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관이 火葬 되는 동안, 나는 걱정이 하나 있었다. 뇌에서 물을 빼는 션트 수술 이후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엄마가 돌아가신 터라 엄마의 두피에는 피부 고정용 스테이플러와 반창고가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화장이 끝난 후 사람은 다 타고 없어졌는데 금속인 스테이플러는 타지도, 녹지도 않은 채 원모습 그대로 남아있으면 엄마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재확인하는 거가 될 테고, 그러면 내가 너무 슬플 거 같은데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이었다.
한 시간 넘게 망자를 담은 관이 불길에서 타는 동안 화장장까지 동행해 주신 지인들, 성당의 연도회 분들, 그리고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침 식사를 했다. 이른 아침이었으니까 지인과 연령회 분들은 아침식사하는 것이 옳았지만 상복을 입은 채 '사람이 저쪽에서 불타고 있는데', 딸인 내가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참 뭔가 웃기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산 사람이 잘 먹어야 죽은 사람을 보낼 수 있는 걸.
식사를 마치고 조금 기다리니, 화장이 끝났다는 전갈이 왔고 엄마가 있던 그 자리를 가보니 뼈였던 듯한, 회색의 큰 덩어리 몇 개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스테이플러는 흔적이 없었다. 내가 20대 초반 즈음에 작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망자를 화장한 후 역시 잿빛 덩어리만 몇 개 남아 우리를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가 내게 그러셨다. "유나야, 어서 가서 작은 엄마한테 인사하자." 그때의 기억이 있어서 그랬는지 나는 회색 덩어리로 만난 엄마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고 그렇게 속상하거나 무섭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제 엄마가 편안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스테이플러도 같이 타버려서 참 다행이다.. 하는 생각도 했다.
화장장에서 일하시는 분이 내게 뼈를 어떻게 빻아드릴까요,라고 물었고 나는 곱게 빻아달라고 그랬다. 이왕 재가 된 이상, 고운 재가 되는 것이 더 순리에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운 재가 된 엄마는 작은 도자기에 담겼고 그 도자기 그릇은 작은 나무상자에 다시 담겨 내 품에 안겼다. 나무상자에서 느껴지는 훈훈하고 따뜻한 열기가 11월 초, 별나게 춥던 그날, 몸도 마음도 얼어붙을 것만 같던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었다.
내가 예비자 교리를 받고 있을 때였다. 엄마는 그때 미사에 가다 말다 하던 중이었는데 마침 나는 수요일 오전 예비자 교리 수업을 듣고 있었다. 재의 수요일이던 날, 엄마에게 '오늘이 재의 수요일이고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미사 중에 한다고 하니 미사에도 같이 갔다가 겸사겸사 예비자교리에도 같이 가보자'라고 권했고 엄마는 기꺼이 동행했다. 엄마는 왜인지 사순시기의 성가가 좋다고 했었고, 그건 아마도 청소년기 시절 사순시기에 성당활동을 열심히 해서 그런 거 같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갔던 재의 수요일 미사에, 엄마는 뭔가 행복해 보인 다랄까, 기뻐하는 듯했었다. 미사 후 엄마의 얼굴을 보니 엄마의 이마에는 회색 십자가가 별나게 진하고 크게 그려져 있었는데, 내가 그 재를 살살 털어줬었다.
나는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시기가 되면 오히려 위안을 느끼는 것 같다. 인간은 유한하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으며, 사실은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지극히 한정적이라는 것을 재의 수요일에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그렇게 부정하고 싶은 것이지만 재의 수요일에는 도무지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내 뜻대로 안 되는 나 자신과 역시 그러한 내 삶에 늘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으로서, 재의 수요일엔 오히려 내 부족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랄까. 그게 무기력으로서의 받아들임이 아니라, 나의 부족한 실체를 받아들임으로써 느끼는 자유와 안도감 같은, 참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다.
재의 수요일이었던 오늘, 기타 학원에서 피아졸라의 '망각'을 연습하는데, 이상하게도 약 10년 전 火葬의 기억이 망각되는 것이 아니라 각성이 되어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래, 인간은 결국 재로 돌아가는 거였지. 그러니 '재'가 아닌 육신을 갖고 있는 지금,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지.. 하는 생각. 너도 나도, 모두가 재가 될 존재라는 걸 생각하면 나에게도, 너에게도 그렇게 가혹하고 매정하게 할 일은 없는데.. 싶다. 10년 전 11월 초, 그 춥던 날 내 몸을 데워준 건 엄마가 담긴 도자기였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