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미사 때 들었던 성경 말씀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내용은 거의 바오로 사도의 서간에서 나오는 글들이었다. 신학적 지식이 미천한 내 귀에도 바오로의 문장들은 참 아름다웠다. 그의 글에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예수님, 그 믿음에 대한 강한 확신, 그리고 듣는 이를 위한 배려가 반짝이는 수사법으로 감싸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 마음을 울렸던 것은 코린토 2서의 12장 9절과 갈라티아서의 6장 14절이었다.
바오로 사도는 서간을 통해,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자신에게 머물기 위해 더없이 기쁘게 자신의 약점을 자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알게 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며, 자신의 눈에는 세상이 십자가에 박혀있고, 세상의 눈으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역설이 가득한 그의 표현을 쫓다 보면 그가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전했는지, 그의 행복 가득한 표정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바오로 사도가 전해주는 이야기가 내 귀에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은 것은, 내 삶이 그와는 달리 기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괴로움은 지금도 스스로에게서 비롯될 때가 많다. 나는 현실적인 생활 감각이 적당히 떨어지는 인간으로, 실생활에는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는 삶의 근본적인 가치와 의미를 마치 어린아이가 꿈을 좇듯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늘 뭔가에 대해 고민하고 그 고민을 형태로 만들어 내고 싶어 하는 욕망에 시달린다. 그러나 깜냥에 비해 자신을 향한 목표는 늘 높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향한 비난은 말할 수 없이 날카롭고 매서웠다. 그리하여 나를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드는 잔인한 순환을 반복했다.
나는 무난한 삶을 살아온 편이긴 하나 적지 않은 좌절을 경험했다. 목표를 향해 한 단계, 한 단계를 오를 때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차라리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 덜 힘들었을까. 노력 끝에 만나는 절망은 더 비참했다. 자신을 향한 비난은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부족한 능력을 탓하며 나는 나를 힐난하고 괴롭혔다. 그리고 중년에 접어든 지금도 여전히 그 과정 안에 있다. 그런 나에게 ‘나의 부족함을 마음껏 자랑한다’는 바오로 사도의 이야기는 놀라운 말이었다.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괴로운데, 그것을 자랑한다니. 그에게 있어 절망과 좌절은 슬픔이 아니라 희망인 것 같았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그리스도의 힘이 내 부족함에 정말 머물기만 한다면 나도 얼마든지 내 무능력을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삶의 방식에 대한 불안감이 마음 곳곳에 스밀 때면, 자신에겐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으로 보인다는 바오로 사도의 담백하고도 확신 가득한 이야기는 진정되지 않던 손끝의 여린 떨림을 가라앉혀 주었다.
나란 인간은, 피조물이기에 원래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다. 너도, 우리 모두 그러하다. 그러니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내 부족만큼 그분의 힘이 머물도록 공간을 내어드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내 아집과 욕심 때문에 세례를 받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것은 수월하지 못하다. 올 한 해, 크신 분의 힘으로 내가 자신에게 관용을 베풀고 바오로 사도가 느꼈던 행복과 기쁨을 아주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길 나는 간절히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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