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또 올 거면서
저녁이 오기 전
온 세상은 따스해진다
산등성이가 환해지고
지붕마다 다정한 빛들이 내려앉는다
하루 일을 마친 해가
마지막 남은 빛을 바알갛게 부풀려
이 세상 모두를 한 번 더 안아본다
내일 또 올 거면서
그래도 어루만져 본다
변은경, 《어린이책 이야기 》2019년 가을호, 《1센티미터 숲 》문학동네 2023
늦은 오후부터 저녁이 오기 전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강아지풀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이다. 버려진 자전거도 사람들도 모두 긴 그림자를 갖는다. 헐렁해진 시간은 창밖을 보게 한다. 지붕마다 내려앉은 오후의 빛은 다정하다. 화가가 나무의 우듬지나 서쪽을 향한 벽들에 빛을 칠한 듯 아름답다. 저녁놀은 마치 엄마 같다. 내일 또 안아 줄 거면서 오늘이 마지막인 양 온몸으로 보듬어주는 엄마 품말이다. 해가 꼴깍 넘어가면 풍경은 새롭게 태어난다. 건물이나 산 등성이의 윤곽이 선명해지고 조금 부끄러운 것들이 가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