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 '동물의 왕국'에서 갓 태어난 기린을 본 적이 있다. 몸을 잘 가누지 못하면서 비틀거리며 잠시 후 겨우 두 발을 딛고 일어선다. 이제 일어서자마자 엄마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에 비해 우리 인간은 걸음을 배우기까지 대략 1년이 걸린다.
그러나 걸음을 걷고,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아기들은 엄마 아빠가 귀찮아할 정도로 호기심을 발동하며 주변 사물에 대해 질문을 한다. 이처럼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지적인 호기심이 무척 많다.
이렇게 아기는 자라면서 유치원에 들어가고 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배움이 시작한다. 최소한 고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 약 20~30년간을 배워야 공식적인 배움이 거의 끝나간다. 이렇게 보면 인생의 1/3~1/2 정도의 세월을 배움에 바친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많이 배운다.
이들중 어떤 사람의 경우엔 외국에 유학까지 가서 배우기도 한다. 이럴 때는 많은 돈과 시간까지 들여가며 배움에 열정을 더한다. 이마저도 모자랐는지 요즘엔 나이 든 실버들에서 까지 평생 교육이란 이름으로 배움을 계속한다. 사실이 이들에게는 배워도 딱히 쓸 곳도 마땅찮은 데도 이런 열심을 보인다. 이것은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배울 것이 너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배움은 죽는 날까지 배워도 끝이 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렇게 배움에 이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일까?
배워서 써먹지도 못할 것을 알면서 이렇게 긴 세월을 배움에 바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어색하기만 하다. 이러한 배움의 욕구는 다른 하등 동물에서는 볼 수 없는 배움에 대한 욕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에겐 배운 걸 써보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또한 배움을 통해 기쁨을 얻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이러한 배움을 통해 우리가 가장 인간다움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무엇을 통해 배울 것인가?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선생님이나 교수들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우리가 그들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먼저 배워 알게 된 소중한 지식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배움의 방법으로 수많은 책들이 존재한다. 많은 지식인들과 연구자들이 책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정리해 두었고 후세의 사람들과 동시대 사람들은 이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처 알지 못했던 지혜를 깨닫게 해 줌으로 많은 이들이 책을 읽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배움의 기회를 갖는다. 자연 속에는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미처 밝혀지지 않은 과학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수많은 학자들은 연구실에서 그리고 자연에서 알게 된 것들을 바탕으로 그 속에 숨어있는 지혜를 마치 숨은 보물을 찾듯이 열심히 탐구하며 배우고 있다.
밝혀진 과학에 의하면 아직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들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구에 서식하는 생물의 종류와 얼마나 되는 수가 존재하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들 정도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존재함으로 단지 수박의 겉핥기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이러한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금 이 시각에도 전 세계 수많은 연구실에서는 알고 천연물질을 연구하거나 생체모방과학을 배우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들이 더 많이 생기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지성을 가진 인간이 자연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은 자연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성보다 더 차원이 높은 지성이 개입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도 시간을 내어 주변에 있는 자연을 통해 더 많은 깨우침을 얻기를 바라면서
시편 139:14 "내가 외경심이 들도록 놀랍게 만들어졌으므로 당신을 찬양하니 당신이 하신 일이 놀아움을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