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새미 Apr 04. 2019

매화야 우지마라, 우지마

#조희룡 #매화서옥


조희룡(1789~1866) 매화서옥 / 소장처 간송미술관

니 경익이 아재 큰 딸 숙이 알제?

가가 참말로 불쌍타카이.

어매 먼저 세상 보내뿌고 혼자 일하러 나가는데 그 고운 얼굴이 시커멓게 그늘이 졌어.

아재랑 즈그 동생들 먹일라꼬 학교도 그만도뿌고 장날 물건팔러 나간데이.

말도마그레이. 아재는 초가을 때부터 시름시름 아프다카이 지금은 아파가꼬 아예 일을 모한다.

뭐 걷지를 모한다카이 뼈가 부사진것도 아인데 일어나지를 모한단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들어가 집에 꼼짝도 모하고 누워만있단다. 

그래가꼬 숙이 가가 가을에는 즈그 집 앞마당에 대추 따가 장 서면 갖다 팔더라니까.

가을이 가고 대추가 시들시들 해지니 겨울이 와가 팔게 없어갖고 밤낮으로 바느질해가 보자기를 팔더라니까.

어느 날은 장날 지나가는데 그 날도 숙이가 밤을 샜는지 눈이 시뻘겋고 입은 시퍼래가 앉아있대.

입도 얼었는지 말을 모해.

손도 꽁꽁 얼어붙어서 움직이도 모해.

내 마음이 불쌍해서 요 소쿠리 위에 덮어놓은 이거 보자기 하나 사가왔어.

니 동구 할배 집 앞에 큰 나무 알제?

어르스름해가 비가 또록또록 내리는데 누가 서럽게 울고 있어.

슬쩍 다가가보이 숙이 혼자 눈물을 훔치더라고.

얼굴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쫄딱 젖어 있는데 안쓰럽더라고.

몇일날 지나가다 동구 할배 만나가 할배 집 앞에 나무가 있어 마을사람들 쉬어가기 좋다했더니 요즘 매일 숙이가 와서 울다간다카이.

보기에는 아가 씩씩해보이는데 속은 타고 있었는가보네.

숙이 혼자 우는 거 보고 그 다음 이튿날 마을에 매화가 폈어.

처음에는 하나 둘 피다 지금은 눈처럼 피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꼭 숙이 같아.

내가 숙이 그 마음이 안쓰러워가 매화따다 말을 건내.

매화야 우지마라. 우지마.

내가 개나리도 피라하고 진달래도 피라하께.

꽃이지고 열매 나면 내가 따다 숙이 니 다 주꾸마.

장날 가서 갖다 팔아라.

매화야 어찌 아즉 봄이 오지 않아 추운 데 벌써 피어갖고 괜찮다 하느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