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로켓을 만들어 쏘아보자
내 안의 우주인을 위하여
예술작품을 할 때, 나는 작은 공간을 활용해서 무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작은 공간이 주는 묘한 매력은 반대로 무한하게 상상을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었다. 그중에서 특히나 냉장고, 소설 카스테라에서 주인공은 냉장고에 음식이 아닌 세상에 이롭거나 해로운 다양한 것들을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새로운 지구가 냉장고 안에서 탄생한다. 일상의 사물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경험은 나의 인생에 깊은 영감을 미쳤다. 이것은 취향이면서 운명이나 내 안의 부름과도 같았다. 이제 내 목표는, 우주를 펼치는 게, 아니라 그곳으로 들어가야겠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무한한 우주의 신비에 마음을 빼앗긴다. 우주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우주는 거대하고 우리는 그 속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칼 세이건의 말처럼, 우주는 나의 존재를 미미한 것으로 느끼게 하면서도, 동시에 내 안에 잠재된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워준다.
우주의 광활함은 마음을 압도하며, 칼 세이건의 말처럼, 우주 속에서 나의 존재는 한 줌의 먼지에 불과하게 느껴진다. 우주의 광대함 속에서 나는 작은 존재지만, 내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마치 허블 우주 망원경이 우주의 심오한 비밀을 하나씩 풀어내듯, 나는 내 안의 우주에서 자아의 단서를 찾아 나선다.
내 안의 우주인은 때때로 마음의 지도를 잃어버린 채 어둠 속에서 헤맨다. 나는 중요한 인생의 선택 앞에 섰을 때, 마치 우주선의 조종사가 되어 미지의 행성으로의 길을 찾아 나서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선택의 순간은 우주여행을 하다 새롭게 발견하는 미지의 행성을 마주하는 것처럼, 동시에 설렘과 두려움을 안겨줬다.
한 번은 나의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마치 내 안의 우주인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나의 미래는 그 블랙홀 너머에 있었고,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내 안의 우주인은 길을 잃는다. 마치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는 혜성처럼. 그렇기에 나는 나의 우주인에게 필요한 구급상자를 차곡히 준비한다. 구급상자에는 반창고와 소독약을 넣고, 나침반 하나, 희망을 끄적거린 편지, 용기 한 줌을 담는다. 이는 몸의 생채기뿐만 아니라 우리가 마주할 도전을 극복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용기'를 상징하는 작은 나침반은, 길을 잃었을 때 항상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아주며, 끄적인 편지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견할 수 있음을, 그리고 용기 한 줌은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나라는 가치를 잊지 말라는 속삭임을 줄 것이다.
자동차의 계기판을 살펴보면, 자동차가 달려온 거리가 표시된다. 나타난다. 주변의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계기판을 들여다보자. 그 자동차는 몇 킬로를 달려왔는가? 대부분 자동차들은 이미 지구 둘레 한 바퀴만큼을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이 조그마한 600km 남짓 되는 땅덩이 안에서 말이다.
자신, 가족, 지인들의 낡은 차가 말해주듯, 우리의 여정은 각자 다르지만, 모두가 지구라는 작은 무대 위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펼쳐낸다.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땅덩이에서 아등바등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달리고 모든 순간을 무한하게 창조해 나가고 있다. 내 자동차가 달려온 거리는 나의 지구적 여정이지만, 이제 나는 더 넓은 우주로의 여정을 꿈꾼다. 마치 지구 한 바퀴 여행이 우주로의 발판이 되듯이.
5만 km가 넘은 자동차의 계기판을 바라본다. 지구의 삶이란 것이 참 협소하고도 따분하다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물론 대부분은 허투루 살아오지 않은 삶이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이 답답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둥근 지구를 이리저리 종횡해 봐도, 결국은 4만 킬로미터의 삶이다. 지구촌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속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도 더 멀리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려고 준비 중일까?
만일 우주로 나아가게 된다면 나는 그 여행길에 반드시 구급상자를 준비할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길 잃고 지친 우주인을 만난다면 그 구급상자를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일지라도, 이 우주를 여행하는 존재라면, 어쩌면 나와 같은 희망과 고독을 품고 있는 존재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록 서로 간의 소통이 가능한지조차 의문인, 존재와 존재의 만남이라고 할지라도 서로의 지친 여정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지구에서의 삶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적인 생명체에게 고독은 필연적이고 모든 여정은 지치기 마련이다.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고대의 사람들은 별자리를 어떻게 이어서 만들었을까. 별자리의 흔적을 찾아가듯 우리도 자신을 재조립하는 과정을 일평생 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그간 이 지구에, 이 사회에 흩뿌려 놓았던 나 자신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을 때이다. 나는 작은 우주인들에게 필요한 구급상자를 내밀어 주고 싶다.
우주의 심연에 위치한 블랙홀처럼, 우리의 정체성은 때때로 흐릿하고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블랙홀 너머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우주가 펼쳐져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각자만의 작은 무대와 우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에 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튼튼하고 훌륭한 로켓이 필요하다. 우리는 로켓공학자가 아니니 운동장으로 나가 조물조물 물로켓부터 쏘아 올려 보자. 물로켓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순간, 나는 우리가 모두 자신만의 우주를 향해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
(이 이미지는 글을 바탕으로 AI가 그린 그림입니다. 이미지 생성: OpenAI의 DA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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