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oung Nov 08. 2019

인물열전(나,사람 그리고 사람들)

우리들의 잔상

어느 누군가가 나에게 꽃다운 20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노라고 말할 것이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 만족스럽다거나 혹은 행복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나의 20대는 너무나도 힘겹고 아팠기 때문에 다시 그 시절을 겪고 싶지도, 그리고 이겨낼 자신 또한 역시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내가 대학을 입학하고 신입생의 모습을 갓 벗어났을 때, 나와 나의 20대들은 IMF의 직격탄을 맞아버렸다. 대학생활의 낭만이라든가 알콩달콩한 연애라는가... 무작정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떠나는 여행 같은 꿈은 우리들에게서 이미 멀리 사라져 버렸으며 당장의 등록금을 걱정해야 했고, 심지어 먹고사는 일조차도 버거워진 우리들의 20대는 그야말로 앞이 보이지 않던 길고도 긴 터널 속이었다.

끝날 거 같지 않던 그 긴 터널 속에서 우리들은 같은 길들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힘겨운 시절이 만들어버린 똑같은 꿈들을(오로지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달려가는..) 꾸고 나와 다를 바 없는 힘겨운 얼굴들이 사방을 점령해 버렸던 것이다. 우리들에겐 찬란한 미래도, 희망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긴 터널도 언젠가는 출구가 나오고 그 깜깜함 속에서도 빛은 작은 틈을 비집고 나와 반짝하고 내리쬐기도 함이 바로 인생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꿈을 꾸고 다시 길을 찾아 일어설 수 있다.


여중 여고를 나오고 남자라고는 아빠와 남동생이 전부였던 내가 대학생이 되어 남녀가 함께 부대끼는 상황을 맞닥뜨리자 그 어색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의 수다스러움이 조금씩 소멸되어 버린 건 어쩌면 그때부터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주변인들로부터 꽤 과묵하다는 평가를 받으니 말이다.) 입학식을 끝내고 본격적인 대학생활이 시작되는 첫날, 생면부지의 사람들 속에서 나는 어서 이 긴 하루가 끝나 집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 안고 있었다. 그렇게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 속에 젖어 있을 때, 누군가가 강의실로 씩씩하게 들어오더니 나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깜짝 놀란 내가 맨 뒷자리에서 고개를 들고 쳐다보자 한 남성분이 환한 웃음으로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네가 지ㅇㅇ 이야?"

"네..."

"반갑다. 나도 성이 지 씨야. 같은 성을 이렇게 동기로 만나다니 우리 친하게 지내자."

그분은 같은 학번의 동기이기는 했지만 실상은 나보다 4살 위의 오빠였고, 꽤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의 꽤 괜찮은 대학을 입학하였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전문대로 다시 입학을 했었고, 그 또한 잘 맞지 않아 군입대를 하고 제대 후 다시 우리 학교로 입학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 오빠는 유달리 내게 친절했었다. 어색함을 이기지 못해 주변에서 맴돌던 나에게 늘 먼저 말을 걸어주었으며 살뜰히 챙겨주기도 하며 나의 대학생활을 도와주었다.

이쯤 되면 우리가 상콤한 연인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린 동성동본의 멀고도 먼 친척관계이니 그저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만 남기련다. (사실, 서로의 이상적인 스타일들은 아니었죠.)


1년이라는 꽤 긴 대학생활의 적응기간이 끝나고 이제 나의 말문이 터지기 시작한 2학년 새 학기, 그 오빠가 한동안 보이지를 않았다. 혹 휴학을 한 것인가 하는 의심과, 또 학교를 옮겨버렸나? 하는 지극히 타당한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장장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그 오빠는 새카매진 얼굴을 하고는 우리 앞에 등장을 했다. 모두들 궁금한 눈초리였지만 무언가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에 어느 누구도 쉽사리 말을 걸지 못한 채 그렇게 며칠을 보내버렸고 이윽고 한 전공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그 오빠를 앞으로 불러 그간 그에게 일어난 일을 우리들에게 전해주라며 수업시간을 대신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수많은 추측들이 있었지만, (연인과 헤어졌다, 집안에 우환이 있었다, 혹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 심지어 군대를 다시 가야 한다.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막상 그의 입을 통해 나온 이야기는 허무하기까지 했다.

그는 한 달 동안 무전여행을 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땅끝에서 본인의 집이 있던 강원도까지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했다. 비가 오면 비를 친구 삼아, 해가 내리쬐면 해를 벗 삼아 걷고 또 걸었다고 했다. 무전여행이었기에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게 먹을 거리를 구하고 지나가다 맘 좋은 사람들의 집에 하루씩 묵기도 하며 그렇게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험한 일도 겪었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자 이를 악물고 계속 나아갔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사실 나는 '참 세상 걱정 없는 사람이네'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IMF로 너나 할 것 없이 힘든 이 상황에 여행할 여유가 있다니 참 맘 편한 사람이네'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막 팔자 좋은 소리에 신경질이 날라는 찰나, 그의 다음 이야기가 나의 마음을 크게 두드렸다.

걷고 또 걸어 발이 부르트고 며칠째 씻지도 못해 힘겨운 몸을 이끌고 산골 깊숙한 어느 노부부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었다고 했다. 집안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나고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아주 초라한 집의 노부부는 오래 걸어 몰골이 추레한 젊은 청년에게 기꺼의 그들의 방을 내어주었다고 했다. 그는 사실 본인의 발이 조금 괜찮았다면 그런 초라한 집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거라 했다. 그러나 더 걸었다가는 아예 여행 자체를 포기해버릴 거 같은 생각에 '그래, 하루만 참자'라는 생각으로 그 집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식사 시간이 훨씬 지나버린 한밤중이었기에 그저 잠만 자고 이른 새벽에 길을 떠나겠다며 노부부께 부탁을 드리고는 방에 들어가 잠을 막 자려던 그 순간, 조심스럽게 방문이 열리고 할머니께서 방금 찐 감자 한 대접과 김치, 그리고 오래 입어 지고 해진 옷을 소중히 안고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불편하니 옷을 갈아입고 자라는 말씀과 함께 할머니께서는 가진 옷이 그게 전부라 미안하다며 오히려 사과를 하셨다고 했다. 그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 옷을 입을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딱 보기에도 여기저기 해진 모양새가 오랫동안 할아버지께서 입으셨던 옷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옷을 한쪽으로 치우기 위해 옷에 손을 댄 순간, 그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깊디깊은 산중에 그 노부부를 찾아오는 이가 얼마나 있겠냐만은 그래도 혹 만나게 될 손님을 위해 그 낡은 옷을 깨끗이 빨아 풀을 먹여 빳빳하게 다려놓으셨던 것이었다. 바삭바삭 소리가 날 정도로 정성스레 다려놓은 그 옷을 만지는 순간, 그는 그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덜 자란 사람이었는지를 깨달았다고 했다. 노부부의 친절함을, 노부부의 따뜻함을 오해했던 자기 자신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죄송했는지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 옷을 입고 잠을 자던 그날은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그 수많았던 날들 중 가장 행복하고 감사한 밤이었다는 이야기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는 노부부만큼은 아니지만 정성스레 옷을 각을 잡아 예쁘게 접어놓고 노부부와 소박한 아침을 함께하고는 앞으로 꼭 어르신들처럼 살겠다는 인사를 드리고 그 집을 나왔다.

나에게 그의 이야기는 긴 터널 속의 한줄기 빛이었다. 힘든 가운데도 중간중간 쉬어갈 틈들이 있고 빛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그가 그렇게나 힘든, 끝날 거 같지 않던 길고 버거운 여행을 끝내고 그의 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던 수많은 순간들 속을 걸었어도 결국은 마지막을 만났고 한 뼘쯤 성장해서 돌아온 것처럼 우리의 이 힘겨움도 언젠가는 끝을 맞이하고 찬란한 빛이 내리쬐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희망을 보게 해 준 것이었다. (우리 또한 한 뼘쯤 성장해서 말이다.)

여전히 나에게 그는 바삭거림의 잔상으로 남아있다. 내가 휴학을 하고 서로 만나는 일이 적어져 이제는 연락도 오가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나에게 그는 살이 베일 정도의 정갈한 바삭거림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누군가의 잔상이란 아마도 기억 속에서 평생을 살아있는 것 같다. 그의 바삭거림이 여전히 나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처럼 나 또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잔상을 남길 수 있을까?

꽤 오래전 어느 날, 나는 엄마, 언니와 함께 이른 새벽 우리 지역에 있는 온천으로 목욕을 다녀오던 중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두 가지 길이 있었는데, 새로 뚫린 길보다 옛길이 더 좋았던 나는 한쪽은 산이요, 반대편은 강을 끼고 있는 길로 운전대를 돌리게 되었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쐬며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나의 눈길을 사로잡게 되는... 그 아침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하는 그림 같은 장면을 만나게 되었다.

구불구불한 길과 양옆에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천천히 차를 몰던 중, 저 멀리서 강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울타리에 몸을 기대고 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한 노인분을 만나게 되었다. 이른 아침 운동을 나오셨다보다 생각을 하며 지나치려는데, 그 노인분의 손이 언니와 나의 눈길을 붙잡았다. 노인분께 가까이 다가가면서 차의 속도를 더욱 줄여보니, 그 노인분은 들꽃들을 한 움큼 손에 쥐고 계셨다. 하얗고 노란 들꽃들을 손에 가득 쥐고는 울타리에 몸을 맡기신 채 행복한 표정으로 흐르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다.

순간, 언니와 나는 동시에 외쳤다.

"와~ 완전 낭만적이다."

"할머니께 갖다 드리려나 봐!"


모습이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히 그려지는 이유를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뭔가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산과 강이 그리울 때, 그리고 엄마, 언니들과의 이른 새벽 목욕길이 그리울 때, 나는 어김없이 할아버지의 잔상이 떠오른다. 들꽃들을 손에 쥐고 계시던 바로 모습이...

어쩌면 저런 노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기도 하다. 이른 새벽 사랑하는 이보다 먼저 일어나 사랑하는 이를  닮은 예쁜 들꽃을 준비할 줄 아는 사람. 사랑하는 이가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며 즐겁게 가는 길은 모든 것이 아름다워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가던 길을 멈추고 강물과 산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는.. 또 그렇게 우연히 그 길을 지나가는 어느 누군가에게 따뜻한 잔상으로 남을 그런 사람으로 말이다.  

색깔이나 소리로 나의 모습이 남아도 좋을 거 같다. 다른 이들에게, 나를 만났었던 그리고 함께 하고 있는 이들에게, 또 앞으로 나를 알게 될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한순간일지라도 행복한 모습의 잔상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깨끗한 바삭거림이면 좋겠고, 낭만적인 들꽃들의 이미지라면 더더욱 좋을 거 같다.



이전 08화 인물열전(나,사람 그리고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