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다시 만난 종명이는 어딘가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변했는지 설명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화면 건너편에 있는 종명은 내 기억 속 나란히 앉아 지오디 테이프를 듣던 소년이 아님은 확실했다. 조금 친숙한 타인. 유연하게 연결되지 않는 대화 속도에서 나는 종명과 나 사이에 서로의 삶을 모르는 시간이 꽤 쌓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한 공간에서 음악을 듣던 시간들. 그러니까 장래희망으로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거나 친하게 지내던 7 공주들과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던 날들로부터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좋았다고 믿는 기억. 우린 이미 그 시절을 지나와 버렸다. 종명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나는 희미한 짐작으로나마 현재의 종명의 기분을 헤아려 보았다
채팅창에서 종명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실없는 웃음을 타이핑하거나 형식적인 리액션을 보이는 경우도 없었다. 지연이 건네는 질문에 그저 간략하게 답할 뿐. 종명은 먼저 우리에게 질문을 하거나 자신의 이야기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 뒤에 따라오는 공백과 짧고도 신중한 대답 속에서 종명이 지금 나누는 대화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반가운 것까진 모르겠고, 적어도 싫거나 불편한 마음은 아닌 것 같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어쩐지 종명의 그런 무던한 모습이 한 편으론 반갑게 여겨졌다.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엄격하지도 않은 태도. 채팅창에 띄워진 종명의 대답들 위로 나를 안심하게 만들었던 종명의 끄덕거림이 교차되는 듯했다. 아빠가 사준 마이 마이와 지오디 테이프 향해 구구절절한 변명을 늘어놓던 내 마음을 잠잠하게 만들던 긍정의 신호. 많이 바뀌었다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여전한 구석을 발견 하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스르르 하고 풀렸다.
퇴근 후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우리 세 사람의 대화는 꽤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다시 대화할 기회가 생겼고,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의 대화 방은 몇 번 더 개설되었다. 나는 그때마다 종명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 정보는 모두 내가 기억하는 종명과 전혀 반대편에 있는 모습이었다.
종명은 집에서 버스로 2-30분이 걸리는 남고에 다녔다. 최근 본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영화는 <냉정과 열정사이>, 초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축구를 좋아하지만 축구만큼이나 책과 영화, 사진과 그림에 관심이 있으며 무엇보다 종명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대화 속에서 발견하는 정보 외에 종명이 먼저 말해준 사실도 있었다. 어느 날에는 종명이 자신의 싸이 월드 주소를 알려주었다. 비록 우리가 ‘일촌’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서로를 사이좋은 일촌이라 칭하는 세계 속에서 나는 종명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종명이가 꾸며놓은 미니 홈페이지는 내가 모르고 지냈던 종명이의 작은 세계 같았다. 프로필 화면엔 종명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눈에 띄었다. 짙은 밤, 하늘에 뜬 작은달 사진과 이루마의 indigo라는 배경음악. 몇 개 되지 않는 사진첩에는 영화의 스틸컷과 직접 찍은 사진이 잘 정리된 폴더.
‘잘 자랐구나. 멋진 사람이 되었네’
나는 종명의 세계를 보며 얕은 동경을, 그리고 뜻 모를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12월에 접어들면서 볼링장 아르바이트의 업무는 점점 손에 익었다. 하지만 여전히 퇴근길은 적응되지 않았다, 적막한 골목. 어두운 밤 길 걸어 집에 돌아와 조금 쳐진 몸으로 네이트온을 켜면 접속해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새벽 한 시, 늦으면 두시 사이에 온라인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은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소수의 사람 중 언제나 종명이 있었다. 그렇게 지연 없이 종명과 몇 번의 늦은 밤 대화를 이어가던 어느 날. 종명은 무심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종명은 학창 시절 내내 꽤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 왔다고 했다. 그 무렵 친구들의 대화 주제의 중심은 단언컨대 대학 진학과 진로 탐색이었음에도 종명과 나는 미래를 주제로 이야기 나눠 본 기억이 없었다. 가끔 스치듯 언급된 적은 있었지만 굳이 붙잡아 긴 대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아마도 미래의 장면을 크게 기대하거나 기다려본 적이 없어서, 나는 할 말이 별로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현재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서로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은 각자의 미래일지라도 언제까지고 모른 체 할 순 없는 일이었다.
종명은 기대하는 만큼 수능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종명에게 기대가 컸던 가족들의 실망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종명은 스스로에게 실망한 눈치였다. 앞으로 주어진 일들을 해야겠지만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곤 다른 말을 보태지 않고 오늘 낮 시간 동안 자신이 찾은 음악이라며, 알집으로 묶은 음악 파일을 채팅방으로 전송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종명이 보낸 음악엔 확실한 아름다움이 깃들여 있었다. 나는 마치 초등학교 시절 마이마이와 지오디 테이프에 대한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던 종명이 된 것처럼, 종명이 보낸 음악 파일을 열어 차례로 듣기 시작했다. 그리곤 엠피쓰리 선을 꽂아 종명이 보낸 파일을 옮겨 담았다.
언제 잠자리에 들었는지 생각나진 않는다. 그 무렵, 겨울 방학이 시작된 이후로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어두운 반지하엔 밤이 더 빨리 찾아왔다. 동지 무렵 밤이 길어지는 계절. 날씨가 쌀쌀해질수록 도시의 풍경은 아름다워졌다. 오후 다섯 시 만 되어도 성탄절의 들뜬 분위기와 전구의 불빛이 더 빛을 발했다. 연말의 분위기에 취해 신난 사람들과 그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풍경은 보면서도 내 마음은 기쁘긴커녕 심란하기만 했다.
종명의 음악을 받은 다음 날 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평소보다 조금 늦어진 퇴근 준비를 하던 찰나. 지난밤 다 듣지 못하고 잠들었던 종명의 음악 파일이 생각났다. 볼링장 엘리베이터 내림 버튼을 누르고 엠피쓰리에 들어있는 음악을 재생시켰다.
종명이 보낸 음악에는 가사가 없었다. 새벽 한 시. 볼링장 건물 밖을 나서면서 나는 무심코 밤하늘을 바라봤다. 종명의 싸이월드에 있던 작은 초승달이 떠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서 조금 느리게 걸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이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도 없어서 무서웠던 골목길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고 여긴 것도. 그 밤이 처음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네이트온에 접속했다. 역시나 종명이 접속해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기분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해도 제대로 전달될 것 같지 않은 마음으로 나는 종명을 불렀다.
‘종명. 어제 보내 준 음악마저 다 들었어. 좋더라’
종명에게 나는 좋은 음악을 알려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종명은 긴 말 없이 ‘좋았니?’하고 물었다. 모니터 너머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다고. 너의 음악 덕분에 그 밤은 슬픈 마음 없이 깨끗하게 즐거웠다고. 너무 고마웠어.’하며.
어쩌면 나는 그 밤, 채팅창 위에 차마 쓰지 못한 말들을 지금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종명은 그날 이후로 매일같이 음악을 보내왔다. 적게는 두 세곡에서 많게는 열댓 곡이 넘는 음악을. 자신이 낮 시간 동안 찾은 아름다운 음악을 알집에 넣어 내게 전해주었다. 그중 일부는 종명과 대화를 나누며 듣고, 다 듣지 못한 음악은 퇴근하는 길을 위해 아껴두었다.
나는 종명이 보낸 음악에 기대어 짙은 밤을 걸었다.
더는 슬프지 않았고 때론 기쁘기까지 했다.
종명과 나는 매일 같이 그 시절의 밤을 그렇게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새 해가 시작 되는 날. 나는 종명이 보내준 음악이 가득 든 엠피쓰리를 들고서 보호수 아래로 갔다. 이상하게 일출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뜨는 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저 그 음악과 함께 달이 아닌 해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내가 가진 가장 옷 중에서 가장 따뜻한 옷을 겹쳐 입고서. 보호수 아래로 걸어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이미 지나왔고 지나갈 모든 순간을 떠올리며 조금은 웃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