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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Jan 22. 2020

인물열전(나,사람 그리고 사람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이 되었고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일 년의 마무리와 새로 맞이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들을 건네곤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핸드폰을 꺼내 들고서는 주소록에 있는 지인들에게 어김없이 새해 인사와 복을 기원하는 문자를 연례행사처럼 하고 있다.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은 이들도 있으며 정말 일 년에 그날 하루 연락을 해보는 이들도 당연히 있다. 그저 늘 해왔던 일이었기에 그리고 나름의 인맥관리의 모양새로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인사를 보냈다. 답장이 오는 경우도 있고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으며 소위 허공을 떠돌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혼자만의 인사도 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인지 올해는 새해 인사를 보내는데 꽤 시간이 들었다. 나의 손꾸락이 무뎌졌다거나 무얼 써야 하는지 고민스러워서라기 보다는 주소록의 이름 하나하나를 보면서 불현듯 그들의 모습들이 떠올랐기에, 그리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과연 나는 한 해 한 해 늘어가는 나이라는 숫자만큼 바르게 나이를 먹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내 나이의 숫자만큼 자라지 못했다. 여전히 제대로 된 밥값을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허황된 꿈을 꾸고 있고 철이 들기는커녕 별생각 없이 시간을 허비하며 보내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

나 스스로는 평생을 이런 나로 살아왔기에 그다지 불편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만족스럽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있단 말인가.. 과연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만한 의외의 모습들이 있을 것인가? 과연 나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나에게 일 년에 한 번 뿐일지라도 인사를 전하게 될 때, 그 의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까?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늘 입에 불만과 불평을 달고 살았다. 그 아이의 사회는 온통 부조리로 가득 차 있었고 어른들은 자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괴물들이었다. 대화의 대부분은 욕이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어마 무시한 욕을 먹었던 아이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인 것이지.)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은 이 아이가 나와 꽤 오래 인연을 맺었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다 적이었던 그가 또한 어른이었던 나랑은 끝없이 싸우면서도 붙어 있었던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냥 그다지 어른답지 못했던 나의 철없음이 이유라면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커서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살 것인지가 심히 걱정되던 그런 아이였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그 아이의 본모습이 아니었다.


그 아이와 한 여자아이를 차에 태우고는 수업을 하기 위해 이동을 하던 어느 날 밤이었다. 초록 신호를 확인하고 차를 움직여 사거리를 지나치려는 찰나에 불법 좌회전 차가 우리를 향해 돌진을 했다. 간발의 차이로 충돌을 피한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고 순간 그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여자아이 혼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을 보자 그 남자아이는 전력질주로 불법 좌회전 차를 쫒아가고 있었다. 남자아이의 불꽃 추격에 그 차량의 운전자도 차를 세우고는 그 아이를 따라 우리에게 와서는 고개 숙여 사과를 하였다.

"선생님, 괜찮아요? 겁나 놀랐죠? 저런 삐리리 같은 놈. 술 쳐 먹은 거 같은데. 신고할까요? 야! 너 괜찮냐? 의자에 부딪힌 거 같은데." (사실, 쌍욕이 더  많았습니다. 차마 글로 적어 내려가기가....)

갑자기 여자아이의 눈에서 하트가 발사되는 거 같은 느낌은 삐리리 같은 놈의 출현으로 놀란 나의 기분 탓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원래 그런 아이였다. 끊임없는 투덜거림 속에서도 따뜻한 배려가 있던 아이였다. 아무 말 없이 물건을 들어주고 자기도 모르게 나와 친구들이 지나가도록 문을 잡고 있던 아이였다. 비 맞고 걸어가는 친구를 보고는 나를 조르고 졸라 비에 홀딱 젖은 친구를 차에 태우는 그런 참 예쁜 아이였다.

이런 모습들이 그의 본모습이었으며 그의 불만과 투덜거림이 그의 의외의 모습이었음을 우리 모두는 아마도 진즉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그를 많이 좋아했었던 것이다.


나의 숙명이었던 것인지 난 참 문제아들을 꽤나 가르치고 있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오는 아이들이었기에 완전히 탈선의 길들을 걷고 있지는 않았지만 부모님께 잡혀서 억지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꽤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 잠깐 만났었던 한 아이가 생각이 난다. 그 당시 중3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살짝 보태서 글자 자체를 싫어하던 아이였다.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살던 아이이다 보니 그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거의 철인 3종 경기에 맞먹는 체력 소모를 요했다. 공부하는 그 2시간은 중노동에 가까웠으며 아무리 돈 버는 일이긴 하나 그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명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아이를 계속 이렇게 두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고민도 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 아이가 하는 말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으며 공통의 소재라고는 전혀 없었던, 물과 기름의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인연은 길지 않았다. 어쩌면 공부를 그리 싫어하는데 억지로 돈을 써가며 공부를 하는 일은 그 아이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적은 시간만 공유한 채 우리는 그저 한 순간 스쳐 지나가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 아이가 유독 기억나는 이유는 바로 이 아이의 너무나도 의외의 딱 한 순간 때문이다. 정말로 그 아이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습, 너무 생소해 뒷골이 곤두서고 닭살이 돋아버렸던 바로 그런 의외의 모습 때문에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그 아이가 생각이 나는 것이다.

역시나 아이와 함께 이동을 하던 순간이었다. 그날의 날씨는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회색빛으로 젖어있던 그런 날이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정적의 순간을 가지면서 우리의 차는 한 저수지를 지나쳐 가게 되었다. 무언가라도 말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저수지의 유래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게 되었다.

"야, 저 저수지가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건데, 일본 쉐끼들이 우리 농민들한테 농사에 필요하다고 평지였던 땅을 파게 해서 만든 저수지야. 결국 그렇게 힘들게 농사지어 생산한 것들은 지들이 다 뺏어갔고... 그런 가슴 아픈 역사의 저수지란다."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그 아이는 저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선생님, 저 저수지 물이 지금 왜 저렇게 까만지 아세요?"

"어? 왜 그런데?"

"하늘이 비쳐서에요. 사실 물은 투명하잖아요. 물론 물속의 해초들의 색깔이 보이기도 하지만 물은 투명하니까 위에 하늘을 비춰주는 거죠. 그래서 맑은 날은 물이 파랗고 오늘처럼 흐린 날은 어두운 하늘을 담아 물이 검게 보이는 거예요."

"..........그렇네, 그렇게 물이 하늘을 담아내는 거였네."

우리 사람들은 참 다양한 모습들을 품고 산다. 수많은 모습들 중에 과연 내 것이 아닌 모습들이 있기는 할까? 누군가에겐 의외의 모습이라 할 것들이 또 누군가에겐 그 사람의 본모습이기도 한 것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우리들에게 사람만큼 스트레스인 것도 없으며 또 사람만큼 위로와 안식이 되는 것도 없다. 거친 모습으로 감추고 있을 지라도 그 속의 따뜻한 본모습을 발견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을 수도 있으며,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아주 낭만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음이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그리고 드라마의 제목처럼 우리는 다양한 색깔들을 품고 있으며 아직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의외의 모습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는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앞으로 새해 인사를 전하게 될 때,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배려심 넘치고 아주 낭만적인,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러니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실 거예요.'라고 나는 사람들에게 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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