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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백의 숲 Aug 02. 2021

숲에서 보내는 편지 7월 호

공백의 숲 Letter

7월의 안부


안녕하세요. 공백의 숲입니다.


비가 내리는 날 책상 앞에 앉아 선풍기로 습기를 날리며 일곱 번째 편지를 씁니다. 연일 계속되는 우중충한 날씨에 장마가 시작된 것만 같아 괜스레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30도를 웃도는 기온과 수시로 내리는 소나기가 내리는 날들이 여름을 잔뜩 싣고 온 것 같습니다. 여름에 파묻혀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선풍기 앞에 앉아 있는 것 밖에 없지만 여름의 한가운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여름밤의 냄새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미 울음소리, 달콤하고 시원한 여름작물들 덕분일 것입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름. 그 한가운데인 7월에 도달하였으니 예고한 대로 여름을 가득 담은 편지를 준비했습니다. 4월 봄 호에 이어 공백의 숲만의 여름 식물도감과 단편소설인 ‘숲이 사라졌다’의 두 번째 이야기까지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날은 계속해서 더워질 테고, 비도 계속 내리겠지만 그것들이 자연재해가 되지 않고,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단지 ‘날이 덥고 비가 많이 오는 여름’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닌 여름밤의 냄새와 향수를 일으키는 매미 소리, 달콤하고 시원한 여름작물들로 올해의 여름이 기억되길 바랍니다. 더 사랑하게 될 우리의 여름을 위해 이번 달 편지를 보냅니다.

여름의 숲으로부터


앵두: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벚나무속

C의 이야기: 어릴 적, 아파트 화단에 열린 앵두를 따 먹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 경비원 아저씨가 앵두를 따 먹으라고 권해주셨던 것 같아요.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쩐지 어린 시절 여름의 한 페이지가 제 마음속에 아득하면서도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금계국: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또는 두해살이풀

C의 이야기: 지난여름, 이름 모를 노란 꽃이 잔뜩 피어있는 풍경을 보았어요. 문득 길가에도, 언덕에도, 들판에도 흔히 피어있는 저 꽃의 이름이 궁금해졌어요. 너의 이름은 금계국이구나. 금계국이었구나. 금계국. 몇 번이고 꽃의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토마토: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가지과의 한해살이풀

M의 이야기: 누군가 여름의 최고 소울푸드를 묻는다면 전 한치의 의심 없이 토마토를 꼽을 정도로 여름에 토마토를 많이 먹어요. 특히 꿀과 토마토를 넣고 갈아먹는 것은 여름 최고의 별미입니다. 새콤달콤의 정석이랄까요.


능소화: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능소화과의 낙엽성 덩굴식물

C의 이야기: 저에게 능소화는 처음의 설렘과 열정이에요. 필름 카메라로 처음 찍은 꽃이 능소화였거든요. 다시 그때의 계절이 찾아와 영롱한 주홍빛을 피우는 능소화를 보면 설렘으로 반짝이던 그때의 마음이 떠올라요.


피자두: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교목

M의 이야기: 피자두는 겉모습은 자두와 같이 생겼지만 안에는 체리처럼 검붉은 색을 띠고 있어요. 저희 동네엔 자두보다 피자두가 많아서 어렸을 땐 모든 자두가 피자두처럼 생긴 줄 알았더랬죠. 맛은 생긴 것처럼 자두와 체리의 맛이 동시에 난답니다.

숲이 사라졌다.


 귀가 먹먹해졌다. 두 시간 동안 동이네 밭에서 감자를 심는 동안 내내 쾅쾅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동이는 도와주어서 고맙다며 동이네 목장에서 짠 우유 두 통과 앵두 한 봉지, 참외 다섯 개를 손에 쥐여 주었다. 귀는 먹먹하고, 허리는 곧 끊어질 듯 아팠지만 양손은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가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손에 잔뜩 있던 것들을 주방 한편에 와르르 쏟아내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거. 동이가 밭일 도와줘서 고맙다며 주더라.” 엄마는 된장찌개에 넣을 두부를 써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어머. 동이를 만났어? 그래서 이렇게 늦게 왔구나. 동이 요새 바쁠 텐데 잘했네.”라고 했다. 주방에 의자 하나를 빼어내서 털썩 주저앉으며 “엄마. 여기 고속도로 들어와?”라고 물었다. 엄마는 여전히 도마에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응. 여기 고속도로 생겨. 엄마가 말 안 했었나? 몇 달 전에 생기기로 한 건데.”

“나한테 말 안 했었어. 동이가 말해주던데. 동이네 밭 앞에 있던 산은 통째로 사라지고, 이웃들도 다 이사 나갔다고. 무지개 식당도 문 닫았다며.”

“어휴. 그러니까. 다들 집 팔고 이사 나갔지 뭐.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게 될 줄이야.”

“엄마, 아빠는 이사 안 갈 거야?”

“뭔 이사야. 이제 아파트에서는 못 살아. 엄마, 아빠는 땅 밟고 살아야 해.”

그런 엄마의 말에 어쨌든 고향과 집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란 안도감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고속도로에 대해 동이처럼 큰일처럼 생각하지 않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그날로 며칠이 지났다. 지민은 밭일의 후유증으로 인한 근육통 때문에 며칠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고생했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일 없이 집에서 할 일 없이 뒹구는 백수였고, 밥을 먹고, 산책하고, 잠을 자는 일이 지민의 일과였다. 동이의 밭일을 도와주러 갔던 그날 이후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깡깡, 쾅쾅, 쿵쿵하는 공사 소리가 지민의 방에서도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전에는 의식하지 못했었던 것인지 아니면 공사가 점차 진행되어 지민의 집 근처까지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때문에 낮잠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고, 창문을 조금만 열어놔도 책상 위로 흙먼지가 수북이 쌓이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소음과 흙먼지에 며칠을 시달리고 나니 집은 휴식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딘가로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지민은 곧바로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날이 조금 흐렸고, 공기가 습했지만 멀리까지 가진 않을 것이므로 굳이 우산을 챙기진 않았다.

 집을 나왔지만 갈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섬마을에는 카페나 영화관, 도서관 같은 조용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민이 갈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지민의 집 뒤편에 있는 ‘숲 터널’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원래라면 식당 쪽으로 걸어 나가 사거리를 거쳐 가야 하지만 지민의 집 옆 편에는 숲 터널로 갈 수 있는 좁은 지름길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멀지 않았다.

 10분 정도 걸어서 숲 터널 입구에 도착한 지민은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숲 터널은 말 그대로 숲 한가운데에 터널처럼 길이 뚫려있는 형태였기 때문에 빽빽하게 심겨 있는 나무들 사이로 빛은 들어오지 않아야 했다. 날도 흐렸으니 더욱더 어두워야 할 곳이었는데 생각만큼 어둡지 않았고, 심지어 조용하지도 않았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지민은 숲 터널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더욱더 밝아지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라면 안쪽으로 걸어 들어 갈수록 어두워지면서 숲 한가운데에서 나무에 둘러싸여 있는 안정감이 느껴져야 했지만 그런 건 느낄 수 없었다. 듬성듬성 나무가 비어 있었고, 그곳 역시 나무를 자르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예전에 아빠에게 이곳이 누군가의 사유지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숲 터널은 섬마을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었지만 그곳 또한 누군가의 사유지였고, 그 누군가는 고속도로 덕분에 땅값이 오른 땅을 팔았을 뿐이었다. 땅값이 오르면 땅을 판다. 그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마음은 잘려 나간 것 같았다.

 지민에게 숲 터널은 소중한 곳이었다. 학창 시절엔 매일 그 터널을 지나 등교를 했으며,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걸었던 추억도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지민이 섬마을을 떠나기 전까진 매년 여름밤이면 가족, 친구들과 함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빛을 내뿜는 반딧불을 보는 연례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지민 앞에 펼쳐진 숲 터널은 반딧불이와 학창 시절의 추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그곳에서 매년 열렸던 우리의 연례행사도 앞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병들어서 듬성듬성 털이 빠진 볼품없는 동물의 모습처럼 듬성듬성 나무가 잘려 나가 볼품 없어진 숲 터널을 아니, 이젠 ‘숲 터널’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 같은 그곳을 지민은 이번에도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지민의 위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지민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빗방울은 굵어졌고, 순식간에 쏴 하는 소리를 내는 거센 빗줄기로 바뀌었다.

P.S.

추신에는 저희가 매달 좋아하던 노래나 영화, 드라마, 책 등을 소개합니다. 일곱 번째 추신은 책입니다.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여름만 되면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 하는 나,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이는 나. 온갖 고민과 불안 따위는 저 멀리 치워두고 그 계절만큼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아무튼, 여름 - 김신회


2021년 7월 20일 공백의 숲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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