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회개에 이르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며칠 전, 일상의 적막을 달래려 넷플릭스에서 영화 '생일'을 시청했다. 이 영화는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배경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 수호의 생일을 맞아 남겨진 가족과 친구, 이웃들이 서로의 깊은 아픔을 나누는 과정을 담담히 그려낸다.
영화 속 아버지는 사고 당시 타국에 있어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깊다. 아내의 냉대와 무시는 그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지만, 뒤늦게나마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려는 그의 뒷모습은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엄마의 슬픔은 더욱 처절하다.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어도 그녀에게 그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아들의 방을 생전 모습 그대로 간직하며 하루하루를 사투하듯 견뎌내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수호를 기억하는 친구들과 이웃들의 아픔 역시 죽기 전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깊은 흉터로 남겨져 있었다. 영화를 통해 전달되는 감정만으로도 이토록 고통스러운데, 유가족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는 원치 않는 불행이 예고 없이 찾아오곤 한다. 겉으로는 저마다 웃음 짓고 있을지 몰라도, 사실은 모두가 말 못 할 아픔을 가슴 한구석에 품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변을 돌아보면 온통 슬픔과 고통의 신음 소리가 가득하여, 인생은 진정 눈물로 이어진 나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녀의 고통을 보며 가슴 아프지 않은 부모가 없듯, 인류의 아픔을 지켜보시는 하느님의 마음 또한 그보다 더한 슬픔으로 가득할 것이다. 인간에게 공감과 슬픔의 감정을 넣어주신 분이라면, 우리가 느끼는 고통 이상의 큰 아픔을 간직하고 계심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고통이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는 이유에 대해 성경은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여호와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오히려 아무도 멸망하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모두가 회개에 이르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여러분에 대해 참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3:8,9 신세계역 성경) 라고 알려준다.
인간의 유한한 시각과는 달리, 모든 상황을 가장 지혜롭게 살피시는 창조주께서는 최선의 상황과 적절한 때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다. 분명한 사실은 인간이 겪는 이 슬픈 현실을 조만간 끝내실 것이라는 점이다.
인생에는 기쁨보다 슬픔의 날이 더 많아 보이며, 누구도 이 굴레를 비껴갈 수는 없다. 그렇기에 슬픔의 날이 종결될 것이라는 약속은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다. 대중교통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속에 서린 우울함 역시 각자가 간직한 삶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진정한 위로와 즐거움의 날이 필요하다. 다가올 약속이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이유는 더 이상 고통의 눈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물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쁨의 눈물만이 흐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해가 뜨면 일상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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