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리버에서 투덜대다

by Angela 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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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은 강변을 따라 걸었다. 어느새 눈은 그쳐 있었다. 햇빛을 받은 얼음이 강물 위에서 수정 조각처럼 반짝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란 보트하우스가 나왔다. 보트하우스는 파란 하늘과 파란 강물에 묻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처럼 쨍하게 선명한 파란색이었다. 보트하우스 앞에는 온통 파란 풍경 속에서 낮에 뜬 초승달 같은 모습으로 흰 나룻배가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보트하우스 간판에는 ‘Johnny’s Boathouse’라고 쓰여 있었다. 지은은 <Winter Wonderland>를 부른 가수 중 조니라는 이름의 가수가 누가 있었는지 머릿속 데이터베이스를 돌려보았다. 지은은 조니 머서를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조니 머서의 대표곡이 <Moon River>라서, 그의 도플갱어는 여기서 뱃사공인가. 여기가 만약 가을만 있는 도시였다면 낙엽 청소를 하고 있었겠네.

우리나라에서는 <고엽>으로 번역된 샹송 <Les Feuilles Mortes>을 영어 <Autumn Leaves>로 번역한 사람이 조니 머서다.


보트하우스는 닫혀 있었다. 지은은 문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읽었다.


‘소중한 친구여, 미안하지만 동절기에는 열지 않는다오.’

‘여긴 겨울만 있잖아, 운영을 하기는 한다는 거야?’


조니 머서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굳이 호불호를 따지자면 지은은 조니 머서의 <Winter Wonderland>는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내 노래도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라고 하니 어쩔 수 없잖아’라는 것 마냥 나른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게으른 보컬을 늘어진 카세트테이프 같은 코러스가 칭칭 감아 돈다. 차라리 <Moon River>를 이렇게 불렀어야지. <Winter Wonderland>는 크리스마스에 어울리지 않게 무기력하게 부르면서, <Moon River>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처럼 여유를 부리다니 심술궂다. 그렇게 언제든 쉽게 건너갈 수 있는 거라면 진작 건너시지 그랬어요.


지은은 <Moon River>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처럼 고단함과 쓸쓸함을 섞어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Moon River>는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하고 세상을 헤매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여야 하니까. 꿈을 떨쳐 버리지도 못하고 꿈에 닿지도 못해서 마음이 무너지는 사람들, 무지개를 찾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쭉쭉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물결에 휩쓸려 표류하는 사람들, 언젠가는 달빛이 흐르는 드넓은 강을 멋지게 건너겠다는 호기로운 다짐조차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두려워 소심하게 읊조리는 사람들, 세상에 수없이 많을 바로 지은 같은 사람들 말이다.



지은은 보트하우스에 기대어 <Moon River>를 불렀다.


Moon river, wider than a mile

달빛이 흐르는 드넓은 강

I'm crossing you in style some day

언젠가 멋지게 건널 거야

Oh, dream-maker, you heart-breaker

나를 꿈꾸게도 하고, 날 무너뜨리기도 하는구나

Wherever you're going, I'm going your way

강이 흐르는 곳이라면 나도 따라갈 거야


파란 강물 위로 반짝이는 얼음조각들이 천천히 미끄러져 갔다. 지난밤 강 위에 살짝 내려앉았다가 얼음에 갇혀버린 달빛의 파편 같다.


‘나도 지금 윈터 원더랜드에 갇힌 걸까? 그런데 이렇게 편안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면 갇혔다는 표현이 맞나? 차라리 여기는 선물 같은걸. 일 년에 딱 한 번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내 인생에 딱 한 번 찾아온 선물 같은 시간.’


생각해 보면 언제부터인가 지은에게 크리스마스는 선물 같은 날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가 그저 늘어져 쉬는 휴일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이브도 의미를 잃었다. 그날은 단지 회계팀장 마음대로 정한, 오후 4시에 회계 시스템이 닫히는 날일 뿐이다. 한 주 내내 사업비 정산 지옥에 빠져 있어도 아무도 4시에 마감을 맞추지 못한다. 모두가 전화기에 매달려 정산 따위보다 만 배쯤 중요한 이유를 뿜어댄다. 그렇게 고성과 한숨과 짜증과 애원이 오고 가는 정산 지옥은 5시 30분에 절정으로 치닫다가 5시 55분부터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소멸되며 한 명 두 명 사무실에서 사라진다. 크리스마스가 휴일로 존재하는 건, 서로에게 보였던 비굴함과 비열함을 깨끗이 지워 버리고 12월 26일 아침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출근하기 위해서이다.


지은은 모처럼 찾아온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시간에도 정산 지옥을 떠올린 걸 후회하며 뱃사공 조니의 보트 하우스를 떠났다.


Winter Wonderland _johnnys boathouse.jpg Chat GPT가 그려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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