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젬병이다. 절절한 사랑은커녕 남들 다하는 알콩달콩 연애도 딱히 해본 적이 없다. 이유라면 고전 분투하며 살아온 인생 탓일 수도 있고 이래저래 눈동냥, 귀동냥을 많이 한덕에 다른 누군가의 연애도 마치 나의 연애처럼 징글징글해서이기도 싶다. 원래 이론에 빠삭한 이들이 실전에서는 약하디 약하다 하지 않았던가. 어린 시절부터 숱하게 보고 들어온, 그리고 그런 수많은 시청각 교육으로 인하여 여느 상담가 뺨칠 정도로 남의 연애사 훈수에만 능한 전문가 아닌 전문가가 되어 버린,짝사랑 전문이면서, 다른 이들의 연애사 분석가이자 상담가이며 자칭 냉정한 중립자라 자부하는 본인으로서 감정의 동물인 우리 인간들의 사랑은 정말 대환장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로맨스물이고 치정극이며, 불멸의 사랑들이겠지만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세상의 그런 코미디들이 없는 것이다.
요즘은 중고등학생들,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꽤나 연애들을 한다. 이성친구가 있는 아이들을 세는 것보다 없는 아이들을 추리는 것이 훨씬 수월할 정도이다. 그러나 나의 학창 시절에는 이성친구가 있다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었다. 물론, 암암리에 다들 조금씩 연애들을 하고 있었겠지만 학교에 알려진다거나 부모님께 적발시에 그 후폭풍은 거셌기에 다들 없는 척, 안 하는 척 조심들을 했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아도는 우리 사랑의 분출 대상은 대부분이 학교 선생님이나 연예인이었다.
좋아하는 선생님의 책상에 몰래 캔커피를 올려놓고 만날 수 없는 연예인에게 편지를 쓰고 선물들을 보내며 혈기왕성한 우리들의 사랑을 소비하고 살았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의 부족한 연애사는 어쩌면 내 안의 사랑이 유달리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거 같다. 딱히 좋아하던 선생님도, 그리고 흠뻑 빠져 허우적거리던 연예인도 없었으니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수련회를 갔을 때였다. 5명씩 조를 이뤄 야영지에서 직접 텐트를 치고 요리도 하면서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숙식을 했었다. 그러면서 잘 알지 못했던 친구들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고 익숙지 않은 상황들을 맞닥드리며 그렇게 3일간의 시간을 왁자지껄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수련회의 마지막 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이들을 울고불고하게 만드는 대망의 캠프파이어를 마치고 각자의 텐트로 돌아와 잠을 자야 하는 시간, 마지막이었기에 어느 누구 하나 잠들지 못하고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을 때, 한 친구가 가방에서 무겁게 들고 온 라디오를 꺼내 들었다.
"친구들아, 내가 라디오 방송에 엽서를 보냈거든. 오늘 꼭 소개해 달라고 말이야. 우리 같이 들어보자."
마침, 우리 지역에서 하던 음악방송이 흘러나왔고(지역방송이라 사연이 채택될 확률이 더 높았죠.) 우리 모두는 귀를 쫑긋 세우고는 라디오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집중을 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기적처럼 친구의 사연이 흘러나왔다.
"ㅇㅇ 초등학교의 학생이 보내준 사연입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수련회를 왔습니다. 사연이 소개된다면 저는 친구들과 텐트속에서 방송을 듣고 있을 겁니다. 수련회 무사히 잘 마치고 친구들과 더 친해지고 싶습니다.'
귀여운 사연이었습니다. 친구들 잘 듣고 있나요? 저도 친구들이 더 돈독한 우정을 만들어 가길 바라겠습니다. (대충 뭐 이런 내용...) 그럼 우리 친구가 신청한 노래 듣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모두 환호하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우리들의 이야기에 흥분들을 했었다.
그런데, 정작 사연을 보낸 친구의 얼굴은 곧 울음이 터져 나올 거 같았다. 신청한 노래가 흥겹고 신나는 노래였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울먹거리며 라디오만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왜? 너무 감동받은 거야? 그렇다고 울 거 까지야..."
"너무해, 사연은 소개해주고 노래는 안 틀어주다니. 나쁜 디제이"
"엥? 지금 나오는 노래를 신청한 게 아니었어?"
"난 나훈아 아저씨 노래를 신청했는데, 왜 이게 나오는 건데?"
"...뭐라고? 나훈아? 그 트로트 부르는 무서운 아저씨?" (죄송합니다. 저희는 애기들이었으니까요.)
그러고는 그 아이는 그만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사실, 야밤의 대성통곡에 선생님께서 달려오실까 봐 저희가 강제로 이불을 뒤집어 씌웠죠.) 아무도 본인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부모님도 어이없어하고 나훈아 아저씨를 사랑한다 하면 다들 장난이냐며 되묻는다는 것이다. 자기의 꿈은 나훈아 아저씨를 직접 만나 본인의 사랑을 알려주는 것인데, 이렇게 방송에서조차 본인의 사랑을 무시했다며 그 친구는 우리 수련회의 마지막 밤을 아까 보았던 캠프파이어의 모닥불 같은 사랑의 눈물로 적시고 있었다.
'찐 사랑이네. 이보다 더 절절할 수는 없다. 친구야, 우린 너의 사랑을 응원한다.'
친구는 본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그 광경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댄스 음악을 BGM 삼아 듣고 있는 나와 친구들에게는 결코 잊히지 않는 한 편의 코미디가 되어버렸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는 잠이 무척 많은 학생이었다. 거의 하루 종일 잠에 빠져 살기 일쑤였다. (잠이 많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나는 앞자리를 피하고자 부단히 노력을 하였다. 자리를 정하는 날은 어느 날보다 일찍 등교를 해서 뒷자리를 차지하였고 걸리지 않고 잠을 자는 방법들을 찾아내어 열심히 쪽잠을 자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고3 시절, 우리 담임선생님께서는 매달 초 제비뽑기로 교실 내 우리들의 자리를 정해주셨는데, 뒷자리 쪽이 당첨되면 별 무리 없이 받아들였고 앞자리가 당첨된다 하더라도 나는 뒷자리 아이와 약간의 뇌물로 자리를 바꾸곤 했었다.
그렇게 숙면으로 가기 위한 꼼수를 부리다가 드디어 사달이 나 버렸다...
앞자리를 뽑아 또 뒷자리로 갈 궁리를 하고 있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자비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 아이는 맨 뒷자리를 뽑은 아이였는데, 자진해서 자리를 바꾸자며 나에게 먼저 제안을 한 것이었다. 그 아이의 너그러움에 감사를 표하고는 냉큼 짐을 싸서 뒷자리로 갔을 때, 그 천사 같은 아이의 자비로움의 이유를 단번에 깨닫게 되었다. 짝꿍이 바로 우리 반에서, 아니 학교 전체에서 짱을 먹던, 모든 아이들이 무서워하던, 선생님들조차 함부로 손을 대지 않던 일진 중에 일진 아이였던 것이었다. 순간 반드시 이 거래를 없던 걸로 해야 한다는 공포감이 들었기에 원래 뽑았던 자리를 간절한 눈빛으로 돌아보자 천사 같던 그 아이는 어느덧 절대 그곳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방석을 의자에 꽁꽁 동여 메고 있었다. 결국, 나는 숨소리조차 삼키며 조용히 한 달을 쥐 죽은 듯이 보내야만 했다.
그나마 정말 다행인 것은 나의 짝꿍은 나에게 1도 관심이 없었다. 내가 잠을 자던 코를 골던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단, 자기의 물건에 손도 대지 말 것이며 말도 걸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지만 말이다. 내가 자다가 혹 그 아이 쪽으로 고개가 떨어질라치면 손에 들고 있는 모든 물건을 동원해서 나의 머리를 반대편으로 밀어버리는 것만 빼면(의자 밖으로 굴러 떨어진 일도 부지기수였다.) 짝꿍으로 그다지 나쁠 건 없었다. 간혹 들려오는 쌍욕과 어마어마한 덩치의 그늘, (그 아이는 키가 상당히 컸다. 그렇기에 그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늘 맨 뒷자리였다.) 그리고 쉬는 시간 그의 친구들의 살벌한 모의속에 찍소리 안 내고 버티기만 하면 난 얼마든지 잠을 잘 수 있던 것이었다. 그러던 그 아이가 어느 순간 180도 달라져 버렸다. 그건 다른 말로 하면 난 더 이상 그 아이 옆에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나의 무서웠던 짝꿍의 말랑말랑한 첫사랑 때문이었다.
사랑이란 건 참, 말도 안 되게 한 순간에 찾아온다. 늘 다를 바 없는 똑같은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갑자기 예고도 없이 '쿵'하고 가슴속에 큰 파도를 일으키며 말이다. 그 아이의 첫사랑이 그랬다.
여느 때처럼, 비몽사몽간에 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한여름도 아닌데 갑자기 후끈해진 공기에 간신히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어떤 남자 선생님이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고 계셨다.
'자는데 뭐가 이렇게 뜨거운 거야? 지금 뭔 시간이냐?' (난 내리 3시간째 잠들어 있었다.)
옆을 바라보자 짝꿍의 책상에 세계지리 교과서가 펼쳐져 있었다.
'아, 세계지리 시간이구나. 저분은 누구신가? 어디서 뵌 선생님 같기도 하고... 나의 짝꿍님은 굉장히 뜨거워 보이시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계시던 세계지리 선생님께서 갑자기 전근을 가시고 급 다른 선생님께서 앞으로의 수업을 맡으셨던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선생님은 말도 못 걸던 내 짝꿍의 사랑이 되셨다.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은 역시 사람이고 사랑이다. 탈선의 길을 걷던 내 짝꿍은 사랑에 빠지자 탈선의 길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도 그리고 수긍이 갈 수도 없었던 사랑이었지만(그냥 아주 평범하신 선생님, 어느 학교에나 계실법한 그런 분이셨다.) 나의 짝꿍님에게 선생님은 원빈이자 브래드 피트였다. 그리고 나의 짝꿍의 날들은 매일매일이 핑크빛이었으며 한창 사랑에 빠진 너무나 예쁘디 예쁜 소녀였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 선생님 또한 그 아이의 사랑을 모른 체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보다 그 아이를 더 편애하셨다. 대놓고 이뻐하셨으며 문제아였지만 그 아이를 문제아가 아닌 사랑하는 제자로 대해주셨다. 그것이 그 아이를 변하게 했던 것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 짝꿍은 세계지리 시간엔 초집중으로 수업을 들었다. 다른 과목들은 거들떠도 안보는 아이가 하루 24시간 내내 세계지리만 파고 살았다. 그에 반해 세계지리 시간은 나에게 엄청난 고욕이며 고문이었다.
사실, 지리수업이 얼마나 지루한 수업이란 말인가. 내 나라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는 내가 세계 곳곳의 소식을 글로 배우고 있으니 잠이 쏟아지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난 결코 잠을 잘 수 없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질라 치면 어김없이 뾰족한 샤프 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머리가 무거워 앞으로 고꾸라질라 치면 머리끄덩이가 잡혀 뒤로 홱 져쳐지기가 다반사였다. (이렇게 잠과의 사투를 벌이며 공부를 했으면 내가 서울대를 갔지.) 비몽사몽 정신을 못 차릴 때는 조용한 속삼임이 내 귀에 들어와 박혔다.
"뒤질래? 우리 선생님 시간에 자면 가만 안 둔다 했다. 공부해라!"
"넵! 제가 또 잠을 잘 뻔했군요." (좀 과장을 한 거죠. 설마, 친구끼리 존댓말을 했겠습니까? 하하.)
수업이 끝나 선생님께서 나가시면 내 짝꿍은 어김없이 나를 몰아세웠다. 어떻게 그렇게 잠을 잘 수 있냐며, 제정신이 맞냐는 둥, 본인이 나 때문에 선생님 얼굴을 쳐다볼 면목이 없다는 둥, 3학년이 끝날 때까지 자기의 옆에 앉아서 버릇을 고치라는 등등. 온갖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아이도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 싶다. 꽤 오래 같이 앉았으니 말이다.)
이건 뭐 수절하는 과부도 아니고 한때는 잠 잘 방법들을 연구하던 내가 이제는 잠에서 깰 방법들을 궁리하며 허벅지를 찌르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격변의 역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당연히, 그 친구는 세계지리과목은 거의 백점을 늘 달성하였다. 나야 뭐.... 깨어있어도 깨어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기억이 남아있지도 않다.
나의 짝꿍에겐 몽글몽글하다 못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첫사랑, 선생님께는 본인을 통해 변해버린 제자의 귀여운 풋사랑, 나에겐 고래싸움에 등이 터져버린 새우 모양새의 처참한 사랑의 피해자. 나의 고3 시절 사랑이 그랬었다.
누군가를 좋아해도 성격상 티를 내거나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드물다. 양방향 감정이라면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지만, 외사랑일 경우는 그저 조용히 속으로 쌓고 쌓아 놓았다가 또 혼자 어느 날 조용히 마음을 비워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나의 그런 모습들도 멀리서 보면 꽤 코믹한 원맨쇼가 아닐까 싶다. 나 자신이야 애틋했으며 나름 진지했지만 몇 걸음 떨어져 보면 어느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삶의 한 자락이지 않겠는가.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고 향기도 다르지만 결국은 사랑이라는 삶의 드라마이자 코미디 말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서로 사랑들을 한다. 멜로가 되었는 코미디가 되었든 간에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나와 인연이 닿아 만나는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고 인생의 여러 페이지의 이야기들을 채워간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추억도 있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민망해 기억 속에서 잊혀지기를 바라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웃픈 추억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절절한 아픔으로 기억되든 한 편의 배꼽 잡는 코미디로 기억되든 간에 어쨌든 사랑이다. 그러니 맘껏 즐기기를... 원래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지 않겠는가. 멜로이자 코미디이며 서사이자 시트콤, 온갖 이야기들의 집합체가 우리 사람이고 우리의 인생들이라 생각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