며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더불어 나도 틈틈이 엄마를 도와 서빙부터 설거지에 이르기까지 온갖 일들을 하며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식사 시간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으며 우리 집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이 살짝 지나 조금 한가한 시간에 엄마와 나를 얼어붙게 만들어 버린 한 사람이 우리 집으로 걸어 들어왔다. 엄마와 나보다 머리 두 개쯤은 더 있는 키가 큰 금발의 외국 여성 한 분이 우리 집으로 쭈볏쭈볏 들어오시더니 방 안으로 들어가 어정쩡한 양반다리를 하고는 자리를 잡으셨다. 순간, 엄마와 나는 누가 주문을 받으러 들어갈 것인가로 옥신각신을 하다가 결국, 그나마 그 시절 학생이었던 내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들어가 그 여성분과 눈을 맞추게 되었다.

"음..... 마이 하우스 온니 원 메뉴.. 두 유 노우 칼국수?"

"One please"

"오..오케이. 땡큐 베리 마치! 아.. 칼국수 이즈 어 리틀 핫! 아 유 오케이?"

"HaHaHa, I'm okay. Thanks."

그렇게 식은땀 나는 엉터리 대화 후, 나는 엄마께 주문 내역을 알렸고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양의 칼국수를 그릇에 담고 계셨다.

"엄마! 외국인이 이걸 어떻게 다 먹어? 처음 먹어 볼 텐데."

"야! 낯선 곳에 와서 얼마나 외롭겠어. 먹을 거라도 넉넉히 멕여야지."

그릇 가득 찰랑거리는 칼국수 한 그릇과 김치 그리고 양념장이 전부인 쟁반을 들고 나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고 그 여성분은 활짝 웃으며 음식을 받아 식사를 시작하셨다.

한국인들보다 훨씬 장시간의 식사 동안(거의 한 시간이 걸렸던 거 같다.) 여성분은 그 많은 칼국수를 정말 남김없이 전부 드시고는 방을 나오셨다.

"It's very delicious. Thank you."

"아유, 잘도 먹네. 또 와요."

"마이 어머님! 영어로 얘기해야지. 한국말로 하면 어떻게 알아듣겠어."

"그렇지? 니가 해봐라"

"음... 마이 맘 세드.. 위 원투 씨 유 쑨.."

"Okay, I'll come here again."

"뭐라는 거냐?"

"어? 다시 온다는 얘기인가?"

"그래? 오케이.. 굿모닝!"

"아니, 엄마.. 굿바이"

"HaHa.. Goodbye!"

진짜로 그 여성분은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는 듯 그 뒤로 거의 매일 우리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오셨다. 정말 칼국수가 입에 맞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매일 우리 집으로 출근도장을 찍던 그 여성분은 오실 때마다 그릇 가득 넘칠 거 같은 칼국수를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우고는 환한 얼굴로 우리에게 인사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몇 개월 후,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그 여성분의 발걸음이 멎어 버렸다. 엄마는 말도 통하지 않던 그 여성분을 내심 기다리는  듯하셨지만 어디에서도 그 여성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운해하시는 엄마께 나는 그런 외국분들은 대부분이 외국어 강사이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다들 본인의 나라로 돌아가게 된다고, 그러니 그분도 고향으로 돌아가신 것이니 기다리지 말자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그렇게 그분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해가 지나 다음 해가 다가왔고 봄과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었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엄마가 붙잡고는 너무나 기쁜 목소리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금발의 여성분의 이야기를 꺼내 놓으셨다.

그날, 엄마는 어린 조카들과 언니와 함께 우리 지역에서 열리고 있던 축제 마실을 가셨다고 했다. 그곳에서 이것저것을 구경하고 있던 그때, 저 멀리서 한 외국분이 한걸음에 뛰어와서는 엄마를 얼싸안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담고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한참을 엄마께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내었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알아들은 얘기라고는 'Mom, Thank you' 정도였지만, 엄마가 나에게 전해준 그 짧은 만남은 그 여성분의 마음을 그 자리에 없었던 나에게도 전해주는 듯했다. 아마도 본인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와 그동안의 있었던 일들, 그리고 엄마와 칼국수가 그리웠단 이야기를 쏟아내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그때 너무 고마웠었다는 말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외로운 타국에서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엄마께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그분에게 해준 것이라곤 그릇 가득 넘쳐나던 칼국수 한 그릇뿐이었지만 그 따뜻한 칼국수 한 그릇이 그분의 외로움을 덜어주었다면 그 기억만으로도 우리는 평생 잊지 못할 친구가 된 것이 아닐까?


내가 대학교 신입생이던 시절, 선배님들께 대학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주의사항들을 들으면서 대학생활을 준비하고 있던 그때, 한 가지 의아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음료 자판기에 절대 지폐를 넣지 말라는 것이었다. '왜지?'라고 의아해하면서도 그저 자판기가 지폐를 잘 삼키나 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더랬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그 주의사항은 까맣게 잊은 채 커피를 뽑기 위해 자판기에 천 원짜리 지폐를 넣고는 삼백 원 커피 한 잔을 뽑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광석화처럼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나의 잔돈 칠백 원을 자판기에서 낚아채어 도망을 가버리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황당한 상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있는데 한 선배님께서 혀를 쯧쯧차시면서 나에게 다가와 칠백 원 도둑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다.

"이사도라 야"

"에? 뭐라고요?"

"이사도라라고. 우리 학교에서 먹고 자는 애.."

"...그게 누군데요?"

"뭐, 정체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는데, 우리 학교 졸업생이라는 얘기도 있고 그냥 미친놈이라는 얘기도 있고, 아무튼 학교를 24시간 싸돌아 다녀서 이사도라 야. 여자애들에게는 커피나 밥을 얻어먹고 남자애들에게는 담배 얻어 피고 가끔 술도 얻어먹어. 그리고 잠은 뭐.. 대충 아무데서나 자. 동아리 방에서도 자고 그냥 학교 벤치에서 자기도 하고."

"그런데, 아무도 뭐라고 안 그래요? 쫓아낸다거나 신고한다거나.."

"뭘 그렇게까지?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나름 학교 명물이야.. 천재란 얘기도 있어.."

'헐, 내 피 같은 칠백 원. 나한테는 해를 끼쳤구만.'

그 뒤로 이사도라는 정말 학교 곳곳에서 목격이 되었다. 어느 날은 잔디밭에 대자로 누워 자고 있기도 했고 남자 학우들과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기도 했으며 학교 식당에서 아이들 틈에 끼어 밥을 얻어먹기도 했고 수다 떠는 학생들 사이에서 추임새를 넣고 있기도 했다. 심지어 수업에 들어와 뜬금없는 질문을 교수님께 던지기도 했는데, 정말 어느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수업시간 질문에 교수님들께서는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주시기도 했으며 커피에 밥에 담배에 정말 어느 누구도 개의치 않고 기꺼이 자기의 것을 나눠주고 있었다. 모든 이들의 그런 당연함에 처음에 두려움을 가졌었던 나와 나의 동기들도 어느덧 이사도라에게 다들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 또한 커피 한 잔쯤은 당연히 내어 주었으며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하던 중, 옆으로 벌러덩 누워버리는 이사도라에게 더 이상 깜짝 놀라지도 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일도 없어져 버렸다. 그저 말없이 똑같은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평온한 시간을 함께 누리면 그만이었다.

내가 일 년간의 휴학을 하고 다시 복학을 하고자 학교에 들러 복학 절차를 밟고 학교 건물을 나서는 찰나, 갑자기 누군가가 나의 팔짱을 냉큼 끼더니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깜짝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옆을 돌아보자 일 년 동안 보지 못했던 이사도라가 어느새 나의 곁으로 다가와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오랜만이네. 너 아직 졸업 안 한 거야?"

"헐.. 깜짝 놀랐잖아.(이사도라의 나이는 아무도 알지 못하기에 우리 모두는 이사도라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너야말로 좀 졸업을 해야 하지 않겠냐?"

"다음 주에 만나."

'오마나, 나 복학하는 건 어찌 아는 거지?'

그 순간, 내가 너무나 놀라웠던 것은 휴학 전 나는 이사도라와 그다지 말을 많이 해보지 않았었다는 것이었다. 오며 가며 마주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딱히 대화를 나눴다던가 밥을 같이 먹어본 적이 없었기에 이사도라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그저 커피 몇 잔, 같은 하늘을 몇 번 바라본 추억만이 있을 뿐인데, 그 수많은 학생들 속에서도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그리고 반갑기도 했다. (이사도라는 정말 천재일지도 모른다.)


학교를 떠난 후, 몇 년이 흘러 오랜만에 대학시절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문득 이사도라가 떠올라 친구에게 이사도라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이 친구는 여전히 우리 학교가 있는 도시에 살고 있었기에 학교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가 전해준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너무 무겁게 만들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지금의 우리 후배들은 이사도라를 친구로 대해주지 않았다. 커피, 담배 그리고 밥을 얻어먹고자 하면 무시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일들이 벌어졌고(이사도라는 다리가 부러져 의대 학생들이 데려가 치료를 해준 적도 있다고 했다.) 그저 같이 잔디밭에 나란히 눕고자 했을 뿐인데, 여자아이들이 성추행으로 신고하는 일도 잦아 경찰분들이 여러 번 출동도 했었다는 것이다. 일련의 그러한 사건들로 인해 이제 학교에서 이사도라를 만나는 일이 드물어졌다며, (혹자는 이사도라가 삶의 터전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얘기도 했다.) 내 친구 또한 나와 같은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닌데.. 자판기 커피 한 잔, 밥 한 끼, 그저 담배 한 개비만 내어 준다면 우리는 같은 하늘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일 텐데, 그러한 일들이 왜 나의 후배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을까?(물론 모든 후배들이 다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던 이사도라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것은 그저 작은 배려이고 나눔이었는데... 그저 같이 조용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기만 해도 그의 외로움을 나눌 수 있었고 세월이 지나도 나를 기억해주는 친구가 될 수 있는데 어째서 그의 외로움을 그들은 모른 체 하였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실, 지금은 이사도라의 얼굴도 그리고 그의 해맑은 웃음소리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현재 어디에 있든지 조금은 덜 외로웠으면 한다. 여전히 그에게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내어주는 이들이 있고 함께 누워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이들이 그의 곁에 있기를(반드시 있을 거라고) 간절히 바래볼 뿐이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그리고 쓸쓸함을 덜어주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저 따뜻한 밥 한 끼, 자판기 커피 한잔을 함께 하며 아무 말하지 않아도 곁에 있어주는 것, 당신은 혼자가 아님을, 어디에서든지 간에 당신과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고 알려주기만 한다면 그 외로움을 조금은 덜어 줄 수도 있다고..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외로움을 그렇게 덜어줄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하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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