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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Sep 20. 2019

인물열전(나,사람 그리고 사람들)

알바열전 Ⅱ (그렇게 '미스 김'이 되어간다.)

내가 주변 사람들한테 자주 듣는 얘기 중 하나는 바로 "부디 천천히, 꼼꼼히, 조심스럽게"이다. 이 말이 왜 나왔는고 하면..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 때, 특히 주로 단순노동의 일을 하게 되는 경우에 속도는 누구보다 상당히 빠르나 정확도에 있어서는 조금(조금이 아닌가?) 부족한 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성격이 원인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맡은 일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혀를 차기도 하지만, 비교적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평가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그럴 것이라고 믿고 싶은) 본인으로서 나는 나의 그런 성향의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성인이 되고 가장 먼저 맞닥뜨린 현실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학교를 다니는 것도 상당한 비용이 드는 일이었으며 어린 시절의 생활 반경에 비해 상당히 커진 생활공간은 어느 하나라도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과 동등해져 버린 성인이란 의미는 나의 생활의 어느 정도는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은 채 스스로 헤쳐나가야만 하는 압박감을 주기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나는 알바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직업은 학생이고 나이는 성인인 이 애매한 정체성 사이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활정보지를 매일매일 뒤졌으며 그다지 넓지 않은 인맥을 총동원하여 닥치는 대로 알바를 찾아다니고 길을 가다가 벽에 붙어있는 구인광고, 심지어는 부업광고라도 볼라치면 당장 공중전화로 달려가 전화를 걸어보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장기적으로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알바 외에도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이틀만 일하는 알바도 해봤으며 하루에 두 탕의 알바를 뛰던 시절도 있었더랬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미스김이 되어갔다.


예전 드라마 중에서 나의 우상이신 김혜수 님께서 출연하셨던 드라마가 있었다. 직장인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였는데 김혜수 님은 이런저런 회사로 파견을 나가는 만능 계약직 역할을 맡으셨었다. 드라마상에서 미스김은 못하는 게 없는 능력자였다. 심지어 포크레인도 운전할 줄 알고 회식자리에서 탬버린을 치고 고기를 자르는 일들조차도 너무 완벽한 그야말로 슈퍼우먼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모두 수많은 일들의 경험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드라마상에서 미스김은 그 능력을 인정받아 정직원 제안을 받게 된다. 그러나 미스김은 그 제안을 뿌리친 채 유유히 영원한 만능 계약직으로 남는 내용이 그려지며 드라마는 끝을 맺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드라마를 정주행 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 드라마를 특히 기억하는 이유는(물론 김혜수 님이 계시기 때문이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무심코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어떤 이가 집에서 드라마를 보며 고기를 구워 먹다가 미스김을 보고는 내가 떠올랐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결코 김혜수 님을 내가 닮아서가 아니라 (그런 이유라면 정말 좋겠지만..) 드라마상에서 못하는 게 없는 만능인 미스김의 모습에서 내가 겹쳐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왜? 뭐 때문에?"라고 반문했지만 이내 수긍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저것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는 나는 온갖 잡다한 일들을 전문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럴싸하게 흉내는 모두 낼 수 있기에 나름 만능의 미스김이었던 것이다.

서빙 알바를 해봤기에 그릇들로 가득 찬 쟁반 서너개쯤은 거뜬히 들어 나를 수 있고, 우체국 알바도 해봤기에 도장 찍는 일 정도는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할 수 있으며, 심지어 마늘 까기와 종이가방 접기도 달인이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비디오 대여점 알바도 상당히 오래 했었기에 어지럽게 쌓아놓은 물건들도 쉽사리 정리를 해 내며, 도서대여점 경력은 빠르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과 책들을 비롯한 물건들의 위치를 어느 누구보다도 쉽게 파악하는 능력을 나에게 허락해 주었다.

선거운동 알바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생글생글 웃으며 모르는 이들에게 무작정 뛰어드는 뻔뻔함을 허락해 주었으며 음식점 알바를 통해 누구보다도 맛깔나게 밥을 비빌 줄 아는 철판의 여왕도 될 수 있었다.

이른 새벽 신문배달은 이곳저곳을 누벼야 하는 빠른 순발력과 어둔 골목길과 낯선 동네를 다녀야 하는 담력을 길러 주었으며  관공서와 특수학교의 계약직 알바는 조직생활의 쓴맛과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의 미덕을 가르쳐 주었고 서비스업의 고된 업무는 세상은 넓고 이 넓디넓은 세상에는 정말로 별 희한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진리도 터득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수많은 알바의 경험을 통해 내가 특별히 변한 것이 있다면, 전과 달리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일을 맡길 때 나는 그다지 "못할 거 같아요." "제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라는 얘기를 별로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고 수박 겉핥기식이라 할지라도 방법을 찾아가며 맡은 일들을 그럭저럭 해내는 방법을 택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달리 보면 참 미련하고 사서 고생하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모두 나의 수많은 알바의 경험과 그 과정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영향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미스김으로 만들었다.


근 6개월간 내가 계약직으로 근무했었던 지방의 한 특수학교 교감선생님은 나의 업무능력에 대해서 일말의 의심도 없으셨다. 나의 능력 밖이었던 일들도 아무 질문 없이 나에게 그냥 던져주시곤 했다. 전형적인 문과생인 내가 회계업무니 전산업무를  당연히 알 턱이 없었지만 교감선생님께서는 어마 무시한 숫자들로 가득 찬 문서를 '휙'하고 던져주시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엑셀 파일로 작성 해오라는 엄청난 임무를 맡겨주셨던 것이다.

"선생님! 저는 이런 업무를 해본 적이 없....."

"내일까지 할 수 있지? 난 간다!"

'헐! 이러고 퇴근하시는 거야? 이걸 어쩌라고...'

그렇게 나는 그날 밤 온갖 인터넷을 뒤지고 이곳저곳에 전화를 해대며 결국 엑셀의 사용법을 얼추 터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학교에서 나는 엑셀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글로 배운 어설픈 기술이 어쩌다 달인의 수준까지(물론 거짓 소문입니다만..) 되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뒤도 안 돌아보시는 교감선생님 덕에 나는 꽤 괜찮은 능력의 계약직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들이 주어지더라도 나는 그에 대하여  겁이 없어져 버렸다. 나에겐 그저 온 사방을 뒤질 줄 아는 빠른 검색력과 집중력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학교를 다니던 학기 중에는 사실 온전한 알바를 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는 건 체력적으로도 힘들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부득이하게 민폐를 끼칠 수도 있기에 수많은 시도 끝에 나는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을 선택하곤 했었다. 부업이라는 것이 사실 몸만 피폐해질 뿐 돈을 모으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업은 종이가방을 접는 일이었는데 온갖 종류의 종이가방 도안들을 받아 우리가 쓰는 가방의 형태로 온전히 접은 후 손잡이 끈까지 걸어 완성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에 내심 괜찮은 일거리라며 엄마와 나는 만족스러워했다. 예전에 했던 마늘까기처럼 냄새가 몸에 배는 것도 아니고 손이 더럽혀지는 일도 아니어서 오랫동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종이가방 접기도 부업은 부업이었다. 다양한 사이즈의 가방들은 접고 접어도 끝이 없었다. 집안 곳곳에 종이가방들이 쌓이고 먼지도 상당했으며 종이가방을 붙이는데 쓰이는 양면테이프는 나의 모든 곳을 따라다녔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눈이 너무 피로하고 아팠다. 아픈 정도를 넘어서서 나의 눈은 상시 충혈되어 벌겋게 부어있었으며 감고 뜨는 일조차 쓰린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의 영롱한 눈을 지키고자 근 1년의 부업 후 다른 일거리를 찾아보자는 심산으로 종이가방 접기는 그만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다음날 나는 사장님께 나의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며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별 요동이 없으셨던 사장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그 이후로도 몇 달 동안 나에게 종이가방을 던져 주셨다. 심지어 부업 대금도 올려 주셨다. 너무 감사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계속 가다간 나의 눈이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종이가방 도안을 냅다 던져놓고 도망가시려는 사장님을 붙잡고는 나의 벌건 눈을 보여드리면서 간곡히 부탁을 하였다.

"사장님, 저 이러다가 눈 때문에 시집 못 가요.. 왜 이러시는 겁니까?"

"학생! 내가 지금까지 일을 맡겼던 사람들 중에서 학생이 가장 각을 잘 잡아. 그냥 좀 더 하면 안 될까?"

"사장님! 저 눈 빠질 거 같아요. 살려주세요." 

나의 피눈물을 목격하신 사장님께서는 결국 내려놓으신 종이가방 뭉치를 다시 집어 드셨고 축 처진 어깨로 우리집 대문을 넘어가셨다. 그렇게 사장님과 나는 작별을 하고 말았다. 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주셨던 너무 감사한 분이었지만 우선은 내가 먼저 살아야 했기에 부득이하게 그런 결정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때 사장님을 더 도와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참 죄송한 마음이 든다.

지금도 상점에 걸려있는 종이가방들을 보면 밤새도록 눈이 빠져라 각을 잡고 테이프를 붙여대던 그 시절 나의 모습이 흑백 화면처럼 떠오른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그 또한 나의 잔재주 중 하나가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가끔은 어느 한 분야에서 어느 누구보다 특출 나서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인정받으면 참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유달리 뛰어난 능력은 없지만 그렇다고 유달리 못하는 것도 없는 지금의 나도 나쁘지는 않다. 아니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 뭐 어쩌겠는가? 인생은 무조건 직진인 것을, 자족하는 수밖에...) 의도한 일은 아니었지만 나름 스펙터클한 삶이 지금의 나의 모습을 만들었으며 그 과정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나름의 미스김으로 만들어 주었다. 야속한 이들도 있었고 너무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모든 이들이 나의 잔재주와 능력의 밑거름이 되어 주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고로 감사하다. 앞으로도 내가 살아가는 동안 그 잔재주들이 어딘가에서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쓰임이 될 수 있기에 참 다행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그 모든 것들은 나이고 나의 삶이고 나의 존재이며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나의 자산이 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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