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더 큰 일을 이루기 위한 고통이다.
주말 카페에서 여러 교우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던 중이었다.진한 에스프레소 커피와 허브향 그윽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 교우가 최근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들려주었다. 30대가 된 그는 오랜 세월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나 집 근처로 독립했다고 했다.이사 한날의 경험과 가족간의 애뜻한 느낌을 들을 수 있었다.
이처럼 누구나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독립한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면 부모의 마음은 무너진다. 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자식이 세상으로 나가겠다는 선언은, 어쩌면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이다.
특히 딸의 경우, 결혼과 함께 자연스럽게 독립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늦은 나이에도 부모와 함께 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서로 다른 생활방식과 가치관 때문에 갈등을 겪곤 한다. 성인이 되면 자신만의 독립된 공간을 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그러나 수십 년을 함께한 일상에 변화를 주는 결정은 결코 쉽지 않다.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주신 독립에 대한 본능을 거스를 수 없다 해도, 그 이별의 과정은 고통스럽다. 성인들이 한 공간에서 각자의 개성을 온전히 유지하며 오래 함께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누군가는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야 하고, 그런 삶을 평생 지속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딸아이의 결혼식이 떠올랐다. 동병상련이었을까. 아버지로서 딸을 떠나보내야 했던 그날의 마음이 되살아났다. 어떻게 그 현실을 받아들였는지, 그때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구를 떠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슬펐을까? 언젠가는 거쳐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토록 받아들이기 힘들었을까? 이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그때, 문득 하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하늘에서 함께하셨던 예수께서 이 땅으로 내려오셔야 했을 때, 하느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인간의 범죄로 인해 생긴 죄와 죽음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셔야 했던 그분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이는 단순히 하늘에서 땅으로의 이동이 아니었다. 하느님 다음의 최고 권위와 능력을 가지신 분이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감내하셔야 했다.
하느님께서는 아들과의 이별을 받아들이셔야 했다. 인류가 잃어버린 생명과 낙원을 되찾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기에, 하느님께서는 그 고통스러운 결정을 기꺼이 받아들이셨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과 아들 예수께서 인류를 향해 나타내신 사랑이었다.
오늘 차가운 겨울 카페에서의 짧은 시간은 아버지와 딸 사이의 따뜻한 사랑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경험하셨을 예수와의 이별을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있어 이별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러나 그 고통은 더 큰 일을 이루기 위한 통로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아픔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사랑의 의미를 배운다.
"더욱이 우리의 인간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했어도, 우리는 그를 존경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 생명의 아버지께서는 더욱 기꺼이 복종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히브리서 12:9 신세계역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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