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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국

순남씨의 부엌에서 내가 컸다

아침에 창문을 여는 버릇은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리라. 할아버지 기상 루틴의 첫 코스는 문 열기였다. 모든 창호 문이 활짝 열리면 밤새 방 안을 채우고 있던 온화한 공기는 순식간에 차가운 바람으로 치환되었다. 어린이인 나는 급작스런 공기역학적 변화를 싫어했었다. 할아버지는 왜 저러실까. 꿍얼거렸다.

     

오십이 넘으니 이제야 알게 된다.  딱 이맘때. 추석을 앞 둔 열흘 정도의 아침. 옅은 서늘함을 품은 바스락거리는 공기의 흐름. 밤새 집안에 고여 있던 텁텁한 기운을 밀어내는 시원함. 할아버지는 이런 초가을 아침 공기의 싱그러움을 이미 알고 계셨겠지? 여름의 뜨거움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가을의 인사 같은 청량함을 들이고자 언제부터인가 나도 일어나면 창문을 연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해도 추석의 낮은 여전히 뜨겁다. 추석을 준비하는 할머니가 가장 걱정하셨던 것은 장만해 둔 음식이 더운 날씨 탓에 상하는 것이었다. 제사를 위해 만든 전과 송편이 쉬지 않게 잘 식도록 김을 빼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을 찾아 음식 담긴 채반을 두셨다. 어느 해는 정말 음식이 쉰 적이 있었다. 추석 전에 만들어진 음식은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았다. 차례를 지내고 나서야 냉장고에 들어갔다. 할머니에게 냉장고에 들어갔다 온 음식은 헌 음식이었다. 조상님 제사상에 헌 음식을 올릴 수는 없었다. 우리 집 모든 제사상에는 새 음식만 올려졌다.      


추석이라고 나에게 특별할 일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송편 만들기가 허락된 것 말고는 추석은 어른들이 바쁜 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의 노동은 눈물이 난다. 요리를 해보니 알겠다. 음식 장만은 만드는 과정 보다 장을 보고, 다듬고, 씻고, 썰고, 치우고 하는 일이 더 품이 든다는 것을.      


큰할아버지, 큰할머니, 몇 년 걸러 한번씩 손님처럼 오셨던 작은 할아버지, 작은 할머니, 삼촌들, 사촌들은 시간차를 두고 차례를 지내려고 집에 도착했다. 오촌 당숙, 육촌오빠들, 길가다 만나도 지나쳐 버릴 친척분들은 추석 전후로 오고 가셨다. 추석용 음식은 차례 상에 올라가는 것 말고 이렇게 잠깐 인사차 들리시는 손님을 위한 다과상용 음식도 있었다. 할머니의 추석맞이 특별노동주간은 언제부터 언제였을까. 할머니에게 가을 초입의 아침은 어떤 아침이었을까.    

 

할머니의 가을 음식 중 내가 따라 하기를 시도하다가 놀란 음식은 토란국이다. 할머니는 소고기무국에 토란을 넣으셨다. 나는 토란이 맛이 없었다. 사실 싫어했다.  토란을 입 안에 넣으면 꾸떡꾸떡한 것이 잘 씹히지도 않았고 끈적거렸다. 조각내 먹을라치면 자꾸 숟가락에서 미끄러져 국물이 튈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몸에 좋은 거다, 많이 먹어라”시며 내 숟가락보다 큰 토란을 내 국그릇에 넣어 주시곤 했다. 

     

까맣게 잊고 지냈던 토란국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서른 중반 쯤이었다. 한창 요리책  읽기로 요리를 하던 시기였다. ‘요리책으로 요리하기’란  요리책에 실린 사진을 훑어보고 가끔 조리방법도 읽으면서 눈요기도 하고 맛상상도 하는 내 나름의 놀이였다. 요즘 유트브 먹방보기와 비슷한 것을 나는 책으로 했었다. 그러다 토란국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추석 때 쯤 토란국을 먹었었지 ”하는 기억이 났다. 이래서 어릴 적 음식 경험이 무서운가. 자 어른이 되었으니 어른의 요리를 한번 해볼까.      


일단 토란은 감자처럼 항상 구할 수 있는 식재료는 아니었다. 날이 선선해 지는 가을 초입에 잠깐 시장에 등장했다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책으로 요리하기 정보에 의하면 토란은 사전 준비 작업이 까다롭다. 일단 맨손으로 까면 손이 아릴 수 있다고 했다. 장갑을 껴야 했고, 쌀뜨물이나 소금물로 데친 후 요리를 해야 했다.      


싸한 느낌이 들었다. 준비물로 쌀뜨물이 필요하다고? 쌀뜨물은 쌀을 씻어나 나오는 것인데. 귀찮았다. 그냥 칼로 까기 시작했는데, 끈적끈적한 액체가 나온다. 괜히 시작했나 싶었다. 쌀뜨물을 만들어 깐 토란을 담가보았지만 토란 특유의 ‘미끄덩거림’이 ‘뽀드득’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어찌어찌 난생처음 끓인 토란국은 당연히 기억 속의 토란국은 아니었지만 토란의 맛은 장기기억 저장소의 데이터 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내 입맛이 바뀌었는지 토란 품종이 개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할머니는 토란이 얼마나 다루기 힘든 재료인지 단 한번도 말씀해주신 적이 없다. 할머니가 내게 토란을 까라고 시킨 적도 물론 없거니와 할머니가 토란을 손질하시는 걸 본 기억도 없다. 최소 다섯 명의 식구가 먹을 수 있는 양을 준비하려면 토란을 한 소쿠리는 다듬으셨을 텐데. 할머니는 내게 토란을 자꾸 더 먹으라고 재촉하기만 하셨다.      


2020년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가 때문에 2020년, 2021년, 2022년 추석은 추석처럼 보내지 못했으니 2023년 추석은 코로나 이후 처음 제대로 보내는 추석이 되었다. 어린 시절처럼 추석은 나와는 별로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뭐라도 사볼까 싶어 시장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 약과는 우리집 약과랑 다르게 생겼다. 송편은 한 묶음이 너무 많아 부담스럽다. 그러다 깐토란이 눈에 들어왔다. 두 명이 먹을 거라고 하니 오천원어치만 사가라고 하신다. 집에 와 풀어보니 아기 주먹만한 토란이 1개, 엄지손가락 두마디 만한 토란이 10개쯤 나온다. 역시나  토란은 미끌거린다. 이번엔 토란을 소금물에 데쳐서 토란국을 끓였다.      


역시 토란국의 맛은 제사상에 올리는 탕국에 토란을 넣은 맛이다. 토란을 넣는다고 국물 맛이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시각적으로 국의 모양이 예뼈지는 것도 아니다. 토란은 ‘맛’이라는 것이 아예 없는 것 같은데 할머니는 왜 토란국을 만드셨을까.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토란의 효능을 할머니가 모조리 다 알고 계셨던 것일까. 이렇게 궁금해 하고 투덜대면서도 나는 왜  또 토란국을 끓이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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