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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Oct 29. 2020

인물열전(나,사람 그리고 사람들)

질량 보존의 법칙

고속도로 휴게소 내 커피숍에서 알바를 한 경험이 있었던 한 제자 녀석이 가르쳐준 바에 의하면 고속도로에서 파는 커피들은 일반적으로 커피의 양이 더 적다고 했다. 들고나는 사람들이 많은 덕에 일반 커피숍의 커피보다 샷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늘 먹던 커피의 맛을 즐기려면 반드시 샷을 추가하여 주문을 하라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 아닌 충고를 건네는 뿌듯해 마지않던 녀석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했었다. 

"그럼 커피가 적으면 얼음을 더 많이 넣어주나?"

".........당연한 거 아닙니까? 물이랑 얼음이 더 많이 들어가야 양이 맞죠."


세상만사 모든 것들은 그만의 질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누군가는 의의를 제기하며 말할 것이다. 재산은 모으고 모으면 계속 늘어나는 것이고 재능도 노력하면 할수록 쌓이고 쌓이지 않냐고 말이다.  당연히 그러한 사실에 동의를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에 무언가는 우리 안에서 빠져나가며 그만의 질량을 유지하고 있지 않을까? 시간이든 건강이든 아니면 가족이나 친구들 등등의 무언가가 채워지는 만큼의 질량으로 빠져나가고 있을 거라고, 커피가 줄어들면 대신 그 자리를 물과 얼음이 채우듯이 그렇게 우리에게서도 부단히 질량을 보존하기 위해 들고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어린 시절엔 친구가 많은 것이 좋았다. 주변에 친구가 많다는 것이 훈장처럼 느껴지곤 했었던 것이다. 인기가 있고 성격도 좋은 그런 인정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눈치를 보며 살았었다. 하기 싫은 일들도 친구들이 하면 따라 해야만 했었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해가며 친구들이 가진 것을 가져야만 했었다. 그렇게 많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 중요했던 시기였는데 그 많던 친구들 중 지금까지도 알고 지내는 친구들은 불행히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머리가 크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내 안을 채워가자 사람의 수가 줄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내가 막 영화에 빠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을 것이다. (기억하기론 중학교 3학년 때이다) 한창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들이 넘쳐나던 시절, 나는 조용한 영화들을 찾아다녔었다. 잔잔한 로맨틱 영화들이 좋았었고 나름의 장르물들에 흠뻑 빠져있었다. 안타까운 점은 그런 나의 취향을 공유해줄 친구가 없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취향이 달랐다기보다는 영화에 빠져 살던 이가 드물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렇게 북적거리던 나의 인간관계의 질량은 그 시절 그렇게 양이 정해져 버렸다. 그 뒤로 나는 딱히 친한 친구들 혹은 가까운 지인들이라는 환경은 만들어지지가 않았다. 그냥 어디에서든지 만나는 모든 이들과 적당한 관계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렇게 적은 질량으로 살아가고 있다. 외롭지 않냐고? 글쎄? 내 질량 보존의 법칙이 그렇다면 외로울 이유가 있을까? 그 질량은 나 스스로 만든 것이고 그렇게 적응해 왔으며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이 당연한 이치인 것이지.

나만의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듯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법칙이 존재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서로서로의 질량이 맞아떨어져 더할 나위 없는 황금비율이 완성된다면야 바랄 것이 없겠지만 우리의 인생사가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 쉬이 맞아떨어질 수가 있겠는가.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 그렇게 수많은 질량들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질량에 속했다가 또 어느 순간 누군가의 질량 속에서 넘쳐흘러 밀려날 수도 있으며 동시에 나의 질량 속에 누군가를 담았다가 비워내기도 함이 우리네 삶이지 않을까.


자고로 이성과 감정이 있는 인간인지라 우리들은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고 또 관계가 소원 해졌을 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 깨달은 바는 내가 잠깐 누군가의 질량 속에 속해있다가 양이 넘쳐남에 의해 떠밀려 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딱히 속상해할 일도 그렇다고 서운해할 일도 아니었다. 그것이 그들의 질량이었을 뿐이고 내가 아닌 누군가가 그들의 양을 채웠기에 내가 대신 빠져나온 것뿐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을 보듬을 만큼 우리네 그릇이 계속 커진다면 계속 머무를 수도 있었겠지만 그리고 내가 다른 이의 양에서 밀려나지 않을 정도의 대체할 수 없는 필수 양이었어도 좋았겠지만 나의 질량 또한 늘어난 무언가를 감당할 그릇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은 둘을 담는다. 누군가는 백을 담을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기 자신만을 담기도 한다. 그게 그들만의 질량인 것이고 그들만의 마음이다. 백을 담고 천을 담는다고 부러워할 것도 아니며 아무도 담지 못한다 하여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나름의 보존의 법칙이 있을 뿐이다. 그 안에서 편안하고 내가 나 자신일 수 있기만 하면 그만이다.


커피가 많으면 얼음이 줄어드는 것이고 사람이 넘치면 사람을 덜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서로의 마음에서 채워졌다가 비워지기를 반복하고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한 부분을 차지하던 비워지는 존재이든 간에 내 마음만 단단하면 된다. 그럼 나만의 최적의 양을 찾을 것이고 그 안에 놀라운 일들이 채워질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아니면 나 자신이든 진정으로 찾고자 하는 것이 빈자리를 찾을 것이다.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불현듯 주변을 돌아보니 나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때, 시간 나는 대로 어울리던 사람들이 어느덧 저만치 멀어져 있을 때, 어느 순간 혼자임이 익숙해질 때, 그럴 때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질량을. 그리고 그들의 질량을..

그러니 억지로 늘릴 것도 그리고 억지로 비워낼 것도 없다. 질량 보존의 법칙은 불변이며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나의 질량도 그리고 다른 이들의 질량도 저절로 유지될 것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량을 지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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