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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에는 김밥이지

순남씨 부엌에서 내가 컸다

 할머니는 나의 도시락에 심혈을 기울이셨다. 초등학교 때 학교 담장 너머로 국수가 담간 노란 양은 냄비가 건네진 적도 있다. 점심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배달해 주신 적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더 빈번했다. “따뜻한 밥을 멕이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중학교 때 상추쌈을 도시락에 넣어 보내주시기도 했다. 겨울에 보온도시락을 싸실  때는 맨 아래 국을 담는 작은 통에 정말 펄펄 끓는 국을 담고 후다닥 밥통에  갓 지은 밥을 퍼 넣어주셨다. 점심 때 까지 온기가 밥에 남이 있게 하려고 애쓰셨다. 사실 우리 집에 있던 보온도시락은 기능이 ‘그닥’ 좋지 않아 할머니가 시간차 공격처럼 애써 눌러 담아 놓은 온기는 스멀스멀 어디론가 새 나가버리고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열면 할머니의 수고는 아주 조금만 남아 있곤 했다. 고등학교 때는 점심 저녁 두 개의 도시락을 싸 주지 못하시는 것을 내내 미안해 하셨다. 더운 여름에는 아무리 신경을 써도 저녁용 도시락이 쉬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내 도시락통은 이모 삼촌들이 쓰던 것을 물려 받은 것이었다. 은색의 타원형 작은 도시락과 금색의 네모나고 넓적한 모양의 도시락이었다. 작은 도시락통을 내내 잘 쓰다가 중학교 2학년 때 부터 큰 도시락으로 밥 양이 늘어났다. 그 덕에 나는 체중도 확 늘었었다. 면 소재지의 중학교 출신으로 도청 소재지의 고등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의 세련된 ‘깔맞춤’ 플라스틱 도시락통과 일제 코끼리 보온 도시락통을 보게 되었다. 새로운 물건이었다. 그런지 저런지 어른이 된 나는 도시락통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릇이 진열된 곳에 가면 꼭 챙겨 보는 것이 도시락이다. 온라인쇼핑몰에서도 필요하지도 않은데 검색어로 도시락, 런치박스를 입력하고 검색 결과를 구경한다.     


뭐니 뭐니 해도 할머니표 도시락의 하이라이트는 소풍용 김밥 도시락이다! 소풍은 일 년에 두 번 있었다. 봄 소풍, 가을 소풍. 별 일이 없다면 우리 집은 내 소풍 덕에 일 년에 두 번 할머니표 김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김밥을 만드실 때 한 가지 원칙 같은 것이 있었다. “분홍 소시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반드시 불고기 양념을 한 다진 소고기 볶음을 넣는다.”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지만 ‘분홍 소시지 불가론’은 할머니의 자존심과도 관련이 있는 듯 했다. 한 때 우리 집은 부자였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강 낚시를 하시다가 다이너마이트 폭파사고로 크게 다치시기 전까지 부자였다고 한다. 한반도에 사는 모든 가족사에는 왕년에 부자였거나 한 끝발 날렸던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지지 않던가. 머슴이 있었다던가, 너른 땅이 있었다던가, 중학생이었던 이모가 자줏빛 털 코트를 입었었다던가 하는 이야기 말이다. 부자의 유산이 한 자락도 남아 있지 않던 우리 집의 어린이인 나에게는 ‘우리 집 부자 이야기’가 전례동화처럼 들렸었다. 아마도 할머니는 그 때, 내가 태어나기 아주 아주 오래 전에, 한국전쟁 후 1950년대를 보내실 때, 살림이 넉넉했을 때, 이모 삼촌의 김밥을 만드실 때면 소고기를 넣으셨던 모양이다. 정말 단 한 번도 우리 집에서는 분홍 소시지가 들어간 김밥을 먹을 수 없었다. 맹세할 수 있다.    

  

소고기 이외에 할머니표 김밥에 들어가는 속 재료는 집에서 만든 ‘다꽝’ 즉 홈메이드 단무지와 오이 절임이 있었다. 단무지는 늘 집에 있었다. 할머니는 가을이면 단무지를 담그셨다. 옛날 집 부엌 앞에 묻혀있던 커다란 독 안으로 내 종아리만한 커다란 무가 잔뜩 들어가는 광경이 기억난다. 쫑쫑 채 썰어 고춧가루 약간과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쳐진 단무지 무침은 나의 도시락 단골 반찬이었다.  

    

생각해 보면 오이는 가을 소풍용 김밥에 들어갔던 것 같다. 봄 소풍은 5월 쯤 갔었는데, 여름 채소인 오이가 5월에 나올 리 없다. 봄에는 오이 대신 시금치를 넣어 색을 맞추셨던 것 같다. 소풍 전날, 저녁 설거지가 끝난 후 할머니는 오이를 나무젓가락처럼 길게 모양을 잡아 손질하신 후 소금, 설탕, 식초로 만든 물(단춧물)에 담가 두셨다. 소풍날 아침에 깨끗한 행주로 꼭 짜셔 물기를 없애면 새콤달콤한 오이 절임이 만들어졌다. 

     

할머니는 단촛물을 밥에도 사용하셨는데, 나는 단춧물 넣은 밥맛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단촛물이 할머니표 김밥의 시그니쳐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만드는 집 없다.”라는 말씀을 수도 없이 하셨다. 뜨거운 김이 나는 밥에 단촛물을 조금씩 뿌리듯 부어가며 김을 식혀 김밥용 밥을 만드셨다. 단촛물이 꼭 밥맛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혹시라도 날이 덥기라도 하면 김밥이 상할 것을 예비한 할머니의 비책 같은 것이었는데 말이다.      


할머니표 김밥의 속재료는 이렇게 완성되었다. 소고기, 단무지, 오이절임 또는 시금치, 계란지단, 당근. 오색창연한 김밥은 낭창낭창한 '일회용 나무도시락'에 줄을 맞춰 담겨졌다. 두께 1밀리미터도 안 되었을 종이처럼 얇은 ‘ㄷ’자 모양의 나무도시락 뚜껑을  김밥이 담겨져 있는 나무도시락 테두리의 종이사이로 잘 끼워 덮는다.  나무전가락 하나를 도시락 위에 얹은 후 신문에 돌돌 말면 소풍용 도시락 포장이 완성되었다. 가끔 할머니는 선생님께 가져다 드리라며 담임선생님용 김밥을 하나 더 챙겨주시기도 했다.   

  

가끔 김밥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김밥 만들기가 망설여지는 이유는 단무지 때문이다. 아무래도 김밥에는 단무지가 있어야 제 맛인데 단무지는 소포장이라고 해도 열 개 정도는 들어있기 마련이다. 김밥 한 줄을 만들고 나면 아홉 개의 단무지가 남는다. 그래서 김밥을 먹고 싶을 때는 일주일 내내 저녁마다 김밥을 말아 먹겠다고 작정하고 김밥 재료를 준비한다. 입 짧은 나로서는 큰 결심이다.  

    

할머니에게 김밥 마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만들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①김에 밥알이 겹치지 않게 고루 펴 놓을 것 ② 김밥을 말면서 김의 마지막 부분을 아래로 두어 밥의 습기로 김이 잘 붙게 할 것 ③ 계란 지단은 두껍다 생각될 정도의 두께로 만들 것.   아마 할머니도 나처럼 하셨을 것이다. 할머니표 김밥은 밥이 많지 않았고, 김밥이 풀린 적이 없었으며, 김밥의 단면이 예뻤었다.    

  

※ 사진 설명 : 밥 위에 속 재료를 놓기 전에 깻잎을 두 장 먼저 깔았다. 속 재료는 단무지, 오이 절임, 계란 지단, 당근과 소고기 대신 우엉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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