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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Oct 29. 2019

인물열전(나,사람 그리고 사람들)

이보시오. 들! 거, 치사하게 떼로 덤비지는 맙시다.

과연 나는 불의에 맞서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저 방관자인가...

단연코 나는 마음만 굴뚝인 방관자이다. 세상을 둘러보면 불의에 맞서 본인들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으로 옮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난 그저 그들을 부러움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뉴스를 보며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을 감탄하고 저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만 한가득인.. 이런저런 핑계로(난 지방에 살고 있으니 쉬운 일이 절대 아니라고 되지도 않는 정당화를 만들어 버리는..) 회피를 하고 있는 참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요즘이다.

직업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기에 길을 가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청소년들을 보면 마땅히 그들을 빛의 세계로 인도해야 함이 당연하지만 슬쩍 동태를 살피고는(혹, 아는 아이가 있다면 당당히 나서지만 모르는 아이들 일시에는 일을 크게 만들지 말자는 역시 되지도 않는 핑계로..) 지나치기 일쑤인 참 불의에 너무 쉬이 굴복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나도 한때는 조금이나마 꿈틀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학창 시절엔 학교의 부당한 조치에 친구들과 합심하여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었고 불같은 열정을 가지고 아이들의 서명을 받으러 몇 날 며칠을 쏟아붓기도 했었다.

대학생 시절엔 학교와 나라의 불의에 맞서 학교 전학우들과 함께 수업거부로 우리의 의지를, 그리고 이런저런 항의로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었다.

이랬던 나였는데 어째서 나는 마음이 상당히 불편한 방관자가 되어버린 것일까? 어쩌면 그건 이제 혼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싸우자"라고 외칠 때 "그래, 무조건 가는 거야"라고 말해줄 동지가 없다. 더욱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한 행동이 많은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버린다면 그 행동은 더욱 힘을 잃고 작아져 버린다. 이렇다 보니 나의 꿈틀거림은 점점 약해졌으며 나의 목소리는 소리를 잃어가고 있다. 

사람이 좋아함을 받기란 참 힘든 일이지만 미움을 받기란 아주 쉽다. 무리에서 벗어난 행동 하나면 그 일은 아주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것이 옳은 일이든지 잘못된 일이든지 말이다.

대학생 시절, 나는 관공서 알바를 꽤 오래 했었다. (하기 싫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래서 욕을 먹었나? 나의 속마음이 밖으로 나왔었던가?)

열심히 일에 몰두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마침 시청광장에서 농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점심도 먹으러 나가지 못하고 그저 사무실에서 오랜만에 하루 종일 일다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너무나도 싸한 기분에 컴퓨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자 사무실 안에 모든 사람들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지? 내가 뭘 잘못했나?'라고 생각하던 찰나, 한 공무원분께서 아주 못마땅하다는 말투로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이 노래를 알아?"

'무슨 노래?' 잠깐의 망설임 후, 방금 전 내가 무심코 한 행동이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모두가 조용히 업무를 하고 있던 중에, 창밖으로 시위대의 우렁찬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들려왔고 나는 그 노래를 무의식적으로 따라 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좌파가 되어버렸다. 노래 하나 따라 불렀을 뿐인데, 이게 왜 모두의 미움을 사게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다음해 학교를 휴학하고 다시 시청에 불려 들어갔을 때(여전히 목구멍이 포도청인 나였기에..) 내가 평생 먹을 욕을 일주일 만에 다 먹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전과 같은 업무를 맡게 되었지만 내가 일 년 후 다시 돌아갔을 때는 사무실이 바뀌어 있었다. (엄청난 작업량으로 인해 아예 우리 팀을 분리시켜 층수를 옮겨 이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달라진 게 있었다면 우리의 사무실이 있었던 그 층수에는 일반 기업들이 임대를 들어와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공무원분들이 아닌 낯선 이들과 화장실 및 여러 부대시설들을 같이 이용을 하고 있었다.

일을 하던 그 몇 개월 동안 나를 정말 너무 힘들게 한건 결코 내가 맡은 임무가 과도하거나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이 여자들이었던 우리 알바생들을 고통스럽게 괴롭힌 일은 바로 임대를 들어온  외부기업 직원분들이 너무나도 심한 흡연자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복도며 계단 그리고 화장실도 항상 담배연기로 가득 찼으며 출근을 하는 시간부터 퇴근을 하는 시간까지 우리 사무실 사람들과 알바생들은 간접흡연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우리 알바생 사수 공무원분들 중에는 임신을 하신 분도 계셨기에 담배연기로 인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항의를 하거나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외부기업 직원들의 그 무배려를 그저 묵묵히 참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별 동기도 없이 조용히 잠자고 있던 나의 망할 놈의 꿈틀거림이 나의 손가락을 움직이게 했다.

마침 할 일이 딱히 없어 빈둥거리던 시간에 무심코 나는 그 외부기업의 회사 홈페이지를 들어가게 되었다. 나의 의도는 그저 '고객란 게시판에 살짝쿵 글을 올려볼까?' 정도였었다. 그런데 아무리 홈페이지를 뒤지고 뒤져도 고객의 의견을 담는 게시판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들락날락하다 드디어 나는 '불편사항은 언제든지 메일을 보내주십시오.'라는 곳을 발견했고 그곳에다가 현재 우리의 고통을 정말 조심스럽게(너무나 소심하게) 끄적거렸고 무언가에 홀린 듯 '보내기'버튼을 클릭해 버렸다. 그리고 그건 크나큰 실수였다. (정의의 행동이라 하고 싶지만 그 후폭풍이 너무 거셌기에 실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음날, 나는 언제나 항상 그렇듯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예감이라는 건 참 희한하게도 앞서 일어날 일을 되레 짐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여느 다른 날 보다도 유난히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끌고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검은 정장 차림의 어딘지 낯이 익은 남성분 세분이 사무실 중앙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계셨다. 그리고 나를 발견하신 우리 과장님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헐레벌떡 그 남성분들 앞에 나를 자리 잡게 하셨다.

"학생, 저희들이 누군지 알죠?"

"글쎄요.. 어디서 뵌 거 같기도 하고..."

"저희 앞 사무실 사람들이잖아요."

"아....네. 근데 저한테 무슨 일로?"

"학생이 어제 저희 홈페이지로 메일 보냈죠? 그 메일이 어디로 가는 건지나 알고 보냈어요? 그거 우리 본사 사장님께 바로 가는 메일이거든요?"

"아.. 네. 그냥 불편사항을 보내라 하셔서.. 근데 그게 뭐 잘못되었나요?"

"이봐요. (이 부분부터 엄청 무게를 잡으셨다.) 할 말이 있으면 아래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얘기를 할 것이지. 왜 사장님께 바로 얘기를 합니까? 불만이 있으면 우리를 먼저 거쳐야 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대학생 맞아요? 그런 기본적인 것도 아직 모릅니까?"

이 무례한 남성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슬슬 발끝부터 불덩이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언니들 그리고 동생과 숱하게 싸워온 나의 내공은 나의 열 오름을 전혀 티 내지 않은 채 이들에게 해야 할 말을 머릿속에 채워주고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

"그럼 제가 뭐라고 부릅니까? 모르는 분인데. 홈페이지에 불편사항을 보내라 하였기에 보낸 것이 뭐가 잘못인지 모르겠고요.."

"절차를 밟으라니까"

"그러니까요.. 제가 왜요? 저는 그 회사 직원이 아닌데요. 근데 제가 왜 아래부터 절차를 밟고 저의 불만을 보고해야 합니까? 저도 그 회사 제품 쓰거든요. 그럼 고객이고 고객의 불편사항을 알려달라기에 알려드린 거뿐인데 왜 이 사달을 내시는지 제가 이해가 안 되네요. 직원분들은 별로이신데 사장님은 훌륭하시네요. 수많은 메일을 일일이 다 읽어보신다니.... 근데 저의 권고사항에 대해 이렇게 따지러 오셨으니 또 메일을 보내야겠어요. 사장님께서 이렇게 지시하신 건지에 대해서"(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뭐 대충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우!! 이때만 해도 배짱이 좋았군요.)

"학생. 이거 안 되겠구만.."

"참! 저는 그저 같은 건물에서 일한다고만 적었는데 제가 누구이고 여기서 일하는지는 어떻게 아셨어요? 제 개인정보를 뒤지셨나요?"

이쯤 되자 상황을 그저 불 보듯 지켜보고만 있던 공무원 몇몇 분이 나서셨고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시점부터였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즉 그 외부기업과 또 다른 외부기업들 그리고 우리 사무실 공무원분들과 심지어 알바생들 모두가 나를 역적으로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인생은 혼자다.) 화장실을 가면 화장실에서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고(내가 볼일을 보러 안으로 들어가면 기다렸다는 이 그 외부기업 여직원들이 들어와 욕을 퍼부었다. 참다 참다 화장실 문을 걷어차고 나오면 빛의 속도로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참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상황들이 이어진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나를 둘러싸고 뒤에서 다 들리는 뒷담화로 내 뒤통수를 뜨겁게 만들었으며 복도를 지나갈 때는 보란 듯이 내 얼굴 앞으로 담배연기를 뿜어대기 일쑤였다.

'우이 씨, 확 받아버리고 때려쳐?'

어느 날은 1층의 우리 부서 국장님께서 한 여직원분을 시켜 나에게 A4용지 3장 분량의 기사를 스크랩해서 보내주셨는데 그 내용인즉슨, '담배는 기호식품이다. 흡연자의 인권을 보호하라. 그밖에 쏼라쏼라, 블라블라, 어쩌고저쩌고...' 일명 도그사운드의 기사들만 모아서 나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내시기도 했었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보기란 또 난생처음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다 나를 좋아할 수 있겠냐 만은 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니 그 또한 참 고단하고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일주일을 보내면서 나는 정말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더라도, 다시 복학을 하고 학교를 다녀야 하지만 이렇게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속에서 계속 내가 버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모님께는 말씀도 드리지 못한 채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새로운 주가 시작되었고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몸과 마음을 이끌고 시청 광장에 들어섰다. 사무실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역시나 같은 층의 외부 직원들과 한 공간에 머무르게 되었고 다시금 나를 오래 살게 해 줄 욕 한 바가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눈치를 살피며 나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복도를 들어서자 내 코앞으로 연기를 뿜어대던 몹쓸 직원은 나를 보자마자 불이 나게 도망을 가버렸다. 사무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함을 느낀 나는 임신 중이셨던 여자 공무원분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에 나는 기운이 쫙 빠져서 그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 그게 오늘 대대적으로 공문이 내려왔는데, 관공서는 지정 흡연구역을 제외하고는 모든 건물이 금연구역이래. 위반이 적발될 시 과태료가 어마 무시하다고 공문이 왔어. 이게 시행이 올해 초부터 해당되었던 거래. 그러니까 니가 욕먹은 건 진짜 억울하게 욕먹은 거지. 저들은 무려 법을 어기고 있었던 것이여."

'젠장! 뭐 이런 그지 같은 경우가 있나. 그냥 욕 많이 먹고 오래 살라는 배려였던가?'

어린 시절 광고 중에 이런 광고가 있었다. "모두가 '아니오'라고 할 때, '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무슨 제품 광고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이 광고 내용이 꽤 인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아르바이트생 시절, 시청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나의 지인들에게 얘기했을 때, 나에게 '잘했다'라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왜 쓸데없는 일에 나서서 미움을 사냐, 결코 옳은 행동이 아니다. 등등 나를 질책하는 말들을 가차 없이 쏟아부었다. 뭐, 그들을 원망하거나 야속다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단체생활 속에서 혼자 잘났다며 튀는 행동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다, 모두가 '아니오'라고 할 때, '예'라고 하는 것은 절대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 왕따의 지름길일 뿐이다. 물론 모든 불의에 참고 눈감으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 진정한 정의와 용기가 무엇인지는 좀 곰곰이 생각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인생의 교훈을 터득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하다 보면 정말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을 맺고 살아간다. 그 수많은  사람들 모두에게 좋아함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내가 만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미워하는 일이 이왕이면 적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살다 보면 정의로울 수도 있고 때로는 불의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말이다. 그러니 너무들 서로 미워하지 말고, 그리고 너무들 일방적으로 떼로 덤비지들 말고 좀 더 이해하는 너그러운 마음들이 생겨나기를 아직은 조금은 남아있는 나의 꿈틀거림이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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