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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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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글 Aug 06. 2024

사도요한, 나의 아빠 안녕

아빠는 폭군이자 박애주의자였다.

가난을 떨쳐버리기 위해 나폴레옹처럼  돌격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칠 것 없이 가시덤불을 헤치며 산 상처투성이 아빠에 대한 평가는 양분된다. 구두쇠 장사꾼, 그러면서도 그 돈을 바라는 사람들때문에 잠 못 이루 결국 도와주는 마음약한 친구.

내가 아는 아빠는? 혼자 로또 100억에 당첨되면 도와주고싶은 친척, 친구들 이름을 남몰래 적어보느라 밤을 새기도 하는 박애주의자. 실제로 아빠는 착했다.  아빠의 사진 앞에서 눈물섞인 얼굴로 엄지를 척 치켜드는 친구 한둘이 아니었다.


아빠는 형사이자 깡패였다.

사람들이 예전에 시청률 76프로를 기록한 '사랑과 야망' 드라마에 나오는 터프가이 이덕화 캐릭터 보고 아빠같다고 했다니 알만하지 않은가. 

실제로 맨손으로 탈주범을 때려잡던 멋쟁이였지만 젊은 치기에 온갖 사고를 다 치던 집안의 말썽꾸러기이기도 했다.  그러게 해병대 무리는 왜 건드려가지고 집까지 찾아오게 만들었을까. 숨기는 왜 숨어서 영문도 모르는 큰아버지가 흠씬 두들겨 맞게 했는지! 장독대도 다 깨졌다던가. 아빠의 어릴 적 얘기에는 할머니에게 얻어맞던 얘기가 빠지지않았다. 맞아도 싸다. 정말.


아빠는 장사꾼이자 예술가였다.

맨몸으로 장사를 시작해서 건물 하나 세울때까지 아빠는 한강 이남에서 속옷을 제일 많이 판 판매왕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늘 그림을 그리고 싶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시장변에서 건너편 경치를 맘속으로 채색해보는 예술가였다.

결국 장사꾼이 자기 가게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니 아빠는 욕심꾸러기였다.

뇌경색에서 회복 후에도 다시 화구 앞으로


아빠는 거친 낭만주의자였다

사실 아빠는 술로 낭만을 노래하는 술고래였다. 현실이 팍팍해 술을 마시고 가끔 깽판을 쳤지만 반성할 때는 귀여운 표정으로 사과했다. 무슨 마음에 걸리는 아픔이 많은지 불면증으로 괴로울땐 해장국수 한그릇 먹고 노래 한가락으로 잠을 청해보곤  했다. 어린 나는 늘 아빠의 피아노 반주자였다. 젊었을 땐 간수치가 나빠져 입원해도 병원 담장넘어 술마시러 도망치던, 어쨌든 평생 술을 사랑했던 상남자.


그리고...책과 글을 사랑했던 아빠.


이제 아빠가 보고싶어도 볼 수가 없다.




아빠가 지난 주 코로나로 입원한지 5일 만에 돌아가셨다.

어제 아빠를 묻고 돌아오는 버스안에서는 빗물이 바람에 날려 공중을 달릴 정도로 세찬 폭우가 쏟아졌다. 예로부터 장례치르고 땅에 시신을 묻은 뒤 비가 사흘 밤낮으로 내리면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단단하게 잘 자리잡는다고 했다.

아빠는 끝까지 평범하게 가지 않았다


"묻을 때는 제대로 묻어라.
다질  때는 내가 다질테니!"


딱 이거였다.

빗속으로 아빠가 땅을 꼭꼭 다지러 내려오다니...

정말 멋지고 생각했다


입관 때 아빠의 이마에 새겨진 깊은 세 줄의 고랑같은 주름을 많이 쓰다듬어주었다. 고뇌는 놓고가야지, 아빠.




모순적인 사람

해학적인 사람

미운데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아빠를 보내고 이제는 엄마를 보살펴야 한다.

그래서 아빠에 대한 추억이 사라지기 전에

그 기록을 엮어보려한다


사랑스러운 폭군이었지만

착한 친구였고

예술로 먹고 살고 싶었지만

장사를 해야 해서 슬펐으며

다정이 병이 되어

잠 못 이룬 밤이 많았던

사도요한, 나의 아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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